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비하인드스토리

라이신에 얽힌 제일제당과 대상 희비의 쌍곡선

  • 이덕주
  • 입력 : 2018.04.18 15: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식품야사-10] CJ제일제당을 아시나요? 모르신다고요. 그럼 백설표 설탕이나 다시다를 아시나요? 아니면 비비고 군만두와 햇반을 아시나요? 이 정도 얘기해도 모르신다면 한국인이 아니실 것 같습니다. 식품야사 10회가 돼서야 식품업계 1위, 식품업계의 삼성전자인 CJ제일제당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 회사는 식품업계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에서 삼성전자와 닮았습니다.

한국에서 비비고는 왕교자가 유명하지만 미국에서 비비고는 비빔밥 전문점입니다 /사진 제공=비비고USA
▲ 한국에서 비비고는 왕교자가 유명하지만 미국에서 비비고는 비빔밥 전문점입니다 /사진 제공=비비고USA

최근 CJ제일제당 대표이사가 바뀌었습니다. 2011년부터 약 6년간 CEO로 일하던 김철하 부회장이 물러나고 다른 분이 대표이사가 되었는데요. 김철하 부회장 경력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CJ제일제당 경쟁사인 대상에 1977년 입사해 2005년까지 일했기 때문입니다. 대상 바이오사업총괄 중앙연구소 소장으로 일했던 사람이 경쟁사의 바이오연구소 소장으로 스카우트되었습니다. 경쟁사 출신 임원이 대표이사까지 오른 것입니다. 그런데 CJ제일제당과 대상의 인연(혹은 악연)은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CJ제일제당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제당', 즉 설탕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1953년 8월에 만든 이 회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제당 회사이면서 삼성그룹 최초의 제조업 회사입니다. 이 밖에도 CJ제일제당은 밀가루와 대두유(콩식용유)에서 우리나라 1위입니다.

반면 대상은 대상그룹 창업주인 임대홍 회장이 1956년 1월에 만든 동아화성공업에서 출발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미료를 만든 회사입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원(味原)'입니다. 대상은 조미료 외에 전분당(녹말) 시장 우리나라 1위입니다.

설탕과 조미료라는 식품산업에서 기초 중 기초가 되는 제품으로 시작한 두 회사는 1963년 처음 맞붙게 됩니다. 1963년 제일제당이 조미료 사업에 진출해 '미풍(味豊)'을 생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미풍과 미원은 치열한 경쟁을 펼치지만 결국 승리는 미원에 돌아갔습니다. 삼성그룹이 다른 기업들과 맞붙어 패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미노산은 20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아미노산이 결합되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단백질이며, 단백질은 우리 몸을 구성합니다.
▲ 아미노산은 20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아미노산이 결합되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단백질이며, 단백질은 우리 몸을 구성합니다.

1973년 미원은 국내 최초로 라이신이라는 물질을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합니다. 라이신은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지만 생명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으로 동물은 이를 먹어서 섭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고기나 곡물 등을 통해서 충분히 섭취하므로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축에게 라이신이 많이 필요합니다.

지난 식품야사 9회에서 육계산업은 '정해진 사료를 가지고 얼마나 빠르게 닭을 키우는지가 중요하다'고 설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돼지를 키울 때 사료와 함께 필수 아미노산인 라이신을 첨가해주면 더 빠른 속도로 자랍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일종의 단백질 보충제 같은 것인데요. 인구가 늘고 돼지고기소비가 늘어날수록 라이신에 대한 수요는 높아집니다.

