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비하인드스토리

우리가 마시는 크림생맥주의 정체는?

  • 이덕주
  • 입력 : 2017.12.13 15:30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것. 먹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달부터 매일경제에서 식품을 담당하게 된 이덕주 기자입니다. 이곳에서 듣게 된 식품과 식품업계의 뒷얘기를 앞으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식품야사-1] 오래전부터 인기를 끌었던 '크림생맥주'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품을 죄악시하는 우리나라 맥주문화와는 달리 거품을 풍성하게 줄 뿐만 아니라 배배 꼬인 거품을 만들어서 팔기도 합니다. 지금도 많은 술집에서 크림생맥주를 팔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 번 마셔보았는데요. 그런데 이 맥주 대부분은 하이트진로에서 파는 '맥스(MAX)'라고 합니다. 바로 배우 하정우가 광고에 나와서 흰색 수염을 남기는 그 맥주입니다. 물론 100% 맥스는 아니고 OB 프리미어인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7년째 맥스 광고모델을 하고 있는 하정우
▲ 7년째 맥스 광고모델을 하고 있는 하정우
그런데 왜 '맥스'는 맥스로 팔리지 않고 크림생맥주로 팔리는 걸까요?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고객들이 한국맥주를 싫어해서입니다. 크림생맥주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술집을 찾는 고객을 위한 가장 저렴한 기본 맥주입니다. '카스'나 '하이트'처럼 소주와 섞어서 폭탄주로 먹기 위한 맥주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봉구비어'와 같이 '스몰비어'(작은 매장에서 소수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술집) 콘셉트 매장에서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고객들은 한잔을 마셔도 흔하게 마실 수 있는 한국맥주가 아니라 뭔가 다른 맥주를 마시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이 맥주를 굳이 '맥스'라고 팔지 않고 '크림생맥주'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는 것 입니다. 일부러 숨기는 것은 아니지만 고의적으로는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크림생맥주가 어떻게 시작돼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들어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당초 크림생맥주는 2005년 플젠이라는 생맥주 전문점에서 처음 만들었습니다. 플젠은 차갑게 냉각한 맥주잔에 거품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생맥주를 따라서 먹는 유행을 만들었습니다. 크림생맥주와 플젠은 2007~2008년 선풍적인 인기를 얻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맥스=크림생맥주'가 아니라 우리나라 맥주 어떤 것이든 다 크림생맥주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하이트진로도 올 100% 맥주인 '하이트 프라임'을 '맥스'라는 브랜드로 다시 브랜딩하면서 2007년 생맥주 시장에 진출합니다. 이 과정에서 맥스가 '크림생맥주'로 많이 사용됩니다. 크림생맥주의 유행은 지났지만 하이트진로는 언제부턴가 맥스를 '크리미한 생맥주'라고 마케팅했고 2015년부터는 아예 'Cream 生 All Malt Beer'라고 제품에 표시됐습니다. 크림생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맥스가 크림생맥주라는 용어를 아예 가져온 것인데요. 맥스 입장에서는 오히려 '크림생맥주가 사실은 우리야'라고 은근히 알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매장에서 '맥스'라고 팔지 않고 '크림생맥주'라고 팔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맥주의 현실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맥주를 싫어합니다. 가장 많이 팔리는 카스와 하이트에 대한 반감은 맥주 기사에 달리는 댓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마트와 편의점 등 소위 가정용 주류시장에서는 이미 수입 맥주가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맥주가 정말 맛이 없을까요? 이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기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맥주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한국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얘기를 한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의 고향 영국도 비슷한 상황인데요. 대표적인 영국 맥주 칼링(Carling)도 밋밋한 맛으로 소비자에게 악평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인 중국의 스노(설화)도 젊은 중국인들은 싫어한다고 합니다. 리터당 가격이 1달러 정도밖에 안 하는 이 '국민맥주'도 너무 저렴한 이미지 때문에 점점 취향이 고급스러워지는 젊은이들에게 외면받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카스와 하이트, 영국 칼링과 중국 스노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라거맥주라는 건데요. 물 탄 듯한 연한맛과 청량감이 라거맥주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를 1위부터 10위까지 정리해 보면 대부분이 라거일 정도로 사실 '라거=맥주'라고 봐도 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콜라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인 것처럼 말이죠.

자국맥주에 대한 반감은 사실 라거맥주에 대한 반감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라거맥주는 20세기 들어서 대량생산·대량소비 맥주의 상징이 되었고 실제로 거대 기업들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OB맥주는 전 세계 맥주 1위 회사인 AB인베브의 자회사이고 하이트는 참이슬 등을 만드는 국내 1위 주류기업인 하이트진로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주류문화에 대한 반감이라고 볼 수도 있고요. 나쁘게 보자면 조강지처를 버리고 딴 여자에게 기웃거리는 남자에도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우리나라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음테스트를 해보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바로 라거맥주인 카스와 하이트이기 때문입니다.

