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사 밸리 시라즈의 명작, '그랜트 버지' '세인트 할렛'

  • 나보영
  • 입력 : 2017.09.0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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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할렛 와이너리의 포도밭
▲ 세인트 할렛 와이너리의 포도밭
[세계의 와인기행-37] 지난봄, 호주와인협회(Wine Australia)를 통해 호주 각 지역의 와이너리들을 돌아보고 왔다. 지구 반대편의 호주는 한창 가을이었고, 와이너리들은 막 수확을 끝낸 후였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는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인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수십 년째 프리미엄 시라즈 와인을 만들고 있는 세인트 할렛(St Hallett) 와이너리에 도착하자, 문득 9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2008년 가을에 세인트 할렛의 수석 와인메이커였던 스튜어트 블랙웰(Stuart Blackwell)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에서 열린 시음 행사에서 그의 손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수십 년간 포도를 만져 지문을 따라 인장처럼 검붉은 선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장인의 손을 마주했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세인트 할렛의 테이스팅 룸
▲ 세인트 할렛의 테이스팅 룸
1944년에 설립된 세인트 할렛은 초창기에는 주정강화와인을 주로 생산했다. 1972년에 스튜어트 블랙웰이 합류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서 1980년대부터 현재와 같은 프리미엄 시라즈 생산자로 명성을 얻게 됐다. 스튜어트 블랙웰은 '2003년 올해의 바로사 와인메이커(Barossa Winemaker of this year)'에 선정됐고, 현재 세인트 할렛의 브랜드 앰배서더로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다른 멤버들 역시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와이너리에 방문한 그날은 2007년부터 수석 와인메이커가 된 토비 발로(Toby Barlow)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인트 할렛에서는 밭을 토양의 성질에 따라 세분화해 구역마다 재배합니다. 수확한 포도도 개별적으로 양조하고 나무 수령과 기후 조건에 맞춰 따로 숙성한 뒤 블렌딩 하죠." 발로는 지도 앞에서 밭마다 번호를 매겨가며 각각의 밭에서 나오는 포도로 만든 와인들을 소개했다.

바로사 밸리의 다양한 토양 샘플
▲ 바로사 밸리의 다양한 토양 샘플
가장 인상적이었던 와인은 세인트 할렛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올드 블록 시라즈 2013(Old Block Shiraz 2013)'다. 1980년 첫 빈티지의 성공적인 론칭은 세인트 할렛을 프리미엄 시라즈 생산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바로사 밸리와 이든 밸리에서 수확한 올드 바인으로 만듭니다. 평균 수령 88년 된 포도나무에서 최상의 포도만을 선별해 수확하죠. 따뜻하고 건조한 바로사 밸리의 포도는 풍성한 밑바탕을 형성하고, 서늘한 고지대인 이든 밸리의 포도는 미네랄과 우아함을 부여합니다." 그의 말처럼 그 와인에서는 체리 향, 커피 향과 함께 풍부한 밀도가 느껴졌다.

'블랙웰 시라즈 2015(Blackwell Shiraz 2015)'도 특별한 와인이다. 스튜어트 블랙웰의 공로를 기념해 1994년 처음 출시됐다. 바로사 밸리의 북쪽과 북서쪽의 밭에서 충분히 숙성된 포도로 만들어져 진한 색깔, 짙은 과일 향, 깊은 구조감을 이룬다는 게 발로의 설명이다. 검은 과실류와 카카오 향에 이어 탄탄한 복합미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세인트 할렛 올드 블록 쉬라즈 2013'과 '그랜트 버지 메샤크 쉬라즈 2010'
세인트 할렛 와이너리는 호주 와인 기업 아콜레이드(Accolade)에서 소유하고 있다. 덕분에 그들이 소유한 바로사 밸리의 또 다른 대표 와이너리인 그랜트 버지(Grant Burge)의 와인들도 이곳에서 함께 시음할 수 있었다.

그랜트 버지 와이너리는 1855년 영국에서 이민 온 존 버지에 의해 출발한 이래 5대 손인 그랜트 버지까지 역사가 이어져 왔다. 수령 100년 이상의 포도나무에서 손으로 수확한 포도로 만든 '그랜트 버지 메샤크 시라즈 2010(Grant Burge Meshach Shiraz 2010)'는 호주 레드 와인 중 가장 뛰어난 와인으로 꼽히며, 닐 베케트의 저서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할 와인 1001'에도 소개된 명작이다. 놀라우리만치 깊고 짙은 색깔과 힘찬 구조감을 지녔으며 알코올 도수도 높은 강렬한 와인이었다. 앞으로 20년 정도 장기 보관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발로는 덧붙였다.

와이너리의 풍경은 절정의 가을을 보여주고 있었다. 상반된 계절을 가진 지구 반대편에서 오래전 추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와인을 음미하기에 더없이 멋진 풍경이었다.

나보영 여행작가
▲ 나보영 여행작가
[나보영 여행작가]

※2005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주류저널(Liquor Journal)' 수석기자로 여행과 와인을 담당하며 5년 동안 일했다. 퇴사 후 전 세계 와이너리를 여행하며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는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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