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지만은 않은 어드벤처 게임의 미래

  • 이경혁
  • 입력 : 2018.10.0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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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104] ◆대표 어드벤처 게임 제작사의 폐업

막 추석 연휴가 시작되려던 시점께인 지난 주말 미국 유명 어드벤처 게임 제작사인 텔테일게임즈가 폐업을 선언했다. 스토리 중심의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어 오면서 이름을 알렸던 이 스튜디오는 한국에서는 주로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진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 '워킹데드'로 알려진 편이었다. 물론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국내에서 아주 높은 수준의 인지도를 가졌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2012년 첫선을 보이며 그해의 최대 GOTY까지 거머쥐었던 작품인 '워킹데드: 시즌1'은 그래도 상당한 인기를 모으면서 이제는 비주류 장르가 된 어드벤처 게임이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준 바 있었다. 국내에서도 인기에 힘입어 높은 수준의 유저 한글화도 이루어졌고, 드라마성이 강한 게임의 특성을 타고 실제 성우들이 더빙을 입힌 패치도 존재할 정도로 마니아층으로부터는 두터운 지지를 받은 바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인기도 그리 지속되기는 어려웠고, 결국 어드벤처 게임 전문 제작사인 텔테일게임즈의 폐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조금 나이 든 게이머들에게는 상당히 깊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게임들 중에는 어드벤처 장르가 적지 않다. 가장 유명한 루카스아츠사의 작품들인 '원숭이섬의 비밀' '룸' 같은 시리즈가 자주 언급되며, 텍스트 어드벤처와 그래픽 어드벤처의 중간지점을 그려냈던 시에라사의 '킹스 퀘스트' '스페이스 퀘스트' 등도 연배가 좀 있는 게이머들로부터 간혹 언급되곤 한다. 게임사에도 한 자락을 차지하는 1993년의 '미스트'나 21세기 초반의 어드벤처 게임 '사이베리아' 등도 빼놓기 힘든 게임들이다. 두터운 이야기, 미스터리 가득한 분위기, 혹은 플레이어를 뒤흔드는 유머 코드까지 다채로웠던 어드벤처 게임 장르는 그러나 이제는 몇 안되는 전문 제작사들마저도 폐업을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990년에 출시된 루카스아츠의 어드벤처게임
▲ 1990년에 출시된 루카스아츠의 어드벤처게임 '룸'은 동화같은 분위기로 산업사회 초기의 국면을 녹여낸 스토리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면 어드벤처 게임, 혹은 인터랙티브 무비의 시대는 완전히 저물어가는 것일까? 그렇다고 단언하기에는 하필 2018년에 상당한 흥행을 일으킨 또 하나의 어드벤처 게임이 너무 큰 반례로 자리한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다. 역시 어드벤처 전문 제작사인 퀀틱드림스튜디오의 최신작인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같은 제작사의 전작들이 쌓아온 장점들을 극대화하고 단점들을 개선하면서 상당한 흥행을 거둔 바 있었다. 2017년에 발매된 '에디스 핀치의 유산'도 현대 어드벤처 게임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작품이다. 텔테일게임즈라는 대표적 어드벤처 게임 제작사의 폐업이 워낙 큰 뉴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어드벤처 게임의 미래가 어둡다고만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장점도 한계도 명확한 어드벤처 게임 장르

다른 게임 장르에 비해 어드벤처 장르는 강한 서사성을 중심에 둔다. 다채로운 시나리오 분기를 앞세워 멀티 엔딩과 선택지의 다양함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드벤처 게임의 중심에는 두터운 서사가 자리할 수밖에 없다. 두터운 서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야기의 재미를 새롭게 발달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수용자에게 전달함으로써 고전적 서사 방식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체험을 가능케 하는 재미의 공간을 열어주는 장점을 지녔지만, 디지털 게임이라는 범주 안에서의 한계 또한 명확한 것도 현실이다. 아주 간단히 뭉뚱그리자면 다회차의 즐거움은 구현이 어렵다는 의미다.

