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와 만나다 (4) - 창작 무비컬의 흥행을 기다리며

  • 원종원
  • 입력 : 2015.11.2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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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영화 '달콤살벌한 연인'을 뮤지컬로 만든 '마이 스캐어리 걸'
[원종원의 뮤지컬 읽기-41] 최근 칼럼에서도 소개한 바 있듯이 영화와 무대가 만나는 무비컬은 요즘 세계 무대에서 가장 각광받는 장르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이미 흥행이 검증된 콘텐츠를 재가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서 좋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10만원을 넘나드는 입장권을 구매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무대 위 이야기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에 대한 신뢰가 장점으로 작용하곤 한다. 여기에 무대적 문법에 입각한 다양한 변화들 혹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특수효과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2차원의 평면으로만 알던 영상이 무대라는 입체 공간에서 다시 구현될 때, 관객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문화 향유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빌리 엘리어트'가 스크린이 아닌 바로 눈 앞 무대에서 직접 탭 댄스를 추고, '고스트' 혹은 '사랑과 영혼'의 여자 주인공과 영혼이 된 남자 주인공이 영상 속이 아닌 무대 위에 마법처럼 등장해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신비로운 체험이 아닐 수 없다.

 무비컬 인기는 비단 외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 안에서도 최근 왕성하게 시도되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 대중 머리 속에 오래 기억되고 있는 흥행 명작들이 주요한 소재로 각광받는다.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어 즐기는 소비 패턴은 글로벌 마켓에서 공통으로 목격되는 현상이지만,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국가나 문화권마다 즐기는 콘텐츠는 제각각인 모양새를 띠고 있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글로컬리제이션(Glocalisation)이라 부른다.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무대용 뮤지컬을 일컫는 무비컬의 인기는 세계화 혹은 글로벌리제이션(Globalisation)의 범주 하에 있지만, 한 꺼풀 벗겨 개별 시장을 관찰해 보면 제각각 각광받는 콘텐츠는 지역화 혹은 로컬리제이션(Localisation)의 경향을 보인다 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합성어이다. 우리나라 무비컬 시장과 미국의 그것, 영국의 그것이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는 이유이자 배경이다.

 초창기 시도되어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무비컬 작품으로는 우선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꼽을 수 있다. 임순례 감독이 2001년 메가폰을 잡았던 영화에서는 이얼과 박원상, 그리고 지금은 영화계와 뮤지컬 무대를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황정민 등이 등장했다. 고교 시절 밴드를 결성해 음악가의 꿈을 꾸던 친구들이 현실에 부딪히며 갈등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냈던 영화는 2004년 서울뮤지컬컴퍼니에 의해 무대용 뮤지컬로 탈바꿈돼 공연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밴드'가 라이브로 연주를 하고 이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무대에서 생동감 있게 표현한 것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결국 이듬해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2006년과 2008년에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리며 인기 무비컬 명성을 이어갔다. 비록 씁쓰름했던 영화 속 이야기는 무대에서 다소 희화되거나 희석된 이야기로 재연되는 변화를 겪긴 했지만, 송골매, 자우림, 편승엽, 설운도의 노래 등을 간간히 뒤섞는 주크박스 형식을 버무려 이 무비컬은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재연되는 뮤지컬의 묘미를 잘 반영했던 초창기 대표적인 흥행 무비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훗날 영화사와 저작권 분쟁으로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무비컬의 제목이 변화되는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무비컬이라는 형식의 재미를 국내에 빠르게 접목시켰던 대표적 사례로는 간과할 수 없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국내 무비컬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었다면 '싱글즈'는 본격적인 흥행을 이룩한 작품으로 평가할 만하다. 1994년에 발표됐던 일본 소설 '29세의 크리스마스'를 각색한 영화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2003년의 일이다. 주연을 맡았던 여배우 장진영은 29세 노처녀의 적나라한 대사와 연기를 실감나게 그려내 청룡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무비컬이 제작된 것은 2007년으로 영화에 등장했던 두 쌍의 커플 - 나난과 수헌, 동미와 정준을 중심으로 한 4인 뮤지컬로 탈바꿈됐다. 영화보다 한층 더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대사가 등장하는 무대는 특히 여성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 무대를 계속 이어올 정도로 큰 대중적인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

 뮤지컬의 흥행에는 음악의 존재도 큰 몫을 했다. 초기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주크박스 형식의 익숙한 음악을 밴드가 연주하는 방식으로 시도한 경우라면, '싱글즈'는 본격적으로 뮤지컬 음악을 작곡해 활용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래는 주인공들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도 유용할 뿐만 아니라 시간의 경과나 압축, 가정이나 상상을 넘나들게 하는 매개체로 활용되며 영화로부터 벗어난 뮤지컬만의 재미를 잉태해내는 주요한 도구 역할을 한다.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장소영 뮤지컬 음악감독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사례라 부를 만하다.

