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최장수 수장, 로이드 블랭크파인 회장의 생존 비결

  • 장박원
  • 입력 : 2018.06.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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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 /사진=연합뉴스
▲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CEO열전-63] 최근 국내 증권가에서는 미국 간판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30일 골드만삭스증권 서울지점이 공매도 미결제 사고를 냈기 때문이다. 금액은 약 60억원으로 많지 않지만 이를 계기로 공매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는 배경에는 골드만삭스에 대한 평판도 자리 잡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고객들에게 엄청난 손해를 안겼으면서도 회사 자체는 건재하게 살아남아 도덕적인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고객 돈을 빨아먹은 흡혈귀"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2012년 골드만삭스의 한 임원은 미국의 한 언론 기고문에서 이를 더 신랄하게 비판했다. "골드만삭스의 조직문화는 너무 독성이 강하고 파괴적이다. 회사 안에선 고객을 꼭두각시라고 부른다. 파생상품 판매회의에서 고객을 도울 방법에 대해 전혀 논의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돈을 빼앗아 올 것인지에만 관심을 둔다." 그리고 골드만삭스가 타락한 원인으로 최고경영자인 로이드 블랭크파인 회장을 지목했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골드만삭스는 원래 이런 회사가 아니었다. 팀워크와 성실성, 겸손을 매우 중시하고 언제나 고객 편에서 일을 했던 기업이었다. 하지만 블랭크파인 회장과 게리 콘 사장이 이런 골드만삭스 조직문화를 망가뜨렸다."

정말 블랭크파인 회장은 골드만삭스를 고객을 등쳐 먹는 파렴치한 기업으로 만들었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고객들의 피해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은 막대한 보너스를 챙긴 것은 욕을 먹어 마땅하지만 금융위기 같은 어려운 시기에도 골드만삭스를 지켜낸 것은 평가해줄 만한 일이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잡초같이 질긴 그의 삶이 있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미국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집배원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그는 열심히 공부해 변호사가 됐다.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다. 졸업 후 대형 투자은행에 들어가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로펌에 입사했다. 세금 전문 변호사로 일하던 그는 원자재 투자업체로 자리를 옮겨 금 트레이더로 일했다. 이는 그가 월가와 인연을 맺게 해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이 회사가 훗날 골드만삭스에 합병되면서 청년 시절의 꿈을 이루게 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피합병 회사 출신인 그가 골드만삭스 수장에 오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골드만삭스에는 인재들이 넘쳤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그는 맡은 업무를 열심히 처리하며 인정을 받았다. 그 결과 트레이딩 사업부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대표를 맡을 수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2006년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행크 폴슨이 미국 재무장관으로 임명되며 그가 자리를 이어받았던 것이다.

블랭크파인 회장은 자신의 성공 스토리에 대한 강연할 때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곤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 주택단지에서 태어난 가난한 집배원 아들이 세계적인 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스스로 이렇게 답변한다. "나는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골드만삭스에 합류하게 됐다. 이 경험을 통해 인생은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는 일을 최고로 잘하려고 하는 게 중요하다. 당면한 업무에 집중하면서 일의 범위를 넓혀나가다 보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인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이런 태도를 유지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며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했다. 고객에게 피해를 준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최고경영자로서 회사를 지켜야 했다. 물론 여기에는 자신의 이익도 고려됐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거대한 흡혈 오징어'라는 욕을 먹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살아남았고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의 역할을 마감하고 올해 안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후임자도 정했다. 최고운영책임자이자 공동사장인 데이브 솔로몬이다. 그가 아예 회사를 떠날 지 상징적인 직책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른다.

블랭크파인 회장은 지난 4월 CNBC와 인터뷰하며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와는 다소 다른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 경제는 많이 좋아졌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성장할 것이다. 불안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숫자에 집중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상승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금리와 원자재 가격도 과거 경제 회복기에 나타났던 것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는 골드만삭스는 물론 시장과 경제에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결국 서로에게 독이 되는 무역전쟁을 촉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격적이고 비열한 무역전쟁은 몹시 나쁘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 최장수 수장이었던 그의 이 예언은 적중할까? 많은 이들이 세계 경제를 위해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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