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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남북정상회담 성공, 친미 외교부 역할 줄어 가능"

  • 김병호
  • 입력 : 2018.05.0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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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신임 베트남 대사 단독 인터뷰

내가 김도현 대사를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무렵이었다.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있을 때 그는 주러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이었다. 김 대사와 관련해 잊히지 않는 장면 중 하나는 당시 모스크바 시내에서 열린 오찬 때였다.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 5명과 특파원단, 현지 대사와 공사 등이 식사를 함께한 자리에서 김도현 서기관은 서열상 맨 끝에 앉았다. 하지만 1년 전 김선일 씨 참수 사건 등 이라크 얘기가 나오자 김 서기관은 대화를 주도했다.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할 말석의 외교관이 해박한 중동 역사와 국제 정세를 풀어놓기 시작하자 참석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김 서기관에 쏠렸다. 국회의원과 상관인 대사, 공사들을 제치고 그는 한 치의 망설임이나 떨림도 없었다. 자기가 확신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고, 남을 설득할 내공이 있었다(그가 2003년 이라크를 거쳐 2년 뒤 러시아에 오기까지 외교부 내 일명 '자주파-동맹파 갈등 사건'에 휘말려 고생한 얘기는 나중에야 들었다).

김도현 신임 베트남 대사 / 사진=한주형 기자
▲ 김도현 신임 베트남 대사 / 사진=한주형 기자

그는 러시아에서 근무할 때도 화려한 파티보다는 모스크바 시내 스포츠바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현지인들과 어울렸다. 러시아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그 나라 사정에 대해 다독(多讀)한 내용을 현장에서 확인해보려고 애썼다. 러시아 임기를 마치고 우크라이나에 가서도 폼만 잡는 외교관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줬다.

키예프에서 한국 유학생이 스킨헤드(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현지 경찰은 용의자로 지목된 범인 4명을 풀어주었다. 사건 해결에 나선 그는 주재국 검찰을 설득하고 20번 넘게 재판에 출석해 러시아어로 변론을 했다. 결국 법원은 4명 모두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범죄 사건에서 재판부가 가벼운 처벌을 해온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당시 우크라이나 주재 한국대사관 역할이 지대했던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살지만 국적 없이 떠도는 불쌍한 고려인 동포들의 생계와 자존감을 찾아주는데도 발 벗고 나섰다. 주재국 내무장관을 한국에 초청해 고려인들이 오랫동안 우크라이나 땅에 거주해온 사실을 다각도로 설명했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고려인들에게 국적을 주는 칙령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친정인 외교부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자기 색깔이 너무 강해 잘 타협하지 못했다. 2002년 말부터 시작된 소위 동맹파-자주파 간의 논쟁에서 그는 자주파를 대표하는 소장 인사였다. 외교부 북미국 과장이 사석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외교 정책을 모욕적인 표현을 섞어 비판하자 청와대는 외교부 장관을 포함해 인사 척결에 나섰고, 그 배후로 김 서기관 역할이 지목됐다. 세간에서는 김 서기관이 민정수석실에 청와대의 대미 외교를 비난하는 외교부 속내를 '투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 대사는 베트남 대사 임명이 발표된 지 이틀 뒤 기자와 만나 '투서'라는 실체는 전혀 없으며, 언론이 민정수석실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을 투서라는 부정적인 프레임에 끼워 오보를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맹파와 자주파라는 이분법 역시 외교부내 적폐세력과 일부 보수언론이 합작해 만든 정치 프레임이라고 주장했다. 적폐세력은 한미동맹만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을 미국이라는 이미지로 미화하려 했던 반면 자주파에 대해서는 반미주의와 과격주의자로 몰고갔다는 것이다.

