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워너 인수 추진하는 스티븐슨 회장 화났다?

  • 장박원
  • 입력 : 2017.11.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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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들 스티븐슨 AT&T 회장
▲ 랜들 스티븐슨 AT&T 회장
[글로벌 CEO열전-36] 미국의 통신 공룡 AT&T 수장인 랜들 스티븐슨 회장은 요즘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때문이다. 1년 넘게 추진하고 있는 타임워너 인수 작업이 언제부터인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데 그 배후에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고 그는 의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 기사를 보고 심증을 굳혔다. 이 신문은 지난 8일 협상 관계자 말을 인용해 미국 법무부가 타임워너의 뉴스채널인 CNN을 매각해야만 합병을 승인할 것이라는 뜻을 AT&T에 전달했다고 썼다. CNN은 후보 시절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뉴스'를 쏟아내고 있다고 맹비난했던 매체다. CNN을 처분해야만 합병을 승인하겠다는 미국 행정당국의 뜻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러나 스티븐슨 회장은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혔다. 이 보도가 나온 다음날 뉴욕타임스 딜북 콘퍼런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CNN을 매각할 생각은 전혀 없다. CNN은 타임워너의 핵심 자산이다. CNN을 매각하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우리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2일 그는 타임워너를 854억달러에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합병이 성사되면 미국 미디어 시장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 통신과 미디어 같은 관련 업계뿐만 아니라 정계와 사회·문화계에서도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물론 부정적 시각이 우세했다. 미디어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것을 우려해 반독점 규제로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스티븐슨 회장은 이미 반박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한 내용의 요지는 이렇다. "타임워너 합병은 승인을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미국 정부가 수직적 합병을 막은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타임워너가 보유한 다양한 콘텐츠는 점점 위축되는 통신과 위성 방송 사업을 상쇄하며 전체 시장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AT&T의 타임워너 합병은 고속통신망과 무선전화, 미디어 시장에서 독점과는 관련이 없다. 이번 건은 비슷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간 수평적 결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임워너 산하 뉴스채널인 CNN의 독립성을 유지할 것이며 CNN 합병 이후 논조가 달라진다면 AT&T의 회사 가치는 오히려 떨어질 것이다." 그의 수직 통합 논리는 한국의 통신과 케이블, 콘텐츠 산업에도 통용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타임워너 인수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 스티븐슨 회장은 무명의 기업인에 가까웠다. 타임워너 인수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제시되자 거래를 성사시킨 최고경영자가 누구인지 관심을 갖게 됐다. 인수·합병(M&A) 금액도 금액이지만 두 회사의 합병은 통신과 미디어를 합친 공룡의 탄생을 의미하고 이 기업을 이끌 사령관은 엄청난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AT&T는 유선과 무선통신, 인터넷, 위성TV가 주요 사업이고 CNN과 HBO, 워너브러더스를 자회사로 둔 타임워너는 영화와 TV, 케이블 분야에서 강자다. 통합 회사의 매출은 2015년 기준으로 1890억달러, 직원은 30만명이 넘었다.

기업인으로서 스티븐슨 회장의 이력은 단순하다. 농촌 출신인 그는 오클라호마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1982년 AT&T 전인인 사우스웨스턴벨에 입사했다. 2007년 최고경영자에 오르기 전까지 25년 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했다. 통신 이외의 다른 분야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나마 AT&T 사령탑에 오르기 직전 최고재무책임자와 최고운영책임자를 역임하면서 시야를 넓혔을 뿐이다.

그러나 최고경영자가 된 뒤 달라졌다. 보수적 성격이 강한 통신사 수장답지 않게 공격적인 M&A에 나섰다. 유무선 네트워크 사업만으로는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보유한 자산을 지키려고만 하면 안 된다. 지속 성장하려면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전임 최고경영자가 떠나며 남긴 이 말을 스티븐슨 회장은 충실하게 실행에 옮겼다. 물론 실패하기도 했다. 2011년 T모바일을 490억달러에 사려고 했다가 반독점규제에 걸려 좌절된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스티븐슨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문을 두드린 끝에 2015년 디렉TV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 덕에 AT&T는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성과를 올렸다. 디렉TV 인수 1년 후인 2016년 7월 실적을 발표하며 스티븐슨 회장은 "디렉TV 가입자들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할 것"이라며 타임워너 같은 미디어업체 인수 의향을 일찌감치 내비치기도 했다. "(기업에) 끊임없이 혁신하려는 문화가 없으면 기존 수익과 제품에 안주해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다. 그러면 결국 시장을 잃게 된다." 스티븐슨 회장이 한 잡지와 인터뷰하면서 한 말인데 타임워너 인수를 통한 수직 통합 전략을 실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AT&T는 지난 7월 대규모 회사채 발행 계획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타임워너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AT&T와 타임워너가 합치는 것이 독점으로 가는 수평적 결합이 아니라 수직적 통합이라는 그의 설득이 통하면서 한때 미국 정부의 승인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도 들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데다 유선에서 무선으로 중심이 이동되는 통신시장에서 AT&T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한둘이 아니다. 스티븐슨 회장이 이런 걸림돌을 모두 해결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통신 회사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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