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의 폴 싱어 회장, 탐욕스런 독수리? 소액주주 대변자?

  • 장박원
  • 입력 : 2018.04.0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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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싱어 /사진=연합뉴스
▲ 폴 싱어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CEO열전-55]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알려진 엘리엇의 창업자 폴 싱어 회장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2015년과 2016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삼성전자 분할 문제로 삼성과 공방을 벌였으니 약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엔 현대차를 겨냥했다.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내놓자 약점을 파고들었다. 엘리엇은 1조원가량의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했다고 밝힌 뒤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모든 이해 관계자를 위한 추가 조치를 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경영구조 개선과 자본관리 최적화, 주주환원을 실천할 구체적 방침을 내놓기를 바란다." 삼성과 싸울 때에 비해 점잖은 목소리를 냈지만 속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차 지배구조 개선을 계기로 주가를 띄워 가급적 많은 시세 차익을 남기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싱어 회장이 보여준 전적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미국 로체스터대학에서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법대에 입학해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전공을 살리지 않고 전문 투자자로 나섰다. 물론 학창 시절 배운 인문적 소양과 법 지식은 그가 투자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투자 타이밍을 잡는 모습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그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그는 33세인 1977년 가까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130만달러를 모아 투자업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특별한 재능을 드러내지 못했다. 투자에 대한 열정이 컸지만 실력과 운이 따르지 않았다. 손을 대는 것마다 손실을 봤다. 훗날 포천과 인터뷰하며 싱어 회장은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단어는 손실이라고 강조했는데 사업 초기 연속 실패한 경험이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그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냈다. 부실 자산을 사들여 제값을 받고 파는 방식이다. 이런 전략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바로 페루 국채에 투자한 일이다. 그는 페루 국채를 1140만달러에 사들여 우여곡절 끝에 5800만달러에 넘겼다. 국채 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페루 대통령 전용기를 압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악명을 떨친 것은 아르헨티아 정부와 벌인 소송전이다. 엘리엇이 시체를 탐욕스럽게 먹는 독수리라는 뜻의 '벌처(vulture)펀드'로 알려진 것도 이 일화가 남긴 강렬한 인상 탓이 크다. 아르헨티나가 1000억달러 규모의 국가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겠다며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때는 2001년이다. 아르헨티나 국채를 가진 수많은 채권자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채무액을 감액해 주었지만 싱어 회장은 이를 거부하고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큰 폭으로 할인을 받고 매입한 국채를 액면가로 갚으라고 했으니 봉이 김선달식 장사를 한 셈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엘리엇은 승소해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싱어 회장의 집요함에 투자업계 사람들도 혀를 내둘렀다.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는 또다시 디폴트에 빠지는 등 체면을 구겼다. 그는 페루와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콩고 등 다른 부실한 국가들의 채권을 사들여 온갖 방법을 동원해 투자액의 몇 배를 챙겼다.

싱어 회장의 마수는 약점을 노출한 기업에도 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파산 직전까지 갔던 델파이 회사채를 싼값에 매입해 많은 이익을 남겼고, EMC와 주니퍼 네트웍스에 대해서는 일부 지분을 확보한 뒤 주주가치 개선을 요구하며 시세차익을 올리는 방식을 취했다. 지난해 7월에는 텍사스주에 있는 최대 송전업체 온코 인수·합병(M&A)에 개입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당시 온코 모회사인 에너지퓨처홀딩스를 인수하려고 했던 사람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었다. 가치투자 대가인 버핏과 헤지펀드의 마술사 싱어 회장이 맞붙었던 것이다. '손자병법'에는 승리를 하려면 정공법보다는 변칙을 써야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두 사람의 싸움에서도 이것이 증명됐다. 온코 외에 비슷한 시기에 퀄컴이 470억달러에 NXP반도체를 인수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분란을 일으킨 사건도 유명하다.

싱어 회장은 130만달러로 시작해 지금은 총운용자산이 350억달러에 달할 만큼 회사를 키웠지만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허약한 국가나 약점을 가진 기업을 공격해 최대한 이익을 내고 손을 떼는 투자 행태를 높게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주장하곤 한다. "엘리엇은 자본시장 질서와 규율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우리는 시장을 교란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기꾼들과 싸우는 것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고 있다."

그와 한배를 탄 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은 고개를 끄떡일지 모르겠지만 자산 가치와 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베팅하는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싱어 회장이 자기 배만을 채우는 수준을 넘어 정말로 자본시장 질서를 지키려고 한다면 지금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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