김도현 신임 베트남 대사 / 사진=한주형 기자
▲ 김도현 신임 베트남 대사 / 사진=한주형 기자

그는 "2002년 말부터 시작된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 과정에서 (북미국 위주) 외교부 직원들이 협상 과정에서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며 갈등을 빚었고, 결과적으로 이전협상에 기망(欺罔)이 있었다"면서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내가 답변했던 내용이 투서라는 이름으로 확대 재생산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인터넷에는 2003년 11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조사한 '용산기지 이전협상 평가결과 보고'라는 17페이지 분량의 문건이 돌아다닌다"면서 "거기 있는 내 발언 내용을 투서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평가결과보고서 내 총괄평가는 '외교부 북미국(북미3과)이 미국에 대한 지나친 맹종적 자세와 현상유지적 속성으로 당당하고 합리적인 협상외교를 전개하지 못하면서 중요 정보에 대한 독점적 장악과 통제를 통해 조약국 등 여타 부서의 적법하고 정당한 조언을 무시하고 참여를 제약함으로써 협상 실패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결론 냈다. 그 주된 근거로 결론 밑에는 김 외무관(서기관)이 밝힌 외교부의 그릇된 협상 전제에 관한 진술이 제시돼 있다. 김 대사는 "동맹파-자주파 논란은 더 이상 없고 국익파만 있을 뿐"이라면서 "아무리 동맹이라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관계가 돼야 한미관계도 건강하게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본인의 부임지인 베트남에 대해서는 경제협력도 중요하지만 지정학적 관점에서 중시해야 할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를 만났는데 본인이 북한 대사로 있을 때부터 북한 정권은 베트남 연구를 많이 해왔다고 얘기했다"면서 "남북 평화 무드 속에 베트남식 개발 모델을 잘 살펴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도록 한국 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중앙아시아 인사들을 포용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통해 국제정치·경제에서 한국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베트남 하노이 부임을 앞둔 김 대사와 서울에서 가진 일문일답.

"15년 전 동맹-자주파 갈등 때 투서 썼다는 건 명백한 오보... 당시 너무 힘들어 반박도 못해"

-본인 신상 얘기를 꺼낼 때 등장하는 동맹파-자주파 갈등 사태를 얘기해달라. 외교부 행태를 투서한 장본인으로 돼 있는데 사실 확인을 해달라.

▷외교부 내에 동맹파, 자주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과거 잘못된 협상 내용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했던 나와 조약국 내 외교관 등 4명과의 갈등이 있었을 뿐이다. 사안의 본질은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상 과정에서 나온 외교부 내 협상 주체 세력이던 북미국의 기망, 왜곡 행위와 관련돼 있다. 해당 기망 사실은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 조사에서 다 드러났다. 현 세월호 조사위원장이자 국가훈장 추서자인 이석태 변호사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직접 조사했었다. 결론은 내가 지적한 문제점들을 인용해 협상이 실패했다고 나왔다. 당시 조사받으며 내가 한 발언은 인터넷에서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그때 했던 비판적인 발언들을 '투서'한 것이라고 언론은 오도하고 있다.



-용산기지 이전 협상은 뭐가 문제였나. 청와대나 국민이 납득하기 힘든 점이 있었나.

▷당시 미국은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문제는 단순히 기지 하나를 이전하는 차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국제관계 대전략 변화의 일환이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평택을 육해공군 복합기지로 만들어 대중국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했다. 소위 자주파는 이러한 미국의 대중국 억제전략을 알아차렸고, 용산기지 이전은 우리보다 미국이 더 절실한 만큼 우리가 레버리지를 갖고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은 주한미군 병사들을 아프간과 이라크에 보낼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채택하고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난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주장한다면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기여하는 것인 만큼 미국측 부담도 주장했지만 묵살당했다. 당시 동맹파, 아니 부실 협상파들은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죄다 들어줘야 한다면서 서로 엇나갔다.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얼마나 돈이 들든지 추진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문제는 정치적 합의가 있어야 하고, 국회 동의도 필요한데 동맹파는 미국과 실질적인 협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이 용산기지 이전을 핑계로 미군 철수를 선언할까봐 겁을 먹었다. 우리는 이전 비용을 7대3 정도로 해서 3은 미국이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맞섰다.

또 다른 문제는 이전 비용 규모가 협상 과정에서 크게 불어났다는 것이다. 미군은 하사관급도 40평이나 되는 집에 살게 하는 등 방만한 예산안을 세웠다. 기재부 예산실은 협상을 어떻게 했길래 우리가 일방적으로 부담을 다 하느냐며 지금도 불만을 털어놓는다. 특히 용산기지 이전에 따른 환경 치유를 위한 재원에 대해 미군은 자기들이 부담한다고 보도자료까지 냈지만 속임수였다. 미 국방부 기준으로는 길을 지나가다가 쓰러지는 정도가 돼야 자신들이 내는 것이고, 거기에 이르지 않으면 100% 우리가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행인이 길에서 환경오염으로 쓰러질 만한 상황이 쉽게 발생하겠는가. 미국이 우리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묵살당했고, 반발 기류가 커지자 조사가 진행됐던 것이다.

김도현 신임 베트남 대사 / 사진=한주형 기자
▲ 김도현 신임 베트남 대사 / 사진=한주형 기자

-투서라는 실체가 없는데도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보도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후 본인은 외교부에서 어떠했나.