뮤지컬
▲ 뮤지컬 '라디오 스타'
 대형 극장에서의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한 대표적인 국내 무비컬로는 '라디오 스타'가 있다. 2005년 '왕의 남자'로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던 이준익 감독의 차기 연출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 영화는 흘러간 옛 인기가수 최곤을 연기했던 박중훈과 그의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머무는 매니저 민수 역의 안성기가 황금 콤비다운 호흡과 감성을 보이며 2006년 큰 흥행을 기록하는 성공을 이뤄냈다. 뮤지컬이 제작된 것은 2008년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그 후 거의 매년 작품을 업그레이드하며 뮤지컬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예를 들어 영화의 배역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실제 잊혀가는 왕년의 인기 가수였던 김원준을 주연으로 발탁하는가 하면, 매니저 생활을 경험했던 방송인인 정준하를 상대역으로 배정하는 등 흥미로운 시도를 펼쳐 관심을 끌기도 했다.

 무비컬 '라디오 스타'의 성공은 여러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물론 스크린의 이야기를 무대라는 공간으로 잘 이식시킨 무비컬의 기본 공식도 연구가치가 있는 좋은 사례지만, 이에 못지않게 공간의 활용이나 재배치, 이야기 구조의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음악적 압축과 감성의 전달의 효과적인 활용은 이전의 무비컬들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한층 세련된 기법의 접목을 선보였다는데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영화에는 있었으나 무대에서는 사라진 장면이나, 반대로 영화에는 없었으나 무대에서 추가된 에피소드들 역시 익숙하면서도 새로워야 한다는 무비컬의 흥행 공식을 잘 활용한 사례로 인정할 만하다. 시간의 경과를 무대 곳곳의 세트나 인물의 변화를 통해 숨겨놓은 연출의 의도도 신선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다. 무비컬 '라디오 스타'는 지금까지 200회 이상의 공연과 관객 10만명 돌파라는, 대형 창작 뮤지컬로는 보기 드문 대중적 성공을 거뒀다.

 대형 한국 무비컬의 또 다른 성공 사례로는 '미녀는 괴로워'를 꼽을 수 있다. 2006년 김용화 감독이 연출한 원작 영화는 김아중이라는 스타를 탄생시키며 대중의 이목을 일거에 집중시킨 화제작이었다. 인기가수 아미의 립싱크를 해주던 뚱뚱한 주인공 한나가 전신 성형 끝에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게 되지만 타고난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으로 결국 매니저인 한상준과의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무비컬이 제작된 것은 영화가 등장한 지 2년 뒤인 2008년의 일이다. 원조 아이돌 걸 밴드라 불리는 S.E.S. 출신 최성희(바다)가 주연을 맡아 무대에 등장했는데, 영화 특수분장을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활용하는 등 다양한 볼거리를 덧붙여 세간의 화제가 됐다. 무비컬답게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당연히 라이브로 연주됐는데 풍부한 라이브 퍼포먼스 경험을 지닌 미성(美聲)의 실제 여가수가 꾸미는 무대의 폭발력은 예상대로였고, 이 작품의 큰 흥행 밑거름이 됐다. 지난해에는 일본으로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조금 색다른 사례로는 '내 마음의 풍금'도 있다. 1999년 이영재 감독이 연출을 맡고 전도연, 이병헌, 이미연 등이 출연했던 영화는 풋풋한 시골 소녀와 갓 부임한 총각 선생의 묘한 애정심리를 잘 표현한 수작이다. 조광화 연출, 김문정 음악으로 재구성된 무비컬이 제작된 것은 2008년으로 오만석, 이정미가 주연을 맡아 좋은 연기를 선보여 인기를 모았다. 무비컬 '내 마음의 풍금'은 단순한 영화의 무대화가 아닌 적극적인 개작과 뮤지컬적 완성도의 달성이 큰 화제가 됐는데, 특히 영화의 원작이었던 하근찬의 소설 '여제자'를 적극 활용해 영화와는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 주목을 받았다.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를 알아도 무비컬이 지루하지 않고, 무비컬을 보면서 영화와의 간극을 찾아내는 재미를 누리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물론 좋은 무비컬의 흥행 공식이기도 하다.

 물론 흥행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차라리 '아니 만드니만도 못한' 무비컬들도 많다. 대부분 실패는 영화와 무비컬 간의 효과적인 차이점을 부각하지 못한 문제들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원작 영화를 경험했던 관객이 많게는 10배 이상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무대에서 무비컬을 즐기고자 했을 때에는 단순한 영화의 무대적 적용 이상의 '무엇'을 기대하게 된다. 반대로 말해 흥행 영화만 믿고 안일하게 제작한 무비컬은 시장에서 인기를 끌기 힘들다는 의미도 된다. 영화와 비슷하면서도 원작과 다른 재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뭔가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무비컬은 성공하기 힘들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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