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겨울 맞는 칠레에서 끓인 와인 '나베가도' 한 잔의 맛

  • 나보영
  • 입력 : 2018.05.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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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는 6월에 초겨울 날씨를 보이고 일교차도 크게 난다. /사진 제공=프로칠레
▲ 칠레는 6월에 초겨울 날씨를 보이고 일교차도 크게 난다. /사진 제공=프로칠레


[세계의 와인 기행-56]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드는 6월,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는 겨울이 시작된다. 수도 산티아고의 기온이 서울의 11월과 비슷해지는데, 일교차가 평균 11도씩 크게 벌어진다. 저녁만 되면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도 몸을 떨었던 칠레 여행이 떠오른다. 피로와 추위에 지쳐 따뜻한 국물이 간절해지곤 했다.

칠레의 독립을 위해 활약했던 장군의 이름을 딴 베르나르도 오이긴스(Bernardo O'Higgins) 지역을 통과할 때 여행의 동반자인 음식 전문기자 세실리아가 말했다. "이렇게 쌀쌀한 날씨에는 '카수엘라(cazuela)'라는 국물 요리를 먹는 게 좋습니다. 고기와 채소와 쌀을 냄비에 넣고 끓인 요리인데, 특히 몸살이 날 것 같을 때 먹으면 힘이 난답니다."

스튜에 밥을 말아 국밥 같은 요리
▲ 스튜에 밥을 말아 국밥 같은 요리 '카수엘라'.

카수엘라는 우리의 뚝배기와 비슷한 그릇을 일컫는 단어이자 거기에 끓여 내는 요리를 뜻한다. 말로만 들었을 때는 수프나 스튜 비슷한 요리겠거니 했는데, 작은 동네 식당에 들어가 마주한 카수엘라는 마치 우리네 국밥 같았다. 큼직한 소갈비, 감자를 비롯한 채소, 쌀이 듬뿍 들어간 모습이 흡사 갈비탕처럼 보였다. 카수엘라는 집집마다 요리법이 다른데 이렇게 쌀을 넣어 한 그릇 뚝딱 비울 때가 많다고 세실리아는 덧붙였다. 따끈한 국물과 든든한 밥을 먹었더니 금방 몸에 온기가 돌고 속이 든든해졌다.

칠레에서는 쌀쌀한 날이면 와인도 따뜻하게 끓여 먹는다. 와인을 데워 먹는 문화가 서양에는 보편적으로 번져 있다. 냄비에 레드 와인을 붓고 레몬 껍질, 얇게 저민 오렌지, 계피, 정향, 설탕 등을 넣어 약한 불에서 가열해 만든다. 추위, 감기, 불면에 도움이 되고, 성탄절 파티나 겨울 축제 음료로도 인기 있다. 독일에서는 글루바인(gluh wein), 프랑스에서는 뱅쇼(vin chaud), 북유럽에서는 글뢰그(glogg)라 부르고, 영어로는 멀드 와인(mulled wine)이라고 한다.

와인을 끓여 먹는 문화는 서양에서는 보편적이다. /사진 제공=셔터스톡
▲ 와인을 끓여 먹는 문화는 서양에서는 보편적이다. /사진 제공=셔터스톡

칠레에서는 나베가도(navegado)라고 부르며 즐겨 마신다. 재미있는 건 다른 국가들의 명칭은 모두 '끓인 와인'이란 뜻인데, 칠레의 나베가도는 '항해'라는 뜻이라는 점이다. 끓인 와인에 떠 있는 오렌지 조각들이 바다에 떠 있는 배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렇게 부르게 됐다고 한다.

나베가도를 만들 때는 칠레의 대표적인 적포도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카르메네르를 쓴다. 서서히 가열하다 보면 알코올은 조금씩 날아가고, 와인의 과실 향과 견과류 향은 짙어진다. 칠레 사람들은 이때 알코올 도수와 과일 풍미를 더하기 위해 오렌지 향이 나는 리큐어 같은 술을 첨가하기도 한다.

"나베가도는 특히 남부지방 사람들이 많이 마셔요. 북부는 덥고 건조하지만 남부는 춥고 강수량도 많거든요. 따뜻한 와인이 길고 지루한 기후를 견디게 도와주죠." 이 무렵 칠레는 저녁이면 무척이나 서늘할 테니 여행 중 만났던 사람들은 카수엘라나 나베가도를 끓이고 있을는지도. 나 역시 해마다 겨울이면 직접 와인을 끓여 먹곤 하는데, 올해는 장마 기간에도 시도해 봐야겠다. 칠레 남부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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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영 여행작가]

※잡지 기자 시절 여행, 음식, 와인 분야를 담당한 것을 계기로 여행작가가 됐다. 유럽, 북미, 남미,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안 다니는 곳이 없지만, 특히 와인 생산지를 주로 여행한다. 매경프리미엄 외에도 '한국경제신문'과 '와인21 미디어'에 본인 이름을 건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더트래블러' 'KTX매거진' '무브' 등 여행 전문지에도 기고한다. 2018년 봄엔 가까운 식도락의 도시 후쿠오카를 다룬 여행서도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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