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커스, 그 아이디어와 창의력

  • 원종원
  • 입력 : 2015.01.05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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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서커스
▲ 태양의 서커스
[뮤지컬 읽기 - 19] ‘말’을 소재로 한 서커스 공연이 올려졌다. 캐나다에서 만들어져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공연을 이어오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올리며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때마침 말의 해가 마무리돼 가는 연말 분위기 때문인지 간간이 회자되며 쏠쏠한 인기를 누렸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세계 공연가에서 서커스 인기가 대단하다.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지만 분명 엄연한 사실이다. 바로 캐나다 태생의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iel)’가 선보인 예술성 짙은 실험적 무대가 세계 관객들로부터 열띤 환호와 찬사를 불러일으킨 데 힘입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상설공연장은 물론 상파울루, 부에노스아이레스, 런던, 프랑크푸르트, 시드니 심지어 이웃 아시아 지역인 도쿄와 홍콩에 이르기까지 10여 개에 이르는 이들 공연은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며 절찬리에 상연 중이다. 지금까지 ‘태양의 서커스’는 100개가 넘는 세계 유수 도시에서 250여 차례 무대를 올렸으며, 이를 통한 관객 동원만도 5000만명이 넘는 진기록을 세우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수보다 많은 관객이 이들 서커스를 보러 다녀갔다는 의미다.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을 감동시켰을까. ‘태양의 서커스’ 작품들은 단순한 서커스가 아니다. 마술을 부리고 진기명기를 보여주는 것이야 여타 서커스와 마찬가지지만 이들 무대에는 강한 뒷맛을 남겨주는 예술적으로 승화된 이미지와 형이상학적이고 압축적인 체험이 존재한다. 서커스라기보다 하이 아크로바틱 퍼포먼스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초현실적인 느낌의 의상과 조명, 형형색색 시각적 효과와 상징이 객석 관객들을 시종일관 쥐락펴락한다. 무대 아래쪽에는 눈에 띄는 안전장치도 하나 없지만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들의 움직임은 한 치 오차도 허락하지 않고 이어진다.

‘태양의 서커스’가 처음 결성된 것은 1984년 일이다. 일명 ‘하이 힐스 클럽(Le Club des Talons Hauts)’이라 불렸던 캐나다 길거리 곡예단의 후신인데, 창단 초기인 1984년부터 5년여 동안 매해 평균 27만명 관객을 동원할 만큼 인기 있는 서커스를 연이어 발표해 세인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이 기록은 후에 이들의 전 세계적 성공을 알리는 서주(序奏)에 불과했다. 오늘날 ‘태양의 서커스’는 ‘퀴담(Quidam)’ ‘살팀반코(Saltimbanco)’ ‘알레그로(Alegro)’ ‘드랄리온(Dralion)’ ‘바레카이(Varekai)’ ‘오(O)’ ‘미스떼(Mistere, 영어의 미스터리)’ ‘라 누바(La Nouba)’ ‘주마니티(Zumanity)’ ‘솔라리움(Solaium)’ 등 10여 개 레퍼토리를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연하는 대형 공연기업이다. 창단 당시 75명에 불과했던 단원은 이제 3000명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으며, 이 중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만 700여 명에 이른다. 국적도 다양해 본부와 상설 공연장이 있는 캐나다는 물론 러시아 중국 미국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전문 춤꾼, 곡예사, 배우들이 참여하는 ‘다국적 문화 상품 제조회사’로까지 성장했다.

실제 라이브로 연주가 되며 등장인물이 부르는 노래가 극 전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 ‘서커스’라기보다 ‘뮤지컬’적 요소에 가깝다. 음악을 단순히 배경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완성도를 지닌 완벽한 문화 상품의 역할마저 한다. 덕분에 공연이 열리는 도시마다 배경음악이 담긴 관련 음반이 시중 음반 매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는 일도 다반사다.

지금까지 발매된 음반은 모두 12종에 이른다. 음악이나 노래 자체로도 인기가 꽤 높은 경우가 많지만, 역시 가장 좋은 감상법은 공연을 보고 무대를 떠올리며 즐기는 방법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각각의 음악들은 공연 성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가 ‘퀴담’에 나오는 ‘날 추락하게 하소서(Let me fall)’다. 국내에서는 드라마 주제가로도 사랑받았던 음원인데 한이 서린 듯한 선율과 구슬픈 멜로디가 여러 팝페라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될 정도로 아름답다. 공연 안에서는 빨간 천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여자 연기자가 곡예를 펼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데 곡목이나 주제가에서 암시된 것처럼 추락할 듯 애간장을 녹이는 묘기에 담겨져 객석의 탄성을 자아낸다.

‘태양의 서커스’는 기념품 사업에서도 짭짤한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설명한 음반은 물론 공연장의 관객용 대기 텐트를 가 보면 비디오나 DVD 영상물과 갖가지 캐릭터를 형상화한 인형, 장난감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때문에 ‘태양의 서커스’단에는 공연을 운영하는 제작팀 외에도 음반, 영상 제작이나 기념품 판매를 담당하는 별도 자회사 또한 존재한다. ‘문화가 상품이 되고 돈벌이도 된다’면 21세기형 전방위 문화산업의 위력을 여실히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공연이나 음악, 전체적인 이미지의 조화 등도 출중하지만 ‘태양의 서커스’에서 진정 부러운 것은 무엇보다 옛 문화 콘텐츠를 가져다 다시 새 생명을 입혀 내는 이들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이다. 이제 한국 문화의 세계화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화두가 됐지만, 아직도 우리의 순수 창작 공연물은 대부분 어리숙한 모양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몇몇 작품이 외국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단순히 해외에서 공연만 한다고 세계적 문화 상품으로 탈바꿈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주도면밀하고 세심한 배려와 계획이 반영되지 않고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의 서커스’단의 글로벌한 흥행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겐 매우 의미 있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곱씹어 다시 생각하고 벤치마킹도 시도해 보길 기대해 본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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