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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정운 가상화폐 사건, 언론도 헷갈리는 진짜 내막

  • 지홍구
  • 입력 : 2018.01.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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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법인 A사 관계자들이 계열사를 통해 54개국 1만8000여명에게 판매한 가상화폐 채굴기. 이들은 "채굴기를 구입하면 한달에 2~3개 정도의 이더리움(가상화폐 이름)이 채굴돼 6개월내 원금 회수가 가능하다"면서 채굴기 1대당 250만~500만원까지 받아 가로챘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낸 돈으로 8만대의 채굴기를 구입해 위탁·운영해야 하지만 10%인 8000대만 구입해 채굴기를 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채굴기 8000대에서 만들어진 이더리움 3만개도 A사 회장단이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지홍구 기자
▲ 미국법인 A사 관계자들이 계열사를 통해 54개국 1만8000여명에게 판매한 가상화폐 채굴기. 이들은 "채굴기를 구입하면 한달에 2~3개 정도의 이더리움(가상화폐 이름)이 채굴돼 6개월내 원금 회수가 가능하다"면서 채굴기 1대당 250만~500만원까지 받아 가로챘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낸 돈으로 8만대의 채굴기를 구입해 위탁·운영해야 하지만 10%인 8000대만 구입해 채굴기를 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채굴기 8000대에서 만들어진 이더리움 3만개도 A사 회장단이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지홍구 기자


[전국구 와글와글-7] 최근 인천지검이 수사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가상화폐 붐에 편승한 사기 사건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터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스타 가수'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 사건은 사기 규모 자체만으로도,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도 작은 사건이 아니다. 사기 규모만 2700억원에 달하고 피해자가 54개국 1만8000명에 달한다.

무엇보다 지금도 도주 중인 주범들이 미국에서 계속 범행하고 있어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진행형' 사건이란 점에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인천지검이 지난달 20일 3개월가량 집중 수사를 마치고 해당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들을 법원에 넘겼다. 범행을 확인한 36명 가운데 21명(18명 구속기소, 3명 불구속기소)이 우선 재판을 받는다.

아쉽게도 외국에서 범행을 주도한 회장 등 7명은 이미 해외로 도주한 상태여서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내리고 국내 최상위사업자 4명도 쫓고 있다. 회장 수행비서 등 4명은 수사 중이다.

검찰이 가상화폐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언론도 앞다퉈 이를 보도했다. 특히 1989년 '사랑일꺼야'로 데뷔해 1990년대 초반 '오늘 같은 밤이면'으로 많은 인기를 누린 가수 박정운 씨가 어떤 처벌을 받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어떤 언론은 박씨가 사기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또 다른 언론은 사기 사건에 연루됐다는 표현을 쓰며 더욱 독자를 혼돈스럽게 한 측면이 있었다.

팩트는 뭘까?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박씨는 가상화폐 사기 사건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검찰이 법원으로 넘긴 21명 가운데 박씨는 분명 포함돼 있으나 죄명이 다르다. 사기 혐의가 아니라 상법위반,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 업무상횡령 등 4가지 혐의다.

상법위반,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 혐의는 가상화폐 범죄 총책인 미국법인 A사 회장으로부터 100억원을 받아 홍보회사를 설립한 뒤 지난해 7월 납입 자금 80억원을 인출해 자금관리회사로 건넨 데 따른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A사 회장 돈으로 100억원짜리 홍보회사를 설립했지만 박씨가 80억원을 인출하면서 실제로는 20억원짜리 회사가 됐다"고 밝혔다.

박씨에게 적용한 업무상횡령 혐의는 박씨가 홍보회사 대표로 있던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8회에 걸쳐 회사자금을 사적 용도로 쓴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박씨가 생활비 등의 명목으로 회사자금 4억5000만여 원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애초 검찰도 박씨에게 사기 혐의가 있다고 보고 혐의를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모았다. 가상화폐 사기사건 총책인 A사 박 모 회장(55)이 설립한 홍보회사에 대표로 있었고 유명 가수를 섭외해 노래를 부르게 하고 사회를 보는 등 회사 행사에 작지 않은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행사의 경우 국내에서는 주로 서울 워커힐호텔과 같은 대형 시설에서 과시를 위해 치러졌다.

그러나 검찰은 박씨의 사기 혐의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박씨는 검찰 조사에서 "(A사가) 가상화폐를 판매하는 것은 알았지만 불법 다단계인지 몰랐고 정상적으로 채굴기가 설치돼 가동되는지 알았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폈다. 투자설명회 등을 위한 워크숍에서 동료 가수를 불러 사전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사업설명은 상위 사업자가 한 것도 사기 혐의 적용을 힘들게 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가) A사 회장(도주 중)과 평소 친분이 있어 홍보회사 대표를 맡게 됐다고 했다"면서 "박씨의 경우 다단계 판매업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설명하듯 한 게 아니라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박씨는 검찰이 기소한 4개 혐의에 대해서만 재판을 받기 때문에 가상화폐 사건과 별개 사건으로 분류돼 법정에 서게 된다.

만약 재판 도중 주범이 잡히고 그의 입에서 박씨의 사기 가담 혐의를 입증할 만한 새로운 진술 또는 증거가 나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검찰이 박씨에 대해 사기 혐의로 추가 기소할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범 검거 후에도 박씨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과 달라질 게 없다면 박씨는 이번 가상화폐 사기 사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된다.

그래도 박씨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것이다. 1만8000명이 2700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고, 범행을 주도한 A사 그룹 홍보를 위해 자신이 앞장섰다는 자괴감에 밤잠을 설치지 않을까.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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