반면 제일제당은 다소 늦은 1988년 인도네시아에 라이신 공장을 짓고 이 시장에 진출합니다. 당시 매일경제 신문 자료를 보면 12만톤 규모인 전체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이 10만톤, 미원이 2만톤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제일제당이 2만톤 규모 공장을 짓고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두 회사가 라이신이라는 아미노산에 도달하게 된 과정에는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바로 MSG입니다. 미풍과 미원은 바로 MSG라는 물질인데요 이는 MonoSodium Glutamate의 약자입니다. 한글로는 글루탐산나트륨이라고 하는 물질로, 분자식은 C5H8NO4Na라고 합니다. 이 MSG는 1908년 이케다 기쿠나에라는 일본 화학자가 발견한 물질인데요. 다시국물 맛을 연구하다가 그 맛의 원천이 '글루탐산'에서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글루탐산도 아미노산의 한 종류입니다). 이 글루탐산을 물에 잘 녹도록 나트륨과 결합한 것이 MSG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다시다 국물로 음식을 하면 맛있는 이유는 글루탐산 때문인데 MSG는 이를 추출해낸 다음 물에 잘 녹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가 발명한 MSG를 스즈키제약소라는 회사에서 아지노모도(味の素·맛의 원소)라는 제품명으로 판매하기 시작하는데요. 어떤 맛이든 감칠맛을 내게해주는 이 조미료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도 널리 사용됩니다. 미원은 이 MSG를 광복 이후 한국 자본과 기술로 생산한 최초의 제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신문에 실린
▲ 1960년대 신문에 실린 '신선표 미원' 광고

처음에 MSG는 화학적인 방법으로 생산됐습니다. 식물성 단백질을 염산으로 녹이는 방식입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부터 발효에 의한 생산 방법이 도입됩니다. 사탕수수 사탕무 등을 미생물을 이용해서 발효시켜서 글루탐산을 만들고 이를 다시 MSG로 만드는 것입니다.

화학적인 방법과 반댓말을 우리는 생물학적(바이오) 방법이라고 합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문과라 잘 모르지만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을 때 '화학적'이라고 합니다. 반면 '생물'에 의해 어떤 것이 만들어지면 '바이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아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비닐,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해낸 물질인데요. 자연계에는 없는 인위적인 물질이라고 합니다. 반면 MSG 같은 것은 미생물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화학적인 물질이 아니라고 합니다. MSG를 만드는 과정인 발효가 고추장, 간장, 맥주를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라이신도 글루탐산처럼 발효를 통해서 생산합니다. 이 밖에도 메치오닌(닭용), 스레오닌(돼지용), 트립토판(돼지용)과 같은 아미노산도 발효를 통해 생산하고 라이신과 같이 가축의 성장을 빠르게 하는 데 쓰입니다.

두 회사는 똑같이 MSG와 발효라는 관문을 거쳐 라이신을 생산하게 되는데요. 1997년 두 회사 운명은 갈립니다. 대상은 생존을 위해 라이신사업을 매각했고 CJ는 이를 계속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상은 군산에 공장을 둔 라이신사업부문을 1998년 글로벌 화학기업인 바스프에 6억달러에 판매합니다. 그리고 2015년에는 17년 만에 이를 다시 되사옵니다.

반면 CJ는 2005년에는 브라질, 2012년에는 미국 공장을 짓는 등 해외에 지속적으로 라이신 공장을 짓습니다. 그래서 2013년에는 라이신 분야 생산 규모에서 세계 1위에 오릅니다. 예전에 1위는 일본 회사인 아지노모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지노모도를 판매한 스즈키제약소는 1946년 아예 이름을 아지노모도로 바꿔버립니다. 동아화성기업이 이름을 미원으로 바꾼 것처럼 말입니다.

보노 콘스프를 만드는 회사가 바로 아지노모도입니다.
▲ 보노 콘스프를 만드는 회사가 바로 아지노모도입니다.

