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초연 '쇼스타코비치와 검은 수사'···연극·음악 두 토끼 잡기엔 무리

  • 김연주
  • 입력 : 2018.06.0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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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27] 그는 언제든 끌려가서 심문당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밤마다 옷을 차려입고 여행 가방을 싸놓고 잠을 청하며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줄리언 반스는 소설 '시대의 소음'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의식 속으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간다. 쇼스타코비치는 시대와 불화한 예술가였다. 소비에트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영웅 작곡가는 1936년 1월 28일 스탈린이 친히 쓴 것으로 추정되는 사설이 당 기관지에 게재되면서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힌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참관하고 격분한 스탈린은 '간결한 음악, 명확하고 진실한 음악,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적 내용을 추구하는 음악'을 쓰라고 강요한다. 교향곡 5번은 궁지에 몰린 그가 생존을 위해 써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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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연출가 제임스 글로스먼이 대본을 쓰고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필립 세처가 공동 제작한 '쇼스타코비치와 검은 수사'가 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아시아 초연 됐다.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 창단 40주년을 맞아 배우 7명이 함께 제작해 연극적 서사가 한껏 가미된 음악극으로, 안톤 체호프의 소설 '검은 수사'를 오페라로 작곡하고자 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예술적 집념을 그린다.

쇼스타코비치의 일생과 안톤 체호프의 이야기가 현악 4중주에 의해 결합됐다. 안톤 체호프의 소설 '검은 수사'는 한 예술가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자신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검은 수사를 만나면서 예술적 위대함과 현실의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은 소설과 현실을 중첩시키며 이야기를 끌고나간다. '검은 수사'를 만나면서 예술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만 동시에 현실과는 멀어져 가는 코브린, 그의 장인은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코브린을 나무란다. 코브린은 쇼스타코비치를 투영한 인물이다. 예술가로서 추구해야 할 이상과 당국이 강요하는 충성 사이에서 괴로워했던 쇼스타코비치의 고뇌를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이뿐만 아니라 코브린의 장인과 그의 아내는 스탈린과 스베틀라나를 연상시킨다(실제 이 둘이 연기할 때 뒤에 스탈린과 딸 스베틀라나의 가족사진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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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 형식으로 실제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 캐릭터도 무대에 오른다. 작품은 스탈리 사후 오페라에 재도전하는 쇼스타코비치의 또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 검열'이란 끔찍한 형벌. 한 번 꺾인 팬은 다시 붙여 쓸 수는 없는 것일까. 영혼이 돼서도 스탈린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비웃으면서 그가 오페라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훼방 놓는다.

'만약'을 상상하며 그려낸 쇼스타코비치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이리라고 기대했던 '음악'이 아쉽다.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은 세계적 권위의 영국 클래식 전문잡지 '그래머폰'이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5개의 현악 4중주단 중 하나"로 꼽았던 악단이다. 관객 중 다수가 이 에머슨 콰르텟의 음악을 기대하고 왔을 테다. 하지만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전주처럼 들려주는 1악장을 제외한다면 음악을 감상할 기회는 극히 적다. 마이크를 쓰는 배우들의 대사에 사중주단 음악 소리가 다 묻힌 탓이다. 음악과 이야기의 결합도 생각보다 느슨했다. 복잡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음악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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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인 극 형식도 새롭다기보다는 낯설었다. 마름모꼴 모양 무대 위에서 일곱 명의 배우가 대본을 들고 낭독 쇼케이스처럼 공연을 펼친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출중하나 손에 들고 있는 대본을 읽는 방식 때문에 '미완성' 작품 같다는 느낌을 준다. 또 콰르텟을 중심에 두고 극을 펼치다 보니 배우들의 동선이나 동작도 한정되어 극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연극과 음악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탔지만 되레 둘 다 놓치고 만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스타코비치의 일화는 깊은 잔상을 남긴다. 어느 시대고 예술은 늘 정치와 투쟁해야 했다. 최근 우리 사회도 '블랙리스트'라는 큰 아픔을 겪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현실에 뿌리내린 채 이상을 꿈꾸는 딜레마는 쇼스타코비치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든 인류의 영원한 풀 수 없는 숙제니 말이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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