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교육의 뜨거운 바람 분명한 목표가 가장 중요

  • 고평석
  • 입력 : 2017.05.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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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휴먼-76]
- 코딩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고려 후기 몽골어 열풍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적었다.
- 인기 언어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보다 확실한 목표가 필요하다.


2016년 3월 알파고가 우리에게 충격을 준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범국민적인 현상이 되었다. 어떤 분야에 있는 사람이든 인공지능에 대해 한두 마디씩 이야기한다. 사실 인공지능은 1943년, 지금으로부터 74년 전에 탄생했다. 1943년 워런 매컬럭은 인공지능에 관한 첫 번째 논문 '뇌의 뉴런 모델'을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해 월터 피츠와 함께 인공 신경망 모델을 제안했다. 그 후 인공지능 분야는 숱한 굴곡을 겪었다. 사실상 소멸 상태라고 여겨진 때도 있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퍼지 이론이 가전제품에 잠시 적용되기도 했다. (책 <인공지능 개론>, 마이클 네그네빗스키 저) 영화에서는 중요한 소재로 끊임없이 소비되었다. 곰곰이 따져보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새삼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라 보인다. 인공지능의 수준이 이전보다 훨씬 올라갔다. 실생활의 모습을 바꿀 만한 진보가 이루어져 다양한 서비스, 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각자의 직업을 빼앗을 수 있다고 하니 긴장감은 이전 인공지능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때와 사뭇 다르다. 그 덕분에 크게 주목을 받는 분야가 코딩 교육이다. 공교육, 사교육을 가리지 않고 뻗어나가고 있다. 초기 단계라 시행착오가 있지만 부모, 학생 모두 아직까지는 만족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일부 기업들도 전 직원을 대상으로 단기적인 프로그래밍 교육을 실시 중이다. 우리 사회의 일시적인 유행은 아닐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생각보다 그 기세가 오래 이어질 듯싶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어와 코딩 교육 중요성
▲ 영어와 코딩 교육 중요성
프로그램을 배운다는 것, 즉 코딩 교육은 일종의 언어 학습이다. 기계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수단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나 중국어 학습도 결국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임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앞으로의 세상은 기계와의 소통이 불가피하다. 소위 사물인터넷(IoT)은 우리 삶을 기계들 속으로 옮겨놓을 확률이 높다. 단순히 기계를 이용할 줄 아는 것과 기계와 소통할 줄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외국어, 특히 영어에 능했던 사람들이 따끈한 정보를 접하고 그 시차를 이용해 자신의 부나 명성을 쌓아왔던 과정과 비슷하게 전개될 것이다. 프로그램 언어를 남들보다 잘 아는 것이 곧 힘이 된다.

특히 세상의 큰 흐름이 바뀌는 것에 늘 발 빠르게 우리는 대처하곤 했다. 지정학적 특성상 외국어를 배우는 데 민감했다. 그런 예들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금 부끄럽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만큼 유연했다고도 볼 수 있다. 세상 이치는 대체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맞추어가는 데 능했다. 큰 힘을 가지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외부 세력이 바뀔 때마다 언어의 힘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언어를 '제대로' 배우고 익히는 자세가 중요하다. 맹목적인 추종은 실속 없이 부끄럽게만 만든다. 확실한 목표와 방향이 필요한 이유다.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출처=위키피디아
▲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출처=위키피디아
무조건적으로 외국어를 습득하려 했던 것이 고려 후기다. 이때 송나라가 거의 몰락하고 몽골족의 나라가 득세했다. 고려는 몽골에 강렬히 저항했다. 강화도로 숨어들어간 왕실, 무신정권은 무기력했으나 자신의 땅을 지키려던 백성들은 용맹했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저항은 빛을 보지 못했다. 고려는 원나라의 사위 국가가 되었다. 사실상 식민지가 되었다. 세상의 주인이 원나라임이 확인되자, 고려 사람들은 가장 먼저 몽골 언어를 배웠다. 몽골어를 배우는 것은 유행이었다. 특히 상류층이 열심이었다. 몽골에 지배를 받게 되면서 고려 왕실 권위가 무너졌으니 상류층은 오히려 행동에 제약이 없었다. 몽골을 맹목적으로 따라 한다고 해서 손가락질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몽골식 옷차림, 몽골식 변발, 몽골식 이름 등이 널리 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어에 능숙한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겉핥기식 교육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고려 시대 때 통역을 잘못해 원나라와 관계가 미묘해진 적도 있었다. (책 <조선왕조실록1 태조-세종편>, 이성무 저) 몽골어 교육 열풍이 불었던 것을 감안하면 뜻밖의 결과였다. 그 때문에 충렬왕 2년인 1276년에 참문학사 김구의 건의로 통문관을 만들었다. 제대로 된 외국어(중국어, 몽골어, 일본어, 여진어 등) 교육을 하기 위한 훈련 기관이다. 이전 통역관인 설인(舌人)이 미천한 신분에 상식이 풍부하지 않았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경향마저 있었다. 몽골어를 잘하는 사람은 드물고,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사익을 챙기려 했다. 몽골어가 널리 유행했으나 배움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없으니 깊이가 얕았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기업에서든, 재취업 교육에서든 코딩 교육은 고려인의 몽골어 학습 열풍의 우를 범하면 안 된다. 누구나 얕게 할 줄 아는데,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혹자는 인공지능의 발달에 따라 몇 년 뒤 코딩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굳이 코딩을 배울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다. 여전히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코딩을 인간이 하지 않는 상황에서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것은 어떠한 가치가 있을까? 인간의 역할과 그 가치에 대해 아래의 칼럼에 설명되어 있다.

"머신러닝은, 혹은 인공지능은 궁극적으로 코딩이라는 노동을 대체할 것이다. …. 그 시기가 오면 코딩이라는 행위는 빠르게 사라지겠지만, 우리의 직업 자체는 천천히 변할 것이다. 우리는 코딩을 하지 않겠지만," 어떤 기술을 이용해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한다"는 업무의 본질을 유지할 것이다. …. 우리는 요구 사항을 정의하고 머신러닝은 실제로 코딩을 변경하는 동거 기간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 How를 머신러닝에게 맡기고, 우리는 What과 Why에 집중하는 시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칼럼 <개발자와 머신러닝, 무엇을 할 것인가>, 임백준 글, <마이크로소프트웨어 vol. 387>)

물론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먼 미래에 언젠가는 인간의 기여가 아예 필요 없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의 일은 아니다. 기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아는 인력은 중요하다. 인공지능이 이들의 업무를 대체해도, 그 결과물이 가져올 세상의 변화를 제시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프로그램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기계와 소통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그곳에 새로운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우고 난 후에 그 지식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에게 중요한 미션을 부여하는 역할도 이들의 몫이다. 영어든, 중국어든, 프로그램 언어든 언어의 열풍이 불었을 때, 맹목적으로 좇아갈 것이 아니라 확실한 목표와 방향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고평석 인문디지털 커넥터
▲ 고평석 인문디지털 커넥터
[고평석 인문디지털 커넥터, 책 '제4의 물결, 답은 역사에 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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