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재연됐던 윤동주 이젠 뮤지컬 무대서 부활

  • 원종원
  • 입력 : 2017.03.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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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뮤지컬 읽기-76] 시인 윤동주만큼이나 짧은 생애에 그토록 강렬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사연이 또 있을까.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문학가의 삶이 무대용 뮤지컬로 꾸며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출생은 만주 북간도였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의 작품에는 기독교적 세계관이나 그와 관련된 용어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친 뒤 1941년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해 다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기며 유학생활을 이어 갔다. 그러나 학업 도중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게 되고, 감옥에서 건강이 악화돼 1945년 2월에 짧디 짧은 생을 마치고 만다. 그의 유해는 고향인 용정에 묻혔다. 일각에서는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은 결과이며,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불과 28세였다.

 그가 남긴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원래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며 발간하려던 작품집이다. 당시에는 실제로 출간되지 못했는데, 훗날 그의 유작 3편과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가 출간하게 된다. 자칫 묻혀버릴 수 있던 그의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등장하게 된 셈인데, 결국 오늘날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으로 절대적인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뮤지컬은 바로 그런 윤동주의 삶과 작품을 노래와 이야기, 무대적 이미지로 구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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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당연하게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는 시집이 중요한 근간을 이루는, 시로 만든 뮤지컬이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윤동주의 시들은 그 자체로 대중적인 인기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작품 최고의 매력으로 활용된다.

 시가 음악적으로 구조되어지며 인기를 누렸던 글로벌 시장에서의 흥행 사례는 이 작품 말고 또 있다. 바로 T S 엘리엇의 시집으로 만든 뮤지컬 '캣츠'다. 할아버지가 되어 손주들을 귀여워했던 작가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써준 시집이 원작이다. 윤동주의 시집처럼 영국에서는 아직도 아이들이 어릴 적 잠자리에 들 때 부모들이 흔히 많이 읽어주는 스테디셀러 시집으로 유명하다. 시들을 음악적으로 재구성하고, 춤과 이야기를 붙여 극적인 완성도를 이뤄낸 것이 바로 빅4의 한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린 뮤지컬 '캣츠'인 셈이다.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도 시는 주요한 도구로 등장한다. 다만 캣츠와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 작품에서는 노랫말로 시를 사용하는 대신, 작품 속에서 시를 낭독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워낙 유명한 시들과 작품이다 보니 원형을 다치지 않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덕분에 무대는 마치 시낭송회를 보러 온 것과 같은 낯설지만 특별한 체험을 객석에 선사한다.

 다소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시를 노래가 아닌 낭독으로 그냥 놓아둔 것은 결국 극의 정서적 전달에 음악과 시가 병렬적으로 전개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윤동주가 소재이자 이야기의 핵심인 만큼 가무극적인 틀과 음악적인 구조로 이를 다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부류의 실험이 가미됐어야 하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래도 엔딩신에서 윤동주의 죽음과 함께 마치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는 초인의 모습으로 재연되는 시인의 이미지는 엄청난 감동을 극대화한다. 객석에선 여기저기 흐느끼는 울음이 느껴질 정도로 절대적인 대중적 공감을 자아낸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타깝고 아쉽게 느껴질 만한 민족적 울분이나 천재 시인의 덧없는 죽음에 대한 서글픔이 절로 느껴진다. 뮤지컬이라서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이 작품 최고의 장면이기도 하다.

흔히 서울예술단의 뮤지컬에는 가무극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등장한다. 처음 이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바리'를 무대에 올리면서부터였다. 오늘날 서울예술단의 뮤지컬들은 거의 대부분 가무극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운다. 가무극이란 말 그대로 노래(歌), 춤(舞), 극(劇)으로 이뤄지는 일련의 작품을 지칭한다. 광의로는 뮤지컬의 범주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다.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가무극이란 용어는 한국적인 해석과 방법, 내용, 구조, 형식을 추구하는 창작 뮤지컬의 실험을 담아내는 일련의 양식을 반영한 창작 뮤지컬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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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무극이라는 용어에는 한국적 색채의 뮤지컬 겸 음악극을 찾아보겠다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서울예술단의 의지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서양식 음악극으로서 뮤지컬의 일반적 개념과 정체성을 넘어 한국적인 문화와 예술, 언어, 양식, 세계관이 투영된 창작 뮤지컬 콘텐츠의 제작에 대한 관심이자 의지의 반영인 셈이다. 가무극이란 용어의 활용은 그래서 최근 더욱 도드라지고 있는 서울예술단만의 특색이자 관객의 입장에서는 별스러운 재미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가무극을 향한 서울예술단의 여정은 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고무적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지지 혹은 환호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한국적 뮤지컬을 개념화하겠다고 표방하고 나섰던 서울예술단의 지금까지의 노력이 나름의 결실을 거두고 있다고 인정할 만 하다. 현재의 위치 못지않게 미래의 가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좋은 가무극'을 찾아가는 여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는 흥미로운 모험이자 의미 있는 실험이다.

 올해 앙코르 무대에서는 얼마 전 뮤지컬 '뉴시스'로 인기를 모았던 온주완이 기존의 윤동주 역을 맡았던 박영수와 함께 더블 캐스트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압권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특유의 광활한(?) 백스테이지를 활용한 엔딩신이다. 무대적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멋진 이미지를 경험하게 한다. 윤동주의 죽음에 더욱 아쉽고 안타까운 심정을 느끼게 되는 시원하면서도 아련한 뒷맛을 남겨준다. 일제에 대한 원한이나 미움이란 감정을 넘어 비극적 운명을 살다간 천재 시인, 깨끗했던 영혼의 소유자였던 그와의 이별이 더욱 절절한 느낌이다. 그의 시집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경험할 수 있다. 멋진 창작 뮤지컬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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