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세월 극복해낸 거장 이츠하크 펄먼

  • 김연주
  • 입력 : 2017.11.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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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97]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앉은 채로 한 손을 객석을 향해 뻗어 보일 뿐이었다.

이츠하크 펄먼의 무대였다. 그는 일어서지 않은 것이 아니다. 4세 때 앓은 소아마비는 그의 한쪽 다리를 앗아 갔다.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그의 발은 남들보다 부자유스럽다. 하지만 그의 두 팔은 다르다. 소아마비에서 회복된 뒤 다섯 살의 나이에 그는 바이올린을 쥐었다. 그리고 그는 장애를 딛고 20세기를 대표하는 21세기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됐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기자가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바이올린 활을 처음 쥐었을 때부터 그는 이미 '거장'이었다(지금은 운지법도 가물가물 하지만 바이올린을 어린 시절 10년 정도 배웠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렸던 파가니니의 지독하게 어려운 '24 카프리스'를 연주하는 그의 소리를 전축 너머로 듣고 있으면 음과 음을 정확히 짚어내는 섬세한 손길과 몇 옥타브를 순식간에 오가는 활의 움직임은 어린 머리로 상상하기 힘들었다. 아주 어릴 때는 언젠가 그처럼 소리를 낼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 많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로 이츠하크 펄먼을 꼽는 것처럼 말이다. 장애 극복이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를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게 아니라 해도 그의 음색은 완벽하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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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먼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폴란드계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5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9세 때에 출생지의 슈라미트 음악원에 입학해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해 이반 갈라미언에게 사사받는다. 줄리아드의 전설적인 명교사로 불리는 갈라미언의 문하생인 정경화, 주커만, 그리고 펄먼은 소위 젊은 삼총사로 불린다. 셋은 제각기 다른 음악성과 타고난 특장을 가진 준재이지만, 총점을 매긴다면 보다 섬세하면서도 지적인 연주를 펼치는 펄먼이 최고라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한없는 섬세함과 함께 따뜻함도 지닌 맑은 음색미 그리고 잘 연마된 테크닉. 펄먼의 연주는 바이올린 본래의 낭만성과 현대적인 날카로운 감각이 함께한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음색은 '펄먼 사운드'라고 명명되는데, 최은규 음악칼럼니스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펄먼의 바이올린 톤에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풍성함이 깃들어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두터운 손과 굵은 손가락에 의해 얻어지는 폭 넓은 '비브라토'에 있다. (…) 노래하듯 풍부한 비브라토와 따스함을 풍기는 슬라이드로 서정적인 선율선은 매끄럽게 다듬어내는 펄먼의 바이올린 톤은 항상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단순한 선율에서조차 따뜻하게 감싸 안는 듯한 톤을 만들어 내는 그의 개성은 바흐부터 20세기 음악에 이르는 모든 작품에서 빛난다."

어떤 연주자들의 곡은 음반으로 들을 때 더 큰 감동을 경우가 있다. 완벽한 상황에서 최정상의 컨디션을 유지한 채 최고의 음색만을 녹음한 음반과 달리 변수가 많은 현장에서의 연주는 종종 실망스러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펄먼은 예외다. 그의 진가를 알려면 현장에서 꼭 그를 만나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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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타임스의 유명 음악평론가는 "펄먼은 타고난 휴머니스트이며, 그의 재치는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에 대해 느끼는 어려움을 덜어준다"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를 꼭 공연장에서 만날 것을 추천한다. 뛰어난 기교 풍성한 소리. 하지만 이츠하크 펄먼의 가장 큰 재능은 넓은 공연장을 친밀한 공간으로, 낯선 음악도 친근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소통의 재능에 있다.

특히 리사이틀을 추천한다. 펄먼은 자신의 리사이틀을 '세 가지 코스요리(Three-course meal)'에 비유한다. 먼저 큰 클래식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 뒤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곡들을 발표하고 연주한다. 마지막 코스는 감동을 영원히 가슴에 새겨 넣을 앙코르! "저는 보통 프로그램을 선정할 때, 제가 관객 입장이 되었을 때 무엇을 듣고 싶은지, 어떤 음악이 제게 기쁨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그래야 제가 연주할 때 관객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츠하크 펄먼)

이번 내한공연은 2015년 펄먼의 70세 기념 월드투어 공연 이후 2년 만이다. 2010년 19년 만에 한국에서 공연한 후 2~3년 주기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펄먼이지만, 그의 내한 공연을 볼 기회는 앞으로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72세의 거장은 리사이틀 횟수를 점차 줄이고 강연 횟수는 늘려가고 있다. 강연과 음악교육,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 등에 헌신하고 있는 펄먼은 앞으로 활보다는 마이크를 손에 잡는 일이 더욱 빈번해질지 모른다.

올해 72세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은 10월 말부터 시작한 아시아투어 중 한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해 11월 12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가진 후 뉴욕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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