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와 그 사회의 호기심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놨다

  • 고평석
  • 입력 : 2017.07.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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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휴먼-81]
- 과학의 발달은 호기심의 역사다.
- 일본 에도 시대에는 일반인들도 수학 문제를 통해 호기심을 교류했다.
- 호기심 넘쳤던 세종대왕은 국가의 융성을 이끌었다.
-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호기심을 길러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상당하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무엇이든 알려고 노력한다. 자기 기준에 이상해 보이는 것을 거침 없이 이야기한다. 이렇게 바뀌면 어떻겠냐고 창의적 발상을 한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비범한 '영재'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런 기대는 곧 깨진다. 유치원, 학교 등의 교육기관에선 호기심 넘치는 질문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다. 엉뚱한 질문은 수업의 흐름을 깰 뿐이다. 효율을 떨어뜨리는 인물로 낙인 찍힌다. 호기심 넘치던 수많은 아이들이 점차 호기심 '촉'이 사라지는 이유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데도 그것을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차단당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생각을 못 하게 된다.

빌 게이츠/사진=매일경제 이승환 기자
▲ 빌 게이츠/사진=매일경제 이승환 기자

사실 호기심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런 발전과 진보를 이룰 수 없다. 얼마 전 책 <빅 히스토리>(데이비드 크리스천, 밥 베인 저)을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추천사를 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빅 히스토리가 제 삶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학문 분야"라고 밝혔다. 자연과학, 역사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이 하나로 녹아 들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실제 빅 히스토리는 우주의 역사, 지구의 역사, 생명의 역사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하나의 맥으로 짚어내고 있다. 복잡성 증가의 임계국면을 우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총 8번-빅뱅(137억년 전), 별의 출현(135억년 전), 새로운 원소의 출현(135억년 전), 태양계와 지구의 시작(45억년 전), 지구상의 생명 출현(38억년 전), 집단학습(20만년 전), 농경의 시작(1만1000년 전), 근대 혁명(250년 전)-을 맞이했다고 밝힌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내용이 호기심으로부터 풀어냈거나 추정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우주가 어떻게 오늘날과 같이 되었는지?", "어떻게 우주가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우리가 살게 된 지구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등의 호기심이 결합되어 '빅 히스토리'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된다.

호기심은 학자들만의 영역은 아니다. 호기심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 좋은 예도 있다. 일본 에도 시대 때는 '산가쿠(산액, 算額)'가 크게 유행했다. (수학자가 아닌) 남녀노소 누구나 수학 문제를 내고 풀었는데, 그 중 일부는 관세음보살에게 알리고 감사를 전하기 위해 목판에 새겨 사찰에 걸어 놓기도 했다. 누구나 오가며 수학 문제들을 볼 수 있었다. 특수계층이나 지식인들이 아닌 전 사회의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는 일종의 수학 대잔치였다. 문제의 수준 또한 꽤 높았다고 한다. 책 <명견만리>(정치, 생애, 직업, 탐구 편, KBS <명견만리> 제작팀 저)에는 "실제로 쓸모 없어 보이는 수학 문제를 만들고 풀었던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이 모여 일본의 독창적인 수학 와산(和算, 재래의 일본 주산)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산가쿠'의 순기능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일본 구석구석에 있는 대학 혹은 직장에서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이유도 수학 문제에 대한 전통적인 호기심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을 듯 싶다.

호기심은 정치인의 몫이자 역할이기도 하다. 특히 국가 경영자가 국가 운영에 대한 호기심이 적으면 나라를 혼란 상태에 빠져들게 한다. 왕이 있던 시절이나 대통령, 총리가 있는 현재 모두 마찬가지다. 명나라 영종을 보면 지도자의 호기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는 정치에 문외한이었다. 관심이 특별히 없었다. 호기심이 빈약한 왕은 허수아비일 뿐이다. 집권 초기에는 할머니 장태후가 세 양씨(양영, 양사기, 양부)를 데리고 통치를 했다. 이들이 죽자 영종이 선택한 인물은 왕진이었다. 자신의 태자 시절 독서를 가르쳤으며 즉위 후에도 선생이라 부를 정도로 신임하던 환관이다. 왕진이 온갖 권력을 휘두른 데에는 영종이 아무런 호기심 없이 뒤로 물러 앉아 있던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하필 왕진은 국제 정세를 잘 못 읽는 인물이었다. 몽골 계통의 오이라트가 쳐들어오자 영종에게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정벌하자고 부추긴다. 그리고 중국 역사상 최초로 직접 정벌에 나섰던 중국 황제가 북방 민족의 포로가 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이전에 북송 말기 휘종은 금나라에 잡혀가긴 했으나 직접 싸우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무기력하고 호기심 없던 황제는 자신이 믿었던 환관에게 모든 일을 다 맡기곤 수치스런 일을 겪은 것이다.

세종대왕 동상/사진=매일경제 김호영 기자
▲ 세종대왕 동상/사진=매일경제 김호영 기자
이와 반대로 지도자가 호기심이 넘치면 백성의 삶이 윤택해진다. 대표적인 예가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의 호기심은 신하들이 피곤해할 정도였다. 과거 시험에 합격한 후 집현전에 근무하게 된 신하들이 생각보다 높은 강도의 학습량에 당황하기도 했다.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신하들과의 토론을 즐겨 항상 신하들이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궁금한 것이 많았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던 세종대왕은 역사적인 업적을 수도 없이 내 놓을 수 있었다. 백성들에게 성리학을 널리 전파하고 각자 생각을 쉽게 전할 방법이 없을까라는 고민은 훈민정음 창제로 이어졌다. 중국 농업 책을 들여와서 우리 풍토에 맞지 않는 농사법으로 농사를 짓던 백성에게 우리에게 맞는 것을 줄 수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은 농사직설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중국 달력에서 벗어난 우리만의 역법이 가능할 것이라는 호기심은 실제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우리의 왕은 강렬한 호기심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호기심의 가치는 유효하다. 인간과 로봇이 차별화되는 몇 안 남은 지점이 호기심이기 때문이다. 그 호기심으로 인해 로봇과 비교하여 인간은 상대적 우월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호기심을 살려주는 사회적 분위기를 못 만들고 있다.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호기심이 넘치는 정치인은 국가를 융성하게 만든다. 호기심을 따라 움직이는 기업인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쉴 새 없이 제공한다. 호기심이 충만한 과학자는 힘든 도전 과제를 웃으며 돌파할 수 있다. 호기심을 배움의 벗으로 삼은 학생은 공부가 즐겁게 된다. 인공지능이 현재 우리 일 대부분을 해결해 준다고 해도 정치인, 기업인, 과학자, 학생이 없어지진 않는다. 지금과 정치, 경영, 과학연구, 학습의 모습이 달라질 뿐이다. 호기심을 극대화할 수 있고, 그것을 풀어줄 수 있으며, 다같이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과거 일본 에도 시대의 '산가쿠(산액, 算額)'를 본떠 우리도 인터넷 상에서 함께 지적 호기심을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우리 사회에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을 경우 어떤 것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해 보인다. 작은 시작이 큰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고평석 인문디지털 커넥터
▲ 고평석 인문디지털 커넥터
[고평석 인문디지털 커넥터, 책 '제4의 물결, 답은 역사에 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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