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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고 냉혹한 음료시장, 정말 완전경쟁시장일까

  • 이덕주
  • 입력 : 2018.03.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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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야사는 사람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식품'을 산업적인 측면에서 다뤄보는 시리즈 기사입니다. 매경프리미엄(premium.mk.co.kr) 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식품야사-8]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장은 어디일까요? 휴대전화? 식당? 금융시장?

기업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팔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신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에 돈을 많이 쓸 때, 우리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고 합니다.

"시장참가자의 수가 많고 시장참여가 자유로우며, 각자가 완전한 시장정보와 상품지식을 가지며, 개개의 시장참가자가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한 상태에서 그곳에서 매매되는 재화나 서비스가 동질일 경우 완전한 경쟁에 의해 가격이 형성된다. 이를 '완전경쟁시장'이라고 한다(출처:네이버지식백과)"

두 번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안 되는 말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참여하는 기업이 많고 이 중에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강한 기업이 없으며, 상대의 제품을 언제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위와 같은 기준으로 볼 때 '편의점 냉장고'도 완전경쟁시장에 가깝지 않을까요? 편의점 냉장고에는 정말로 많은 '마실 것(음료)'들이 고객들을 유혹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선택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음료가 편의점에서 팔고 있는지 충무로 매경미디어센터에 있는 G사 편의점에 들어가서 세어봤습니다. 문짝이 없는 냉장고에 대략 150개, 문짝이 달린 냉장고에 150개, 맥주냉장고에 80개, 온장고에 80여 개가 있었습니다(같은 브랜드여도 맛이나 용량이 다르면 다른 제품으로 쳤습니다). 냉장고+온장고에서만 도합 460개가 있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요즘 편의점에서는 1000원짜리 커피도 팔고 있고, 얼음만 사다가 봉투에 들어 있는 커피를 부어서 마실 수도 있습니다. 또한 여름이 되면 아이스크림 등 빙과류도 음료와 경쟁을 하기도 합니다.

편의점은 우리가 무언가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아닙니다. 햇볕이 뜨거운 여름날 목이 마를 때, 우리는 편의점에 갈 수도 있지만 인근 커피전문점에 갈 수도 있습니다. 주스전문점도 있고, 베이커리에 가도 음료는 팝니다. 바로 근처에 자판기가 있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사무실에 들어가서 정수기에서 물을 마실 수도 있습니다. 마실 것에 관한 한 우리의 선택지는 정말로 많습니다.

사람이 하루에 마시면 건강에 좋은 수분의 양은 2리터라고 합니다. 다행히 이를 모두 음료의 형태로 섭취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만 음료회사들은 이 2리터를 두고 경쟁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음료업체들은 시작부터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식당에 가도 '물'이 공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그 절반인 1리터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 음료시장이라고 한 음료업계 분이 저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경쟁은 대부분 소비자들에게 좋은 것입니다. 가격을 낮추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선택은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을 때, 사람들은 쉽게 선택하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가 편의점에 무언가를 마시러 갈 때, 어느 정도는 무엇을 마실지 어떤 브랜드를 마실지 결정을 하고 찾아갑니다. 그러므로 소비자들이 편의점 냉장고 앞에 섰을 때, 이미 어느 정도 결정은 이뤄진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편의점 냉장고보다 더 치열한 경쟁은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이뤄집니다. 소비자들의 인식과 선호에 자리잡는 것. 경영학에서는 그것을 '브랜딩'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내가 커피를 먹고 싶다고 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것. 시원한 탄산음료를 마시려고 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그것.

음료산업은 그래서 무엇보다도 브랜드가 중요합다고 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강력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땅 집고 헤엄치기와 같습니다. 특히 음료산업에서 연 매출이 1000억원 이상인 브랜드를 '메가브랜드'라고 하는데 이는 한 캔에 1000원짜리 음료라면 1년에 1억개가 팔린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메가브랜드가 무엇이 있는지 한번 조사해봤습니다. 맥주와 흰우유는 제외했습니다. 2017년 기준이고 각 회사들이 자체 기준에 따라 내놓은 것을 집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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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한 번쯤은 마셔봤을 브랜드일 겁니다. 코카콜라와 썬키스트는 소위 글로벌 브랜드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팔고 있는 브랜드라는 뜻입니다. 브랜드는 이 회사들이 가지고 있지만 음료 생산은 각각 LG생활건강(이하 LG생건)과 LG생활건강의 자회사인 해태음료가 맡고 있습니다. 펩시콜라도 생산은 음료회사인 롯데칠성이 맡고 있습니다. 이 브랜드들은 생산과 영업은 한국 파트너인 LG생건과 롯데칠성이 하지만 브랜드 마케팅은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카콜라가 대표적입니다.

고구마의 반대말은? 사이다입니다.
▲ 고구마의 반대말은? 사이다입니다.

