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왜곡한 이분법에 반기 든 젊은 역사학자들

  • 이문영
  • 입력 : 2017.05.0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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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한국사-46]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인문학 중에서도 역사학이 최대의 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사학 책들은 인문학 책들 중에서도 잘 팔리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최근 베스트셀러의 기록을 갈아치울 듯이 팔린 책도 모 역사 강사의 한국사 책이었다. 이렇게 한국사가 소비되는데 역사학이 무슨 위기에 있느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은 더욱 위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학은 학문이다. 학문은 발전한다. 오래된 학설도 변화한다. 더 많은 자료로 튼튼하게 보강되기도 하고 새로운 자료로 인해 폐기되기도 한다. 이런 발전은 학계에서 학자들의 전문적인 용어로 진행된다. 학문적 기초가 없는 사람들이 들여다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맥락을 잡을 수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최신 학설을 대중들이 알아듣기 쉽게 만들어 전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대중 역사 작가라 부른다.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는 아직 통일되지 않았고 여러 형태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역사 작가 역시 학자 수준으로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역사 작가가 독특한 새로운 착상을 해낼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 그 기반이 되는 부분을 역사학자들이 이미 검토한 바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작업을 거치지 않고 함부로 글을 쓰면 낡은 지식에 기반한 비역사적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된다. 쉽게 말하면 3·1운동 민족대표가 한용운 말고는 다 변절했다는 등의 엉터리 이야기를 내놓게 되는 것이다.

잘못된 지식을 권위 있는 사람이 책에 기술하게 되면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특히 지금처럼 자극적인 주장이 재빨리 퍼지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잘못된 지식은 인터넷상의 사전 등에 기재되고 재인용되면서 더욱 널리 확산된다. 이 폐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큰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다.

과거 국사 교과서에 원시공산제라는 말이 나오니까 용공이라는 주장 따위를 한 사람들이 수십 년간 펼쳐온 '역사학자는 식민사학자'라는 주장이 그러하다. 이 사람들은 서울대 교수였던 이병도 박사가 일제강점기 때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했다는 경력을 들먹이면서 그의 제자들도 다 친일파라는 무리한 주장을 펼쳤다. 이병도 다음으로 유명한 역사학자인 이기백 교수는 남강 이승훈 선생 집안이다. 젊은 시절 이기백에게 가장 영향을 끼쳤던 사람은 함석헌과 신채호였다. 이기백은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갔는데, 이때 야나이하라 다다오(후에 도쿄대 총장이 된다)에게 사사했다. 이 무렵 야나이하라는 천황제 파시즘을 비판하고 군국주의에 저항한 것 때문에 도교대에서 쫓겨나 야인으로 있었다. 이기백의 아버지 이찬갑은 농촌운동을 펼친 인물로 국가의 동원체제에 반대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여러 영향으로 이기백은 국가주의적 성격의 민족주의를 따르지 않는 학자로 성장했다. 그런 그를 파시스트적인 유사역사가들이 이병도의 제자인 식민사학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슬프게도 이런 프레임은 권력 대 재야라는 이분법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먹혀들어갔다. 권력을 쥔 쪽은 대학에서 교수라는 멋진 역할을 수행하는 역사학자고, 우리의 올바른 역사를 찾기 위해 배곯아가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재야에 있는 역사학자라는 이분법은 부당한 권력에 치여 살았던 대중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페이스북
▲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페이스북
재작년에 국정 한국사 교과서 문제가 불거지자 역사학자들은 두 가지 중압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는 국가가 역사를 전유한다는 파시즘적인 발상에 대한 것, 다른 하나는 역사학계를 지속적으로 공격해온 유사역사학이 교과서를 통해서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는 우려였다. 그도 그런 것이 유사역사학은 늘 교과서를 탐내왔다. 1978년에는 '국사바로잡기운동'을 펼치면서 '국정 국사교과서의 국정교재 사용금지 및 정사편찬특별기구 설치 등의 조치 시행 요구에 대한 불허 처분 취소 청구의 소'를 내기도 했고, 1981년에는 국사 교과서 문제로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게 만들기도 했다. 1986년에는 조선일보와 함께 국사 교과서를 공격했다. 당시 국사 교과서는 국정이었기 때문에 교과서만 차지하면 모든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과거가 있기 때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역사학계는 국정 교과서 반대의 기치를 높이 들어올렸다.

이때 대중들의 인식에 자그마한 충격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자는 친일파고, 우리의 국가 권력도 친일파고, 따라서 역사학자와 권력층은 서로 짝짜꿍이 맞는 집단들이라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서 충돌이 벌어졌으니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사학자들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기회가 이때 발생했다. 유사역사학에서는 역사학자들이 스승의 견해를 반박할 수 없기 때문에 식민사학이 대물림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스승의 견해를 반박하는 역사학자를 보면 스승의 등에 칼을 꽂는 패륜을 저지른다고 공격한다. 흔한 인터넷 용어로 이런 경우를 '답정너'라고 한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것이다. 유사역사학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하면 스승의 견해와 달라도 상관없다. 앞뒤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도 제일 앞에 둔 것이 권력과 약자라는 피해자 코스프레의 프레임이라서 이 강고한 주장은 잘 깨어지지 않는다.

국정 교과서 문제를 접하면서 젊은 역사학자들은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정 교과서에 대항하기 위한 연대가 '만인만색'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에 형성되었고 대중과의 더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서 팟캐스트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다시또역시' 팟캐스트
'만인만색 역사공(共)작단 - 다시또역시'라는 팟캐스트로 '만인만색'은 만 사람의 만 가지 색이라는 이름으로 역사학의 다양성을 나타내며 '다시또역시'라는 말 역시 '다양한 시각으로 털어보는 역사학의 시선'이라는 말의 약자로 역사학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지난 5월 1일로 55화까지 방송된 '다시또역시'는 역사학 전공자들이 한국사의 여러 논쟁적인 주제를 재미있게 토론을 통해 진행하는 팟캐스트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이 있다면 지금 최전선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젊은 학자들의 따끈따끈한 목소리가 살아있는 이 팟캐스트를 들어야 한다.

[이문영 역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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