▷내가 속했던 북미 3과에서 과장과 서기관 사이가 좋지 않은 가운데 조사 시 내가 진술한 내용이 외교부에 불리한 것이 되자 투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이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공직기강실 조사에서 답변한 것이지 청와대에 문건을 건네는 등의 투서를 한 것이 아니다. 조사받고 3개월 후 이라크로 좌천된 뒤 '투서' 행위를 했다고 언론에 나왔지만 한국에 돌아와 해명할 기회가 없었다.

당시 상황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반박할 의지조차 없었다. 당시 가족과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잘나가던 북미국 직원이 전쟁터인 이라크로 갔을 때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이후 난 러시아,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로 다니면서 예전처럼 미국 문제를 다룰 기회는 사라졌다. 심지어 내가 우크라이나 있을 때 외교부는 나를 자원외교를 명분으로 아프리카 수단으로 보내려 했다. 그러나 아내의 친구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딸이었는데 그가 나서서 도와주는 바람에 수단 발령이 취소됐다. 이번 베트남 대사 발탁은 올바른 외부 목소리를 듣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이자 개인적으론 그동안 받은 박해에 대한 명예회복이라고 본다.

"당시 외교부 북미국 직원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인격모독적 발언 일삼아"

-당시 외교부 내에서 청와대의 대미 정책을 반대하는 기류가 강했다던데.

▷담당 과장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했다. 대통령이 아무것도 모르고, 영어도 못한다고 무시했다. 반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멋있고, 네오콘이 벌이는 전쟁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그들은 외교부 내 조약과에도 협의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 일을 조용히 추진하려면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고, 법률가적인 지엽주의는 경계해야 한다며 조약과의 개입을 거부했다. 하지만 난 조약과에 협상 정보를 주면서 논리적으로 따져보라고 권고했다. 공직자가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공직자가 외교정책, 대북정책과 관련해 대통령에 대해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할 일이 아니다. 관료는 국가수반을 비판하면 안 된다. 그러려면 스스로 정치인이 되는 게 낫다. 시장경제가 신앙이 아니듯 한미동맹 역시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공직자들에겐 오직 국익만이 신앙일 뿐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외교부 역할은 어땠다고 보나.

▷외교부는 더 이상 동맹파와 자주파로 나뉘어 있지 않다. 외교관은 오직 국익파만이 있을 뿐이다. 바람직한 한미동맹은 우리가 현명하게 처신하면서도 미국 입장을 100% 따르는 게 아니다. 건전한 비판과 지적도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대다수 외교부 인사들은 미국한테 잘 보여야 출세한다거나 미국에 찍히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번에 남북정상회담이 잘된 것은 친미적인 외교관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문재인정부가 "우리는 전쟁이 싫다. 북한과 협상하고 싶다"는 얘기를 미국에 분명하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예전 동맹파 같았으면 미국 비위를 거스를 만한 이런 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소위 자주파라는 깨인 외교관들의 인식이 있어서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본다. 어쩌면 기존 관성대로 따라갔으면 한반도에 전쟁이 났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반도가 시리아처럼 전쟁터가 됐을지도 모른다.

"외교에는 오직 국익파만 가능... 건전한 한미동맹 위해선 무조건 추종 아닌 비판도 있어야"

-향후 한미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지금까지는 현상유지적인 남북관계를 추종하지만 이제는 좀 더 창의적인 리더십으로 결과를 낼 필요가 있고, 지금 그런 진행이 이뤄지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큰 위험은 해당 이슈에 대해 서로 무관심한 것이다. 유고 내전이 장기화된 것도 국제사회의 무관심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도 최근까지 흥미를 끌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과주의적 리더십 때문이라고 본다. 트럼프의 성과를 내려는 비즈니스적 경향은 어쩌면 남북문제 해결에서는 축복이다. 기존의 제도와 관성을 파괴하는 대통령이 미국에 등장한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고,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대사 신임장 수여식에서 김도현 주 베트남 대사(왼쪽)에게 신임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대사 신임장 수여식에서 김도현 주 베트남 대사(왼쪽)에게 신임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베트남 대사로 발탁된 배경은 뭔가.

▷신남방정책을 하려면 기업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은 경제 이슈가 많다. 경제와 외교를 다 알아야 한다. 삼성전자(상무)에 있으면서 베트남에 대한 글로벌 협력사업과 사회공헌, 그리고 지속가능경영 등 3가지 업무를 하다가 무선사업부로 갔다. 2016년 말 신종균 전임 대표이사와 함께 모스크바에 출장가서 '유로셋'이라는 러시아 유통업체와의 1년6개월을 끈 분쟁을 해결했다. 성과가 좋은 평가를 받아 무선사업부로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교관과 기업 경험들, 그리고 삼성전자에서 베트남, 러시아 사업을 하며 이뤄낸 성과들이 대사 발탁에 반영된 것 같다.