2015년 되찾아온 대상의 라이신 매출은 3000억원. 반면 CJ제일제당의 바이오 매출은 2조원에 달합니다. 1997년에 라이신을 팔지 않았다면 CJ제일제당의 위치를 대상이 차지할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김철하 부회장은 대상이 라이신 사업을 하고있을 때 입사해(서울대 미생물학과) 라이신 사업을 매각하는 것을 지켜봤고, CJ제일제당으로 옮겨서는 이 회사가 글로벌 바이오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 몸의 구성 성분이 아니라 식품산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라이신을 비롯한 아미노산들은 왜 중요할까요? 우리가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식품을 만드는 데 기초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곡물에서 나온 사료와 아미노산을 먹고 돼지와 닭이 자라고, 여기서 나온 닭고기로 다양한 요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미노산은 미생물이라는 바이오 기술이 들어갑니다. 미생물을 통해 라이신을 더 잘 생산할 수 있으면 경쟁사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식품산업의 아미노산은 전자산업의 반도체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도체는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CJ제일제당의 라이신을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본다면, 비비고 교자만두는 휴대전화라고 볼 수 있겠네요. 라이신으로 키운 돼지의 고기가 만두 속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아미노산과 반도체가 비슷한 점은 또 있습니다. 반도체처럼 아미노산도 대규모 투자와 생산효율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CJ제일제당이 삼성그룹 최초의 제조업 기업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삼성의 제조업 DNA가 CJ제일제당에도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반도체 시장과 사료용 아미노산 시장은 엄청난 규모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꽉 잡고 있는 D램시장 규모가 연 64조원 정도라고 합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절반인 30조원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사료용 아미노산 시장 규모는 10조원 정도고 2조원 정도를 CJ제일제당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화학 vs 생물학(바이오)>

화학과 바이오 만큼 대중적인 인식이 큰 영향을 끼치는 분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화학물질이라고 하면 뭔가 위험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바이오라고 하면 어딘가 안전하고 첨단 제품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화학이 생물학이고 생물학이 곧 화학이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세상 물질이 모두 원소로 구성돼 있고 이 원소 사이의 물리학이 화학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물도 물질이므로 화학적인 원리로 움직입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다양한 화학식으로 표현됩니다. 단백질과 같이 생물체를 구성하는 화합물에 대한 학문은 생화학이라고 합니다.

화학에 대한 반감은 산업화 초기에 우리가 인간에게 필요한 물질을 얻어낼 때 화학적인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생겼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화학 실험 때 접한 황산이나 염산처럼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화학물질은 위험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약산업을 예로 들자면 살리신산(C7H6O3)과 아세트산무수물(C4H6O3)이라는 화학적인 물질을 반응시켜 우리가 잘 아는 아스피린(아세틸살리실산)을 만듭니다. 이를 합성의약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러 가지 생물(미생물, 세포) 등을 통해서 만드는 의약품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바이오의약품이라고 하는데요. 화학적인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물질과 달리 생물체가 만들어 내는 물질은 엄청난 고분자 물질입니다. 대표적인 합성의약품인 아스피린은 21개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어떤 바이오의약품은 2만개의 원자로 이뤄져 있다고 합니다. 이런 고분자 물질을 더 싸게 만들수 있기 때문에 제약산업에서도 합성의약품 대신 바이오의약품이 대세가 됐습니다.

바이오의약품을 그대로 복제해서 만든 제품을 바이오시밀러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바이오테크놀로지 기업인 셀트리온이 바로 바이오시밀러를 만드는 기업입니다. 또 바이오의약품의 위탁생산만을 담당하는 회사가 바로 삼성바이오로직스입니다. MSG나 라이신을 만들 때도 화학적인 방법에서 효소를 이용한 생산으로 바뀐 것도 이것이 더 생산성이 좋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음식을 넣으면 똥이 나오는 거대한 단백질 덩어리가 인간일까요?
▲ 음식을 넣으면 똥이 나오는 거대한 단백질 덩어리가 인간일까요?

MSG에 대한 논쟁은 'MSG에 대한 공포심은 비이성적이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MSG는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물질이고, 인간의 몸에 특별히 해로운 것도 아니며, 제조 공정도 발효를 통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식품 쪽을 담당하다보니 식품산업이 대량생산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맛을 내기 위해 정성을 들여 육수를 우려내는 것이 아니라 맛을 내는 성분인 MSG를 넣으면 맛있는 음식이 된다는 사실. 우리가 매일 먹는 치킨을 위해 매일 200만마리의 닭이 태어난 지 30일 만에 도계된다는 사실은 어딘가 불편합니다. 이건 마치 우리 인간도 사실은 그냥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얘기를 듣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점점 친환경 제품을 찾고, 과학적으로 무해하다는 GMO 제품을 기피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이는 비이성적일지는 몰라도 아주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유통경제부 이덕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