주류 라거맥주에 대한
▲ 주류 라거맥주에 대한 '디스'로 성장한 영국 수제맥주회사 브루독
이 같은 거대 맥주에 대한 반감으로 나온 것이 소위 수제맥주(크래프트비어)인데요. 이런 수제맥주 유행이 처음 시작된 미국에서는 이미 사무엘아담스(보스턴비어컴퍼니)라는 거대 수제맥주 회사가 나왔고, 영국에서는 브루독(Brewdog)이라는 회사가 나왔습니다. 브루독은 영국에서 음식료 스타트업으로는 처음으로 기업가치 1조원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 사람들이 이처럼 자국 맥주와 라거맥주를 싫어하는데 왜 큰 맥주회사들은 망하지 않는 걸까요? 국산 맥주를 싫어하는 사람보더 더 많은 어떤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무슨 맥주든 상관없다'는 사람입니다.

맥주는 사실 무슨 맥주를 마시든 사람들이 별 상관하지 않는 제품입니다. 이를 마케팅에서는 '저관여 제품(Low Involvement Product)'이라고 합니다. 카스든 하이트든 그냥 아무 맥주여도 다 좋다는 것이죠. "나는 꼭 이 맥주를 먹고싶다" "이 맥주가 없으면 이 가게에 오지않겠다"는 정도가 아주 약하다는 뜻입니다. 수입맥주의 유행도 사실은 브랜드보다는 유통의 힘이 컸습니다. 소비자들은 4캔에 1만원에 먹을 수 있다면 국산맥주보다는 수제맥주를 마시겠다고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는 아무 수입맥주여도 상관없다는 것이 많은 소비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 황당한 사례가 이마트에서 나온 PB맥주입니다. 이마트는 자회사인 신세계L&B를 통해서 PB맥주인 더킹덤오브벨지움을 벨기에에서 생산해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 맥주는 이마트24등 편의점에서도 팔고 있습니다. 노브랜드, 초이스L 등 PB제품을 경험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제품은 브랜드가치를 빼버리고 철저하게 가성비로 승부하는 상품입니다. 편의점에서 6캔에 9900원이라는 경이적인 가격에 팔고 있습니다. 사실상 세금 회피 상품인 필라이트에 필적하는 가성비 제품입니다.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

사실 더킹덤오브벨지움 맥주는 마튼즈 브루어리라고 하는 벨기에 제2위 맥주회사에서 생산한 제품입니다. 마튼즈 자체 브랜드 맥주도 나쁘지 않고 더킹덤오브벨지움 맥주도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벨기에 맥주라고 수입해서 마시는 맥주가 사실 벨기에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PB제품이라는 것은 어딘가 이상합니다. 우리가 맥주를 선택할 때는 틀림없이 그 맥주 브랜드에 대해 지불하는 비용이 있을 겁니다. 버드와이저는 미국에 이주한 독일 이민자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칭다오 맥주는 독일의 조계지였던 칭다오에서 생산된 독일 맥주라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일본의 맥주회사들에도 나름의 역사와 함께 일본인들의 맥주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이트맥주는 우리나라 양대 맥주회사였던 조선맥주에서 출발해 1위 맥주였던 OB를 꺾은 '암반천연수' 맥주 하이트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브랜드 가치가 없다면 맥주 생산지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세금 때문에 수입맥주가 가격에서 유리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생산기술의 발달로 어디에서 생산되든 이제 맥주 맛에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생산된 벨기에 호가든이 오가든으로 불렸던 것도 비슷합니다. 사실은 똑같은 호가든인데 국내 OB맥주 공장에서 생산됐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은 '오가든'이라고 폄하했습니다. 소비자들이 기대했던 호가든은 벨기에에서 생산되고 벨기에 밀맥주의 역사와 전통이 담겨 있는 맥주였던 것입니다.

아무리 저관여 상품이라지만 저는 맥주에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제맥주 회사인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김태경 대표는 저에게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술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Ceremony' 즉, 축하와 기념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입니다. 축하의 자리, 위로의 자리, 기념의 자리에 우리는 항상 술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술에도 의미를 부여하려고 합니다. 서양 위스키 회사들이 왜 연산(위스키가 몇 살인가)에 집착하는지에 대해서도 비슷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위스키는 항상 특별한 순간을 위한 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짜 양주를 들고 건배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저는 우리나라 맥주도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자리에서 마시는 술이 내가 사랑하는 맥주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덕주 유통부 기자 mrdjlee@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