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와 만나다(1) - 무비컬

  • 원종원
  • 입력 : 2015.10.1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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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댄싱
▲ 더티 댄싱
[원종원의 뮤지컬 읽기-38] '더티 댄싱(Dirty Dancing)'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e)'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사랑과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번안됐던 영화 '고스트(Ghost)'의 공통점은?

 바로 요즘 최고의 흥행 뮤지컬들이라는 점이다. 세계 공연가의 메카라 불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그야말로 절정의 인기를 끌고 있는 뜨끈뜨끈한 대박 무대 공연들이다.

 21세기에서 영화는 뮤지컬의 소재가 되고, 뮤지컬은 뮤지컬 영화 제작의 단초가 된다. 사람들이 이런 부류의 콘텐츠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물건'이 잉태해 내는 뮤지컬과 영화의 만남이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공연 티켓은 어느 나라 관객들에게나 부담스럽긴 매한가지다. 유난히 흥하는 작품과 망하는 작품 간의 간극이 큰 것도 공연만의 특징이다. 비싼 입장권을 사야 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자신이 쓰는 비용이 헛되이 낭비되는 것을 원치 않기 마련이다. 입소문이나 평점, 누군가의 추천이 중요한 관극의 동인이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공연장까지 찾아가 낭패를 보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영화가 원작인 뮤지컬은 인기가 높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미 다른 시장을 통해 대중성을 검증받은, 그래서 상대적으로 믿을 만한 선택이 된다. 제작자 입장에서도 손해볼 일은 없다. 이미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고 시작되는 작업이니 흥행 리스크는 그만큼 줄어들게 마련이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일수록 둘 간의 밀월 관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원작이 영화인 뮤지컬을 두고 무비컬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영화를 의미하는 무비(Movie)와 무대 위 예술세계인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용어다. 하지만 사실 영화와 무대의 만남은 무비컬 이전에도 시도된 적이 많다. 1950~1960년대 미국에 등장했던 뮤지컬 영화 제작 열기도 대표적이다. 1900년대 초반 유럽에서 건너온 뮤지컬은 미국에서 대중문화의 모든 것이라 불리며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지금처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없던 시절, 무대에서 펼쳐지는 노래를 듣고 춤을 즐기며 묘기를 보는 대중적인 음악극은 그야말로 여가의 모든 것이었다. 인기 있는 쇼의 음악(showtune)을 만들어낸 제작자나 예술가는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고, 자연스레 뮤지컬은 최고의 대중 오락물로 등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공연의 속성이었다. 뮤지컬의 매출 규모는 하룻밤 얼마나 많은 관객을 대상으로 또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아무리 뮤지컬이 대중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다 해도 돈벌이는 느렸고 성장의 폭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할리우드의 영화자본가들은 바로 여기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대중성이 검증된 뮤지컬을 대형 스크린용 영화로 제작한다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 전략 구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영화판은 뮤지컬 영화들로 넘실대기 시작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오드리 헵번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와 리처드 로저스가 작사 작곡한 '남태평양(South Pacific)'부터 '왕과 나(The king and I)',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 등은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이 만들어 낸 불세출의 명작들이다. 우리나라 중장년 대부분은 이런 문화적 산물을 통해 난생 처음 뮤지컬을 접했고, 그래서 지금도 뮤지컬하면 으레 뮤지컬 영화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들 뮤지컬 영화들은 사실 무대에서 대중성을 검증받은 콘텐츠를 가져와 영상적 문법에 따라 재구성한 소위 '재활용' 콘텐츠들이었다.

라이온킹과 시스터액트
▲ 라이온킹과 시스터액트
 그 시절 춘풍이 뮤지컬로부터 시작돼 영화계로 불었다면, 이젠 다시 영화에서 무대로 풍향이 바뀌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서양 공연가의 인기 뮤지컬 절반 이상은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들이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작품들뿐만이 아니다. 호주에서 제작됐던 드레그퀸의 자아 찾기에 관한 로드 무비인 '프리실라-사막의 여왕(Pricilla-Queen of the Desert)'는 화려한 의상과 노래가 등장하는 무비컬로 제작돼 런던을 거쳐 뉴욕에서 절찬리에 상연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막을 올렸던 금발 아가씨의 법정 드라마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 역시 뉴욕과 런던에서 모두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아예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우피 골드버그가 직접 제작한 무비컬 '시스터 액트(Sister Act)'도 인기리에 상연된 적이 있다. 만화영화였던 디즈니의 '라이언 킹(Lion King)' '미녀와 야수(The Beauty and the Beast)'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도 무비컬 대열에 합류했고, 드림웍스가 제작했던 '슈렉(Shrek)'까지도 인기작 반열에 올랐다. 800억원이 넘는 제작비로 화제가 됐던 무비컬 '스파이더 맨(Spiderman-Turn Off the Dark)'이 있는가 하면,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무비컬 '메리 포핀스'는 10여 년 세월 동안 가족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 바 있다.

