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폴먼 유니레버 회장이 페이스북 광고를 중단하려는 이유

  • 장박원
  • 입력 : 2018.04.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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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폴먼 유니레버 회장 /사진=wikimedia
▲ 폴 폴먼 유니레버 회장 /사진=wikimedia


[글로벌 CEO열전-57] 지난 2월 폴 폴먼 유니레버 회장은 마케팅 부서에 의외의 지시를 내렸다. 페이스북 광고 중단을 검토하라는 것이었다. 하루 수억 명이 접속하는 페이스북에 광고를 하지 않으면 매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먼 회장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페이북이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페이북은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유출하고 가짜뉴스와 불법 콘텐츠를 유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가 미국 의회에 불려 나가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해명하기도 했다. "소비자가 신뢰할 수 없는 플랫폼에는 광고를 게재할 수 없다." 유니레버의 한 임원은 이런 말로 최고경영자의 의중을 전달했다. 폴만 회장은 누구보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트위터에는 빈곤과 질병 퇴치, 환경과 소외계층 보호 등 사회활동에 관한 메시지가 대다수다. 이를 알리면서 자연스럽게 유니레버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09년 최고경영자에 오른 이후 해마다 지속 가능 경영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그 결과 폴만 회장은 미국과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기업인이다. 지난해 한국 화장품 업체인 카버코리아를 약 3조원에 인수하며 주목을 받았다. 연 매출이 4300억원에 불과한 회사를 이 금액에 사들인 것에 업계는 놀랐다. 하지만 유니레버와 카버코리아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하면 승산이 있었다. 유리레버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아시아 시장에서 카버코리아의 성장성이 높았던 것이다. 유니레버 측도 아시아에서 입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이는 장기 전략과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폴만 회장의 경영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에도 그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최고경영자의 97%는 지속 가능성이 미래 사업의 성공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비즈니스 리더들이 장기적 가치의 창조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폴먼 회장은 유니레버 역사에서 특별한 인물이다. 이 회사는 최고경영자를 내부 인사에 맡기는 관행이 있었다. 유니레버에 특화된 인재만이 수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깬 사람이 바로 폴먼 회장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경영학을 공부했다. 신시내티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입사한 곳이 프록터앤드갬블(P&G)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며 요직을 두루 거쳤다. 사실상 P&G 맨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네슬레 부사장으로 영입돼 최고재무책임자 역할을 수행하다가 유니레버를 맡게 된 것이다.

유니레버가 오랜 전통을 깨고 외부인인 그를 최고경영자로 선택한 것은 정체된 실적 때문이었다. 거의 10년간 매출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령탑에 올랐으니 폴만 회장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방식대로 회사를 경영했다. 지속 성장을 위해 좋은 기업이라는 명성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면서 과감한 인수·합병에 나섰다. 때로는 다소 공격적으로 기업을 인수하기도 했다. 2010년 샴푸 업체인 알베르토쿨버를 37억달러에 인수한 것이 그렇다. 물론 그가 경영하고 나서 유니레버 매출과 영업이익이 획기적으로 좋아진 것은 아니다. 기대했던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주주들도 없지 않았다. 지난해 초에는 워런 버핏이 1430억달러를 베팅해 유니레버를 사겠다고 제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폴만 회장은 버핏의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는데 그것 역시 장기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부 유니레버 투자자들은 크게 실망하며 폴먼 회장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그는 일부 사업을 재편하고 유망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비난을 피해갔다.

장기적으로 보고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실적을 올리는 비결이라는 그의 신념은 언제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2016년 미국 언론과 인터뷰하며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피력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나쁜 미래를 만드는 기업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재 기업들은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비용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의 이상(理想)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같다. 너무 점잖은 사업 방식은 실적이나 성장에 보탬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재 시장에서 유니레버가 가지고 있는 확고한 위치와 그동안 쌓아올린 명성은 든든한 우군 역할을 하며 폴먼 회장을 지켜줄 것이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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