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 저작으로 남지 못한 진일보한 신채호의 역사관

  • 이문영
  • 입력 : 2017.06.1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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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한국사-52]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제는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 것 같은 명구다. 누가 한 말이냐고 물으면 대개 신채호의 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신채호의 말이 아니다. 실제로는 누가 했는지도 알 수 없는 말이다. 누군가는 있을 것이다. 저 말을 처음 쓴 사람이. 누군가가 저 말을 쓰면서 신채호가 했다고 권위를 입혔을 것이다. 그게 누군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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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말이다 보니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을 찾는 노력들도 기울였다. 처칠이 한 말이라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처칠도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주장 역시 많다. 연설문이나 처칠의 글에 나오지 않으니 처칠의 말이 아닐 가능성도 역시 높다. 하지만 처칠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을 왜 신채호의 말로 둔갑시켰을까? 신채호가 갖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신채호는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라는 독특한 지위의 사람이다. 그가 남긴 역사책은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가령 최남선과 같이 스스로를 천재로 생각했던 자존감 높았던 이도 자신의 주장을 신채호를 접한 뒤에 대번에 수정해버렸을 정도다.

역사가이자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사진=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 역사가이자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사진=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지금도 역사학자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신채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신채호의 권위를 빌리고자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저 말 자체로 보자면 결국 역사를 잊지 말자, 즉 역사를 기억하자라는 말이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바로 여기서 신채호가 한 말이라고 주장했을 때 이 말은 그 속내가 분명해진다. 일제에 대항해 싸우다 감옥에서 숨을 거둔 신채호의 말에서 일제강점의 치욕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작동하게 된다. 문제는 그다음에 있다. 역사를 기억하고 간직하자는 긍정적 메시지보다는 피해를 본 사실에 대한 증오감을 부추기게 되는 것이다. 일본과 친일파에 대한 분노가 온몸을 뒤덮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민족이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던 말이다. 즉 근대에 와서 수입된 번역어다. 1876년 독일 법학자 블룬칠리의 책을 번역한 가토 히로유키가 'nation'을 '민종'으로 'volk'를 '국민'으로 번역했는데 그 뒤에 nation을 히라타 도스케와 량치차오(보통 양계초라고 많이 말한다)가 '족민' 혹은 '민족'이라고 번역하게 되었다.

즉 '민족'이라는 말은 일본과 중국에서 나온 번역어다. 그런데 처음 받아들인 개념을 블룬칠리에게서 가져왔다는 점이 의미심장한 문제를 낳았다. 블룬칠리는 '국민'을 '민족'보다 우위에 둔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민족이 국가를 이루어 국민이 될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며, 스스로를 통치할 만한 지와 덕을 겸비하지 못한 민족은 국민이 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즉 능력이 없는 민족은 식민지가 되어도 마땅하다는 개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생가지.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6호./사진=대전광역시 중구 문화체육과
▲ 단재 신채호의 생가지.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6호./사진=대전광역시 중구 문화체육과
우리나라에서는 1900년 1월 12일자 '황성신문'에 처음 민족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 이 용어를 전파한 사람은 량치차오였고, 량치차오 역시 블룬칠리의 영향을 받은 상태였다. 량치차오는 민족이 발전하면 국민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내 여러 민족을 모아 '국민'을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08년 7월 30일자 대한매일신보에는 논설 '민족과 국민의 구별'이 실렸는데 량치차오의 의견과 같은 것으로 국가를 이루지 못한 민족은 존재 가치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 무렵 대한매일신보에는 신채호가 주필로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채호의 말 중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와 유사한 것으로 평가받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지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지지, 오호라 역사가의 책임이 막중할진저."

이 말은 신채호가 '독사신론'에 한 말이다. 대한매일신보 1908년 8월 29일자에 실렸다. 저 말 역시 민족과 국민을 분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족이 국민이 되는 핵심적 요소가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족은 역사가 없으면 국민이 되기 힘들 뿐이지만 역사는 민족이 없으면 아예 존재 자체가 말살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신채호의 민족과 역사에 대한 인식은 그 유명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말에도 그대로 들어 있다. 나(아)와 내가 아닌 남(비아) 사이의 관계(투쟁)로서 역사는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역사관을 신채호는 끝까지 믿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신채호가 초기에 믿은 이런 역사관에는 큰 약점이 있었다. 아와 비아의 투쟁에서 져버린 민족은 어떻게 되는가? 그런 민족은 타 민족에게 흡수돼버려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런 약육강식의 짐승 같은 세계가 인간의 세상에서도 타당한 것인가?

바로 이런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사회진화론이라고 한다. 제국주의의 논리 아래 흥했던 이론이다. 신채호는 약자를 밟아버리는 사회진화론에 회의한다. 그 결과 1920년대부터 신채호는 무정부주의자로 탈바꿈한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은 조선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놓이는 것을 정당화한다. 약한 민족이니까 강한 민족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신채호는 그런 논리를 인정할 수 없었다. 신채호는 이제 이렇게 부르짖는다.

"소위 정치는 강자의 행복을 증진하여 망국약민이 다시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는 그물이며, 소위 역사는 성자는 군주를 만들고 패자는 도적을 만들어 이둔으로 시비를 삼은 구렁이요, 소위 학설은 이따위 정치, 이따위 역사를 옹호한 마설이다."

역사가 권력에 복종하고 승자를 찬양하는 엉터리라는 일갈이다. 무정부주의자다운 외침이다. 신채호는 민족이 아니라 민중을 중시하고 민중을 새로운 역사의 주체로 바라보았다. 불행히도 신채호는 이런 인식 변화를 역사책으로 남기지 못하고 1928년에 무정부주의 운동 중 체포되었고 옥사하게 되어 그의 저작은 아직 민족주의적 향기를 품은 것들만 남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서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여 여전히 그의 발목에 민족이라는 사슬을 채워놓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형태다. 신채호는 이미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었던 것이다.(권순홍, 민족주의 역사학의 표상-신채호 다시 생각하기,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역사비평사)에서 여러 부분을 인용하였음을 밝혀둔다.)

[이문영 역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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