"북한의 베트남식 개방 도울 것... 베트남과 한국 더 가까워져야"

-베트남에 가서 대사로서 하려는 일은 무엇인가.

▷러시아와 베트남, 남북한 간에 전략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베트남의 지정학적 가치를 적극 살려야 하고, 베트남과 친밀한 러시아를 활용해야 한다. 러시아와 베트남은 서로 좋은 관계인 만큼 이를 레버리지로 해서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배울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더 이상 단일민족주의를 고집할 처지가 아니다. 인구 감소에 직면에 있다. 독일은 난민을 받아 인구를 키우고 그것을 제조업 발전에 활용한다. 동남아에서 우리와 가장 문화적으로 유사하고 근면한 국민성을 가진 나라가 베트남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공부하고 일하게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베트남에 더 진출할 수 있고 우리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베트남 정부는 한국어를 베트남 초등학교의 공식 외국어로 도입하려고 한다.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와 같은 위치를 갖는 것이다. 많은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어를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베트남은 가장 상호의존성이 높은 우리의 경제영토가 될 수 있다. 양국 관계의 미래를 위한 엄청난 투자다. 주한 베트남 대사와 나는 이를 꼭 실현하기로 약속했다.

또 하나는 대사관이 현지 우리 업체들의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활동을 엮어주는 플랫폼 역할을 강화할 것이다. 기업마다 흩어진 CSR 활동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 한국의 국가적 이미지를 높이도록 하겠다. 이 밖에 한국인과 결혼했다가 애를 데리고 베트남에 오는 여인들이 많은데 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겠다. 그 자녀들은 한국민이다. 이 아이들은 베트남 국적이 없어 학교도 못 가고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방치되고 있다. 이들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고 생활을 돕는 일을 우리 기업들과 힘을 합쳐 해낼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베트남과의 협력은 어떤가.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현지 관리자를 베트남인으로 고용해 현지화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능력 있는 베트남 직원을 한국에서 더 많이 일하게 해야 한다. 베트남 정부가 소재·부품 기업들과 스타트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 기업이 한국기업이 아니라 베트남 기업으로 인식돼서 투자 리스크가 줄어드는 것이다. 난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진출 기업이 만든 제품을 더 애용하도록 유도하는 국민브랜드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다. 베트남 정부를 설득해 국산품 애용운동으로 전개하도록 할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 일본, 베트남이 중형 여객기 컨소시엄을 만들어 공동생산을 시도해볼 수 있다. 삼국이 합치면 유럽연합(EU) 정도의 시장이 만들어져 에어버스(Airbus) 식으로 역내 판매가 가능하다. 일본이 단독으로 이를 하려다 실패했는데 삼국이 다국적 어프로치를 하면 추진해볼 수 있다. 한국이 전자부문, 일본이 엔진, 베트남이 동체 조립을 맡는 것이다.

끝으로 하나 지적할 점은 한국 기업들이 주재국의 노동과 인권 상황에 맞게 체질 개선이 필요하지만 과도한 요구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국제환경 NGO 네트워크인 아이펜(IPEN)이 삼성의 환경과 노동 문제를 비판한다. 삼성전자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환경과 인권 문제를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꼭 삼성 출신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아이펜 보고서 일부는 팩트가 맞지 않는다. 삼성 등 대기업들은 리소스가 많으니 환경, 노동 사안을 앞으로 잘 개선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을 여과 없이 적용하면 베트남에 나가 있는 우리 중소기업들은 한계 상황에 내몰린다. 국익 관점에서 균형 있게 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노동이나 인권 이슈는 주재국의 주권 사항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높은 기준에만 맞춰 해외에 나간 한국 기업들을 공격하면 대한민국 국익을 위한 체계적인 신남방정책은 힘들어진다.

[김병호 기자]

*이 인터뷰는 매일경제신문 5월 7일자 A29면 기사의 전문입니다.



■김병호 기자는

매일경제신문 사회부 중소기업부 산업부 경제부 증권부 국제부를 거쳐 현재 유통경제부 수석차장으로 있다. 연합뉴스 모스크바 주재 특파원(2004∼2007년)을 지냈고, 2016년 8월부터 1년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소재 키맵(KIMEP)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지난해 10월 중앙아시아, 캅카스, 동유럽, 발칸반도 등 국내에 생소한 지역 국가들을 답사하며 쓴 '유럽변방으로 가는 길'에서 남북통일 후 인구 8000만 명의 터키나 이란처럼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지역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를 나와 한국외대에서 러시아 대외정책으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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