'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음악·스릴러 멋진 앙상블

  • 원종원
  • 입력 : 2017.03.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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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안재영
▲ 라흐마니노프 안재영
[원종원의 뮤지컬 읽기-75] 천재도 창작의 고통을 겪을까? 어쩌면 너무도 어리석은 질문에 감동 어린 답을 건네는 뮤지컬이 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다. 창작 뮤지컬로 만들어진 재미난 질문과 답변을 담은 작품이다.

 뮤지컬의 소재는 물론 그 이름도 유명한 천재 음악가 라흐마니노프다.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남녀 주인공이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를 선보여 인상 깊은 잔상을 남겼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지금도 손꼽히는 클래식 애호가들의 절대 사랑을 받는 명곡이다. 1873년 러시아 태생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의 천재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다. 9세 때 페테르스부르크음악원에, 15세 때는 모스크바음악원에 입학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불리며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4세 때 야심 차게 준비해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초연된 그의 교향곡 제1번은 기대와 달리 그리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만다. 음악비평가이자 작곡가였던 세자르 퀴가 "지옥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아무도 이 곡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혹평을 내렸던 일화도 유명하다.

니콜라이 달 김경수
▲ 니콜라이 달 김경수
 이때의 충격으로 라흐마니노프는 신경쇠약이 심해지고 만다. 한때 작곡 자체가 불가능한 좌절까지 맛보게 된다. 은둔 속 어려움으로부터 그를 구해낸 것은 니콜라이 달 박사의 암시 요법을 통한 심리 치료였다.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되뇌며, 스스로에게 암시를 거는 방법으로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게 되고, 결국 그는 이를 전환점으로 자신의 최고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피아노 협주곡 제2번'과 '피아노 소나타 제 1번' 그리고 교향시인 '죽음의 섬'을 잇달아 선보이게 된다.

피아니스트 이범재
▲ 피아니스트 이범재
 뮤지컬은 바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그가 어떻게 삶의 밑바닥 좌절로부터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게 됐는가의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실존했던 천재 음악가를 소재로 하다 보니 뮤지컬에서는 쉬지 않고 그가 만든 음악의 선율이 변주되어 모티브처럼 등장한다. 실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고, 설혹 그의 작품을 모르더라도 뮤지컬을 보면 당장 음반이라도 기꺼이 살 것 같은 충동이 느껴질 만큼 뛰어난 음악적 매력을 선보이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랜드 피아노와 현악 6중주의 라이브 연주 음악도 라흐마니노프의 매력을 십분 보여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 특히 번갈아 무대를 꾸미는 이범재·박지훈 연주자의 음악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을 극대화한다.

 연출은 오세혁이 맡았다. 최근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도 좋은 무대를 선보여 큰 각광을 받았던 그는 이제 연극을 넘어 인기 뮤지컬 연출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밀도 있는 캐릭터의 구축은 꽤나 만족스러운 재미를 효과적으로 완성해낸다. 사실 제작사인 HJ컬쳐는 일련의 창작 뮤지컬들로 큰 각광을 받고 있는 신생 창작 뮤지컬 제작사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한승원 대표가 HJ컬쳐 설립 전 노우성 연출과 함께 만들었었던 '셜록홈즈'를 비롯해 '파리넬리' '빈센트 반 고흐' '살리에리' 등 최근 각광을 받았던 완성도 높은 창작 뮤지컬이 많다.

 이 작품은 스릴러나 추리물, 심리극적인 요소를 잘 활용하는 제작사의 노하우가 적절히 가미된 매력을 잘 보여준다. 미스터리나 심리 스릴러의 재미는 사건의 배경을 파헤치고 원인을 규명하는 이야기 전개 과정의 묘미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는데,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역시 제작사의 장기가 잘 담긴 매력을 효과적인 무대와 압축적인 이야기 전개를 통해 잘 표현해내고 있다.

 사실 뮤지컬에서 심리극이나 추리극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것은 그리 쉽지도 흔하지도 않은 일이다. 뮤지컬의 낭만극적인 요소와 특성은 긴장감이나 극적 반전, 관객과의 수수께끼 풀기 같은 밀도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기 쉬운 탓이다. 그러나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오히려 이런 편견을 잘 극복해 단막의 100분을 적절히 활용해 꽤나 흥미진진하고 손에 땀을 쥐게하는 추리극적인 재미를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창작 뮤지컬에서의 심리극과 서스펜스 추리물의 인기가 어디까지 새로운 트렌드와 인기를 누리게 될지 주의 깊게 바라볼 만하다.

피아니스트 박지훈
▲ 피아니스트 박지훈
 이 작품은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쓰릴 미'처럼 요즘 중소 규모의 뮤지컬 무대에서 자주 활용되는 2인극의 묘미를 잘 담아낸다. 아무래도 등장 인물이 많지 않다 보니 경우에 따라 멀티 캐릭터처럼 다양한 역할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별스러운 매력을 만들어낸다. 요즘 뮤지컬 공연에서는 흔하게 보이는 세트의 자동 이동 등이 하나도 없는 단출한 원 세트에서 극이 전개되지만, 효과적인 공간의 창출은 나름 만족스럽다. 좌우에 대칭되는 방 안의 구조는 정신적 방황을 겪는 라흐마니노프의 심리 상태와 니콜라이 달 박사의 정신분석학적 접근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암시하고 반영한다.

 무대를 즐기다 보면 떠오르는 팝송도 있다. 에릭 카먼의 All by myself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르네 젤위거가 빗자루를 들고 노래하는 장면으로도 큰 인기를 누렸던 이 노래는 중간 부분의 멜로디가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샘플링으로 따온 선율이다. 무대를 보다가 눈치를 챘다면 이미 라흐마니노프의 팬이 될 수 있는 좋은 소질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듯 싶다. 이래저래 재미있는 무대와의 만남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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