음료업계 부동의 1위인 롯데칠성은 '칠성사이다'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탄산음료를 브랜드로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1974년 롯데그룹에 인수되면서 롯데그룹의 핵심계열사가 되었습니다.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가장 많은 메가브랜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칠성사이다는 정말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편의점이나 자판기는 물론 고깃집,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서도 칠성사이다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이다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온 것입니다. 투명한 탄산음료가 19세기 초부터 'サイダ-(사이다)'라는 잘못된 영어로 일본에서 쓰였고,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한국에서도 자연스럽게 투명한 탄산음료를 '사이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영어에서 cider는 알코올이 들어간 과실주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이다'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형용사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사이다를 마실 때처럼 어떤 것이 상쾌하고 속이 시원한 것을 뜻하는 말이 된 것입니다.

이외에도 롯데칠성은 마운틴듀, 미린다, 트로피카나, 밀키스, 세븐업, 트레비, 실론티, 립톤, 게트레이, 솔의 눈, 핫식스, 아이시스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LG생건은 '럭키치약'을 만든 LG그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인 '락희화학공업'에서 나온 회사입니다. 지금은 화장품부터 음료, 기저귀까지 모든 종류의 소비자용 제품을 팔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에게는 화장품과 생활용품이 익숙하지만 음료업계에서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는 큰 회사입니다. 환타, 씨그램, 파워에이드, 미닛메이드, 닥터페퍼, 태양의 마테차, 토레타 등도 모두 LG생건이 만드는 음료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롯데칠성과 LG생건의 관계인데요. 코카콜라 vs 펩시콜라, 칠성사이다 vs 스프라이트, 델몬트 vs 썬키스트, 레쓰비칸타타 vs 조지아. 두 회사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료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경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롯데칠성과 LG생건이 이런 관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음료업계 3위는 누구일까요? 사실 식품과 관련된 거의 모든 회사들이 음료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음료업계'라는 말은 큰 의미는 없지만 동아오츠카를 3위로 꼽는 것 같습니다. 롯데칠성과 LG생건이라는 거대 기업 틈바구니에 낀 동아오츠카는 '박카스'로 유명한 동아제약의 자회사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오츠카'사와 합작회사이며 오츠카도 동아제약과 마찬가지로 제약과 음료를 모두 하는 회사인데 '포카리스웨트'와 '오로나민C'는 일본에서도 똑같은 이름과 디자인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이온음료는 누가 뭐래도 포카리스웨트죠! One in a Million! /사진제공=동아오츠카
▲ 이온음료는 누가 뭐래도 포카리스웨트죠! One in a Million! /사진제공=동아오츠카

음료업계 4위에 해당하는 회사는 웅진식품입니다. 지금은 웅진그룹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회사인데요. 하늘보리, 아침햇살, 초록매실 등의 작지만 강력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근히 커피에서 메가브랜드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매일유업, 동서식품, 정식품, 빙그레 등 모두 메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어서 음료사업의 비중이 큰 대표적인 회사입니다.

이렇게 1000억원어치나 음료를 팔아서 음료회사들은 얼마나 돈을 벌까요? 우리나라 음료시장 1위인 롯데칠성의 영업이익률은 4% 정도입니다(지금이 평소보다 낮은 상황이라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4%라고 하면 1000억원을 팔면 원가와 인건비, 마케팅비 등을 빼고 40억원이 남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1000원짜리 음료를 팔면 40원이 남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반도체 회사 중 하나인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45.6%인 것을 생각하면(1000원짜리를 하나 팔면 남는 게 456원)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처럼 '띠끌모아 태산'을 만드는 것이 음료산업임에도 불구하고 메가브랜드의 가치는 엄청납니다. 보통 음료산업에서 출시 후 연간 100억원이 팔렸다면 성공한 제품으로 치고 300억원이 넘으면 시장에 자리잡았다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1000억원을 매년 꾸준히 판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대단한 '효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효자'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 둬도 계속 효자로 남지는 않습니다. 브랜드는 끝없이 알리고 홍보해야만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원조 JYP의 데뷔 50주년이 올해입니다.
▲ 원조 JYP의 데뷔 50주년이 올해입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음료 중 '맥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84년 일화에서 처음 내놓은 맥콜은 '보리탄산음료'라는 신영역을 개척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당대의 최고 스타인 조용필을 광고모델로 쓰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1988년에는 한 해 동안 14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맥콜 한병의 가격이 200원이었다고 하니 지금으로따지면 1400억원의 4배 정도 매출을 보였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행이 지나가면서 위기가 찾아왔고 1998년 회사가 부도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후 맥콜에 대한 브랜드 관리가 이뤄질 수 없었고 2013년이 되어서야 겨우 맥콜을 살리기 위한 마케팅을 재개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소비자들의 인식에서 사라진 브랜드는 다시 등장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맥콜'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30대 이상일 겁니다. 맥콜은 지금도 여전히 팔리고 있고 편의점 한 곳에도 자리잡고 있지만 이상하게 우리가 마시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다시 경쟁의 얘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음료산업은 완전경쟁시장에 가깝다고 저는 주장했지만 '브랜드'의 존재로 인해 이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브랜드의 존재로 인해 '매매되는 재화가 동질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환타, 미린다, 트로피카나 스파클링, 데미소다 사이에는 맛과 가격의 차이가 있겠지만 소비자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브랜드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 기업들이 쏟아붓는 돈도 그 가치를 인정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덕주 유통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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