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고급의 대명사? 관객친화적이면 안될까

  • 원종원
  • 입력 : 2015.12.2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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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뮤지컬 읽기-43] 언젠가 '뮤지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조사해봤던 적이 있다. 쉽게 예상되듯이 비싼 입장권, 고급스러운 체험, 특별한 날 등이 높게 나왔다. 우리나라 대중에게 공연이나 뮤지컬은 바로 이런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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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계 뮤지컬 극장가 사정은 조금 다르다. 비록 예술성을 지향하고 아날로그적 성격이 강한 장르라는 것은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에서나 똑같이 목격되는 특성이라고 하지만, 대중성만큼은 우리의 그것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특히 상업무대가 발달한 뉴욕·런던 같은 대도시에서는 쉽게 즐기고, 편하게 소비하며, 가깝게 느끼는 문화소비재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예컨대 뮤지컬이 어렵고 비싸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고급문화라기보다 쉽게, 가볍게, 즐겁게 향유할 수 있는 일상 문화적 즐거움의 하나라는 의미다. 게다가 대도시 관광객을 대상으로 대규모 매출까지 이뤄내니 '꿩 먹고 알 먹는' 재미는 가히 쏠쏠하다고까지 인정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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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이 다르니 서비스도 다르다. 고급스러움으로 치장한 국내 공연장들과 달리 영국이나 미국 극장들은 생활 속에 보다 가까이 존재한다는 인상이 크다. 극장에서 나오면 바로 길거리로 연결되는가 하면,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대로변 한 편에 길게 늘어선 풍경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차이가 큰 것 중 하나가 바로 공연장 서비스다. 차분하고 엄숙한 개념이 아니라 먹고, 마시며, 즐기는 놀이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예를 들어 런던 뮤지컬 공연장에서는 인터미션(중간 휴식)에 객석 통로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다.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같은 장중한 작품부터 '빌리 엘리어트' '록 오브 에이지스' 같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안전 문제로 유리잔의 객석 반입은 불가능하지만,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는다면 맥주나 콜라 한 잔 정도는 아무 문제도 없다. 요즘은 일부러 로고가 박혀 있는 투명 플라스틱 컵을 이용하기도 한다. 음료도 마시고 컵은 기념품으로 쓰라는 세심한 배려 중 하나다.

 심지어 공연 시작 전에 주문하면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극장도 있다. 1막이 진행될 때 포도주를 미리 따라 놓고 번호표로 달아두면 인터미션에 관객이 자기 번호로 찾아와 즐기도록 배려하는 관객 친화적인 서비스다. 문화를 해석하고 즐기는 '접근' 방식부터 우리와 사뭇 다르다.

 이웃 일본의 뮤지컬 극장들도 비슷하다. 일본어판 '미스 사이공' 등이 공연됐던 도쿄 데이코쿠극장 로비는 온갖 군것질거리로 넘실댄다. 잘 꾸며놓은 기념품 가게와 함께 늘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선택 폭도 넓고 종류도 다양해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공연을 보는 재미도 좋지만 인터미션이나 극장을 나서는 길에 골목처럼 요리조리 움직이며 먹거리나 기념품을 사기에 가히 안성맞춤이다.

 아예 관객이 걸어 나가는 출입구 동선을 백화점 식품 매장으로 연결해 놓은 공연장도 있다. 물론 인터미션에도 백화점 음식 코너를 잠시 들렀다 극장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 근사한 레스토랑과 지하철역까지 이어져 있는 시키의 우미(海)극장은 대형 쇼핑몰 같은 주변 환경 자체가 이미 즐길 거리다. 극장은 광고회사로도 유명한 덴츠의 건물 안에 있는데, 공연장도 운영하면서 건물에 관여된 기업 브랜드 가치도 높이려는 의도가 신선하고 재미있다.

 우리나라 공연장들은 어떨까. 금지된 것이 너무 많고, 불편한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관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나 서비스에 우리 공연장들은 지나칠 정도로 무신경하고 무관심하다. 15분 인터미션에 인산인해를 이루는 판매대에서 간신히 음료를 사는 데 성공하더라도 뜨거운 커피를 채 반도 못 마시고 자리로 돌아가라는 독촉을 받아야 한다. 적당한 물 온도나 미리 따라 놓은 와인 따위는 감히 바랄 수도 없고, 바라서도 안 된다. 그저 화장실이나 충분해서 오래 줄을 서지 않아도 되면 감지덕지하는 경우가 많다. 1막이 끝나면 뛰어나가듯 화장실로 향하는 여성 관객들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래서야 공연의 산업화는 머나 먼 남의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단지 주차권을 선불로 판매한 것만으로 관객 서비스가 마무리됐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뮤지컬이 보다 대중화되고 공연이 부가가치를 낳는 산업으로 성장하려면 먼저 공연장부터 대중 친화적으로 변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콘텐츠 개발은 이런 토대 위에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물임은 '말 하면 입만 아픈' 당연한 명제다. 공연장 관계자들이라면 곱씹어 생각해볼 문제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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