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가장 '이상'스러운 연극 한국 이머시브 시어터의 최첨단

  • 김연주
  • 입력 : 2017.09.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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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91] 공연장 입장에 앞서 관객은 하얀 마스크와 봉투를 건네받는다. 봉투에는 한자로 박태원, 김환기 등 경성시대 문인들 이름이 적혀 있다. 하얀 마스크를 쓰고 무대에 들어서면 한가운데 놓인 관이 보인다. 관객들은 조의금을 내러 온 문상객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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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요식행위가 아니다. 실제 이 작품에서 관객은 배우와 함께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꾿빠이, 이상'은 소설가 김연수가 2001년에 발표한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소설은 잡지사에 다니는 기자 김연화가 어느 날 사라진 '데드마스크'가 자신에게 있다는 서혁수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하는 첫 번째 장 '데드마스크', 서혁수의 형이자 아마추어 이상 연구자인 서혁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두 번째 장 '잃어버린 꽃', 재미 교포 출신의 이상 연구자인 피터 주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새', 총 3개 장으로 이루어졌다. 서울예술단은 소설의 뼈대는 가져오되, '이머시브 시어터'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파격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머시브(Immersive)'라는 용어는 (액체 등에) 담그다, 완전히 빠져들다, ~몰두하게 하다'라는 뜻을 지닌 'Immerse'에서 파생된 용어로, 관객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극에 참여하게 해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형식을 뜻한다.

서혁민, 피터주 등 소설 속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이야기 전개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상을 흠모하는 이들이 그의 데스마스크를 찾아 헤매는 소설과 달리 작품에서는 이상이 직접 자신의 얼굴, '자신은 누구인가'를 찾아나서는 여정을 그린다.

"이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었다."(김유정)

"당신은 춤추고 싶으면 춤추는 사람이에요."(금홍)

"당신은 언제나 갑자기 떠나다가 갑자기 돌아왔어요. 비밀을 존경할 수는 있지만 사랑하기는 힘들어요."(변동림)

매회 입장할 수 있는 관객은 100명. 공연장 안에는 별다른 좌석이 없다. 어떤 사람은 계단에, 어떤 사람은 바닥에 각자 다른 위치와 높이에 앉게 된다. 관객들 사이사이로 이상의 지인들의 삶이 펼쳐진다. 연인 금홍, 아내 변동림, 친구 김유정, 이상의 여동생 옥희 등 13명의 인물이 춤과 노래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상을 말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관 속에서 일어난 이상이 자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관객들 사이로 이들을 만나고 다닌다.

작품은 직접 몸을 움직이고 공간을 이동할 뿐만 아니라 관객의 의지대로 보고 싶은 곳을 선택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총 세 명의 이상이 동시에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친다. 한 명은 자신의 얼굴을 찾고자 무대를 돌아다니는 육체의 이상, 무대 정중앙에서 자신이 누군지 혼란스러워하는 감각의 이상, 단 위에서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지성의 이상이다. 셋은 각각 다른 연기를 펼치는데 누구에게 집중할지는 온전히 관객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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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명이 말하는 모두 다른 자신에 혼란스러워하던 이상. 결국 단 하나의 자신의 얼굴을 찾는 데 실패한다. 하지만 얼굴 찾기를 포기한 게 아니다. 13개의 얼굴을 다 자신의 얼굴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상의 단편소설 '실화'의 첫 구절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가 작품 내내 끊임없이 반복된다. 모호한 실체를 명확하게 규정하려는 세상의 폭력을 꼬집어내는 작품의 메시지다. 작품을 감상한 뒤 원작자 김연수 작가는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그동안 이상을 다룬 작품은 이상의 삶을 소개하거나 이상에 대한 추문을 소비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상 문학의 본질로 들어가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면서 "그런 원작의 의도를 공연으로 잘 표현해줘 놀라웠다"고 했다.

작품은 '이상'을 여태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이상'한 방법으로 담아냈다. 이 낯선 극에 사람들의 반응은 이상 문학에 대한 반응과 유사했다. 신선하다고 좋아하는 관객도 있는가 하면 서사가 없고 모호하다고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관심만큼은 뜨거웠다. 작품이 12회차까지 전석 매진되자 서울예술단이 황급히 2회 추가 공연을 결정했다. 9월 30일까지, CKL스테이지.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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