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대부자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의 '정치권 관계설정' 노하우

  • 장박원
  • 입력 : 2018.05.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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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3대 부자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이 시진핑 국가주석을 치켜세운 이유는

[글로벌 CEO열전-60] "마윈, 마화텅, 쉬자인." 세 사람은 중국을 대표하는 부자들이다.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과 텐센트를 설립한 마화텅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지만 쉬자인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다. 그는 부동산 기업인 헝다(에버그란데)그룹을 세워 중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업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부동산 업계에서는 완다그룹 최고경영자인 왕젠린 회장이 더 주목을 받았지만 작년부터 쉬 회장이 재산이나 명성에서 그를 넘어섰다. 중국 내에서는 마윈이나 마화텅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과시하고 하다.

중국 잡지인 신차이푸는 최근 중국 부자를 발표했는데 마화텅이 1위, 마윈이 2위, 쉬자인이 3위를 기록했다. 앞서 블룸버그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부호 순위에서 마윈과 마화텅, 인도 재벌인 릴라이언스그룹의 무케시 암바니 회장에 이어 쉬 회장이 4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그가 크게 주목을 받았던 때는 지난해 10월이다. 중국 재력가들을 연구하는 후룬연구원이 쉬 회장을 최고 부호로 꼽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다시 마윈과 마화텅에게 밀렸지만 이 소식이 전해진 뒤 쉬 회장은 화제의 인물이 됐다.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사진=헝다그룹 홈페이지
▲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사진=헝다그룹 홈페이지

그의 부상은 중국 부동산 시장 거품과 관련이 있다. 왕젠린 회장과 달리 그는 중국 내 부동산 투자에 집중했다. 그리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며 부자가 됐다. 헝다그룹은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는데 보유 자산 가격이 뛰면서 주가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이 때문에 중국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쉬 회장의 부자 순위도 내려갈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다. 더욱이 다른 부동산 재벌과 마찬가지로 그도 돈을 빌려 사업을 확대해 왔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높은 부채 비율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내공을 가지고 있다. 이해 관계자들과의 원만한 관계가 그것이다. 적절한 선에서 정부와 협업하는 그의 모습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에는 중국과학원과 대규모 과학연구단지 조성 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첨단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다. 다수의 중국 언론이 헝다그룹의 투자에 찬사를 보내는 논평을 냈다. 계약 체결에 앞서 그는 중국 정부가 좋아할 만한 발언도 잊지 않았다. 3월 실적을 발표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헝다그룹은 첨단 산업으로 진격해야 한다. 생명과학과 우주항공, 반도체, 인공지능과 로봇 등 하이테크 분야에서 중국과학원과 협력할 것이다."

쉬 회장이 태어난 곳은 허난성 타이캉이다. 이 지역은 중국에서 가장 빈곤할 뿐만 아니라 자주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오지다. 그가 야망이 없었다면 고향에서 평범한 농부로 살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찍 모친을 잃고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도 신분 상승의 꿈을 키웠다. 열심히 공부한 덕에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에는 10여 년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돈을 모았다. 한 대형 체인점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이 회사 사장은 쉬 회장의 성실함과 수완을 눈여겨보았고 중요한 분야를 맡겼다. 신규 점포를 개점할 때 필요한 부동산 개발 사업이다. 땅과 건물에 눈을 뜨게 된 그는 여기서 잘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직감했다. 체인점에서 부동산 경험을 충분히 쌓은 그는 1996년 헝다를 설립하며 독립한다.

당시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쉬 회장은 금융권 대출을 받아 오를 만한 땅과 건물을 사들였다. 물론 그의 경쟁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차별화가 중요했다. 부동산 역시 싸고 좋은 것이 잘 팔렸다. 가격 상승폭도 컸다. 쉬 회장은 될성부른 부동산을 식별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대도시 대신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중소 도시의 부동산은 그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대상이 됐다. 자기자본이 별로 없었지만 차입 경영을 통해 그는 짧은 기간 안에 헝다그룹의 외형을 키울 수 있었다.

헝다그룹/사진=헝다그룹 홈페이지
▲ 헝다그룹/사진=헝다그룹 홈페이지

정부의 입김이 센 금융권 지원이 절실했던 터라 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적극 참여했고 자신이 바람직한 기업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그 결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모범적인 사업가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시진핑 국가주석의 열렬한 추종자가 됐다.

그는 지난해 정치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까지 했다. "우리는 공산당 중앙위를 주도하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강력한 영도력을 핵심으로 생각한다. 그의 리더십으로 우리는 가난과 싸워 확실하게 승리할 것이다." 쉬 회장은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면 최고가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정치권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도 중국에서 최고 기업인이 되기 위해서다. 그의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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