 무비컬을 단순히 흥행 영화의 무대적 재연이라고만 여긴다면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무비컬이 영화에서 비롯된 것은 틀림없지만 사실 무대적으로 재구성된 이야기는 영화와 또 다른 재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변화는 2차원적인 영상이 입체적인 무대로 구현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기어오르고, 아바타가 3D나 혹은 4D로 구현된다하더라도 무대에서 실물을 실제 자기 눈으로 보는 현장감에는 감히 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백문'은 늘 '불여일견'이기 마련이다. 무비컬의 감동은 그래서 원작 영화를 뛰어넘기도 한다.

빌리 엘리어트
▲ 빌리 엘리어트
 무대는 영화와 다른 뮤지컬만의 '마법'을 등장시킨다는 점도 감상의 폭을 확장시켜주는 매력이다. 데이비드 카터필드의 마술팀이 참가했다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무비컬 '미녀와 야수'에서는 하늘로 둥실 떠오른 야수가 눈 깜짝할 사이 왕자로 변한다. 여러 나라에서 수차례 공연을 재관람했지만 아직도 불가사의하고 매력적인 마술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무대 위 주연 배우가 반지를 끼면 정말로 관객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거울을 이용한 마술 기법을 무대로 차용해온 탓이다. 영혼과 작별하는 '고스트'의 유명한 엔딩신은 영상 속의 남자 주인공과 실제 무대 위 여배우와의 키스신으로 재현되고,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꼬마의 춤은 와이어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 속의 무용으로 구현된다. 무비컬 '이스트윅의 세 마녀들(Three Witches of Eastwick)'에선 여배우들이 객석 관객들의 머리 위까지 날아오른다. 서양에서 마녀라 하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존재이기에 특수효과로 무대의 환상을 재현해 낸 것이다. 거대한 저택 세트가 등장하는 무비컬 '메리 포핀스'에서는 여자아이들의 장난감 인형집 같은 세트가 집안의 단면을 드러내면서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배우들의 모습을 아기자기하게 펼쳐 보여주고,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은 2층 객석에서 시속 60㎞로 날아 무대로 안착하거나 악당과 공중전을 펼치며 자웅을 겨룬다. 이미 친숙한 스토리와 이미지이지만 무대를 보는 이색적인 즐거움은 관객들로 하여금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무비컬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하게 되는 기법들이다.

킹키부츠
▲ 킹키부츠
 하나하나의 숏을 모아 신을 이루고, 다시 이를 확장해 시퀀스를 만들어내는 영화와 달리 무대는 배우들의 몸짓과 소리를 직접 활용해 공간을 채운다. 같은 이야기라 해도 스크린과 무대의 맛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영화는 '재생'의 예술이요, 뮤지컬은 '재연'의 예술이라 부른다. 한번 찍어 똑같은 필름을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재생시키는 것이 영화라면, 무대는 약속된 규칙에 따라 매일밤 매번 매회 다시 쌓아올리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배우나 스태프의 교체는 물론 그날그날 관객의 성향이나 반응에 따라서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낌이 달라진다. 영화가 좋은 소재로 잘 구워낸 스테이크라면, 뮤지컬은 펄떡거리며 살아 숨쉬는 날것 그대로의 활어회 같은 맛을 지니고 있다. 영화가 무대에 와도 새로운 향기를 지니게 되는 이유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최근 텔레비전을 늘상 보고 자란 영상 세대가 점차 증가하면서 무대에서도 영상적 기법이 자연스러운 연출 기법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영상 문법은 무대의 제약을 극복하는 묘수로 쓰이기도 한다. 회전무대를 이용해 트랙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의 역동성을 무대에 재현해 객석으로 전달한다든지, 영화연출자가 자신의 독특한 시선에 따라 숏을 구성하는 것처럼 사물을 보는 각도나 시각에 따라 화자가 바라보는 세상을 달리 표현하는 무대적 기법의 활용 등이 대표적이다. 회전 무대의 앞쪽에서 무대 뒤로 달려가던 연인이 결국 무대가 전환되며 객석으로 달려나오는 듯한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상의 편집과 비슷하게 무대를 장면에 따라 새롭게 구성해 내는 상상력의 발현이다.

 사정이 그래서일까. 최근 영화와 뮤지컬 분야를 오가는 연출가의 등장도 자주 목격되곤 한다. '아메리칸 뷰티(Americam Beauty)'를 만들었던 샘 멘데스는 '카바레(Cabaret)' '올리버!(Oliver!)' '집시(Gypsi)' 등의 뮤지컬을 연출하며 공연가의 블루칩으로 부상하는가 하면, '라이언 킹' '스파이더 맨'의 연출가인 줄리 테이머는 비틀스 음악으로 꾸민 영화 '어크로스 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의 메가폰을 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명한 안무가이자 무대 연출가였던 로브 마셜은 뮤지컬 영화 '시카고(Chicago)' '나인(nine)'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단순히 영화의 유명세를 팔아 그 모습 그대로 재연하는 수준에 머물거나 영화만도 못한 상상력을 보이는 무대를 만나는 것은 그리 반갑지 않은 경험이다. 무비컬의 성공적인 흥행 공식은 유명한 원작의 활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무대적으로 재구성해 새로운 창의력을 덧붙였는가에 달려 있다. 아니 만들지만도 못한 작품은 기획 단계에서 이미 걸러져야 한다. 뮤지컬인뿐 아니라 영화인들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무비컬 제작의 선결 과제다. <2에서 계속>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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