하나의 게임을 여러 번의 플레이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게임 안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우연성들은 매 번의 플레이를 조금씩 새롭게 만들어나간다. 동시에 플레이어의 숙련도 또한 상승하고 변화하면서 게임 콘텐츠와 교감하는 방식을 향상시키며 또 다른 영역에서의 내적 성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국 PC방에서 가장 널리 플레이되는 '리그 오브 레전드'는 누구와 팀이 되는지, 누구와 적이 되는지, 어떤 캐릭터가 전장에 배치되는지와 누가 언제 무엇을 하는지가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매번의 플레이가 늘 새로워지며, 플레이어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 앞에 흥분한다.

이러한 게임의 성격은 비단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다음 블록을 예측할 수 없는 '테트리스', 던전 안의 어떤 적이 얼마만큼의 데미지로 나를 위협할지 모르는 '다키스트 던전', 내가 어떤 액션을 어느 순간에 취하느냐에 따라 전투 결과가 달라지는 수많은 게임들 또한 마찬가지 영역의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게임들이다.

어드벤처 게임은 이러한 디지털 게임의 일반적인 양식으로부터는 조금 벗어난 위치를 차지한다. 시작과 결말이 명확하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서 어드벤처 게임들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움직임을 플레이어에게 제시한다.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기 위한 어드벤처 게임들의 장르적 특성들은 매번의 플레이가 상대적으로 제한된 변화 가능성에 머물도록 만들곤 한다.

이에 따라 플레이어의 시간은 어드벤처 게임과 여타 게임들에서 둘로 갈라진다. 어드벤처 게임의 시간이 이야기를 따라 일직선상으로 흐른다고 한다면, 여타 게임들에서의 시간은 매 플레이마다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순환형 시간계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정해진 책을 앞장부터 천천히 읽어나가는 방식과, 뒷부분의 이야기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책을 써나가는 과정의 차이라고도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다.

이 자체만으로는 한계나 단점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 책이나 영화 등도 고정된 이야기지만 여러 차례 읽고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 때문이다. 단선적 시간의 플레이는 디지털 게임이라는 환경 안에서 본격적으로 한계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좀 더 상상의 나래가 자유롭게 펼쳐지는 과정의 재미가 두꺼운 책 읽기에 비해 어드벤처 게임은 상상의 자유로움이 큰 폭으로 제한되며, 영화에 비해서는 무언가 계속적인 상호작용 액션을 취해야 한다는 점이 고정된 서사 측면에서는 외려 불편함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장르 하나가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드벤처 게임의 서사는 기존 서사 매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이입을 일으키고 좀 더 새로운 몰입감을 만들지만, 이러한 지점은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한 한계로 작용하기도 하는 두 측면을 모두 포괄한다. 덕분에 서사가 반드시 중심에 서는 것은 아닌 게임 매체의 영역에서 이러한 특성들이 타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폭넓은 대중적 인기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요소로도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장르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기에 몇몇 게임들이 여전히 신작 게임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비록 협소한 이용자층이지만 마니악한 인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통 어드벤처 게임을 표방하는 경우가 대세 게임이 되는 것은 현대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장르가 그냥 역사 저 너머로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도 섣부른 판단에 가깝다. 오히려 많은 게임들 속에 어드벤처 게임의 특성들이 녹아들고 있다는 점은 이 장르가 어떤 의미에서는 변용을 통해 명맥을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텔테일게임즈가 이어오던 인기 시리즈인 '워킹데드'의 마지막 이야기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섭섭함이 쉽사리 가시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 장르가 끝났다고 땅을 칠 일도 아닌 것이다.

텔테일 게임즈의
▲ 텔테일 게임즈의 '워킹데드' 시리즈는 최종 결말을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소녀 클레멘타인의 성장은 영원히 멈출 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게임 장르가 그대로 고사할 거라고 예측하는 것도 섣부를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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