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란 김, 명란 소시지, 명란 빵... 후쿠오카는 명란의 도시

  • 정영선
  • 입력 : 2018.06.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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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트래블-22] 가끔 예상치 못한 조합의 음식을 만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베이컨 초콜릿'이라든가 '사천 후추의 마카롱' '된장 돈가스' 같은 것들이 그렇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처음엔 '명란빵'도 내겐 그런 메뉴였다. 명란젓이란 짭짤한 젓갈로 그 위에 고소한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려 뽀얀 쌀밥 위에 얹어 먹어야 제맛인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빵 위에 명란젓을 얹어 먹다니! 이 메뉴를 만난 건 홍대 앞에 있던 작은 빵집에서였다. 단정한 매무새의 일본인 주인은 명란빵을 비롯해 멜론빵, 소라빵 등 일본 특유의 빵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명란빵은 약간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게 빵과 제법 잘 어울리는 맛이었고, 이후 명란을 이용한 색다른 요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명란 덮밥, 멘타이쥬
▲ 명란 덮밥, 멘타이쥬

우리가 밥상에서 만날 수 있는 명란은 명태의 알이다. 명태는 그 상태나 잡힌 시기, 잡는 방법과 장소 등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상태에 따라 싱싱한 생태, 얼린 동태, 말린 북어(건태)로 나뉠 수 있다. 황태는 한겨울에 명태를 큰 덕장에 널어서 큰 일교차에 얼고 녹기를 스무 번 이상 반복해 노랗게 변한 북어를 말한다. 잡는 방법에 따라서는 그물로 잡은 망태, 낚시로 잡은 조태로 나뉜다. 잡힌 장소와 계절에 따라 북쪽에서 잡히면 북태, 봄에 잡히면 춘태라고 한다. 가장 일반적인 불리는 명태라는 이름은 민간에서 부르던 이름으로, 함경동 관찰사가 이 생선을 잡은 어부에게 생선의 이름을 묻자 어부가 모르겠다고 하여 이 생선을 잡은 어부의 성인 '태' 씨를 붙여 명태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식탁에 오르는 걸 보면 그만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생선이 아닌가 싶다.

명태의 알도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왔다. 명태의 알인 명란은 알집이 부드러워서 겨울이 아니면 쉽게 변질된다. 예전에는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해서 겨울에만 함경도 남쪽에서 유통됐다. 이후 보존 방법과 유통망의 발달로 전역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으나, 아쉬운 건 그동안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현재는 대부분의 양을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라는 점이다.

명란젓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명란젓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후쿠오카에 가기 전, 그곳의 명물 음식을 찾아보니 명란이라고 나왔다. 우리나라의 좋은 명란은 일본으로 간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후쿠오카가 명란의 발상지라는 건 의외였다. 정확히는 '멘타이코(明太子)'라고 부르는 일본식 명란이라는데 어떻게 된 사연인지 궁금했다.

일본에 우리나라의 명란젓을 소개한 사람은 '가와하라 도시오'라는 인물로 191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산 초량 시장에서 매운 고추로 양념한 명란을 맛본 그는 태평양전쟁에 동원돼 오키나와에 갔다가 연고도 없는 후쿠오카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1949년 후쿠오카에 식료품점을 열고 특색 있는 식품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릴 적 먹던 명란젓을 떠올리게 된다. 그가 만든 명란젓은 처음엔 별 반응이 없었으나 이후 10여 년간의 개량 과정을 거쳐 일본인 입맛에 맞게 된다. 처음엔 후쿠오카 지역에서 인기를 얻던 명란젓은 1975년 도쿄와 후쿠오카를 잇는 신칸센이 개통되면서 전국적으로 인기 상품이 됐다.

후쿠오카의 멘타이코(명란) 전문점 멘타이쥬
▲ 후쿠오카의 멘타이코(명란) 전문점 멘타이쥬

▲ '멘타이 니코미 츠케멘'과 '지요지루'


후쿠오카에 도착한 첫날, 대표적인 명란 전문 음식점 중 하나인 '멘타이주(めんたい重)'로 향했다.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큰 건물은 이 집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우린 밥 위에 큰 명란이 올라간 '멘타이주(명란 덮밥)'와 10가지 이상의 채소를 끓인 자작한 국물에 면을 찍어 먹는 '멘타이 니코미 쓰케멘', 멘타이코를 끓인 국물에 부드럽게 익힌 소고기를 넣은 메뉴인 '지요지루'를 주문했다. '멘타이주'는 다시마로 말아 오랜 시간 숙성시킨 명란을 고슬고슬 지은 밥 위에 올린 메뉴로 빨간 양념이 묻어나진 않았지만 우리의 명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명란을 풀어 끓인 쓰케멘은 국물도 시원하고 면발도 좋아서 다시 찾아와 먹고 싶은 메뉴였다.

식사를 끝내고 나와보니 내 눈엔 명란을 이용한 제품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명란 바게트는 물론이고 명란 김, 명란 소시지, 명란 마요네즈, 명란 우동, 명란 오니기리, 명란 후리카게까지. 지역 특산물을 상품화시키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일본인들이 명란으로도 수많은 제품을 내놓고 있었다. 난 명란 김과 명란 마요네즈를 사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식탁에 올린 명란 김은 독특하고 밥을 싸 먹기에도 좋았다. 그런데 사라져가는 우리의 명란을 생각하니 괜히 속이 쓰렸다. 명란 김의 뒷맛이 쓴 건 기분 탓일까.

[정영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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