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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결혼적령기와 공공연해진 혼전동거

  • 장혜원
  • 입력 : 2018.06.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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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몰랐던 북한-25] 북한에는 '남자들은 나이 들수록 금값이지만, 여자들은 어릴수록 금값'이라는 속설이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결혼 적령기는 여자 23~25세, 남자 27~30세 정도였다. 적령기 여성들은 25세가 되면 '결혼 언제 하느냐'는 질문을 받기 시작하다가 27세가 지나가면 슬슬 노처녀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25세 전에 출산을 해야 건강에도 좋고 노화도 늦출 수 있다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결혼을 하라고 주변에서 성화다.

그러나 최근 결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결혼 적령기도 높아졌다. 여자는 20대 후반, 남자는 30대 초중반이다. 남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의 긴 군복무 기간이 결혼을 늦추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간혹 몇 년 동안만 짧게 군복무를 한 후 대학으로 가는 제대 군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10년을 채우는 복무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제대 군인들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30대 초중반이 된다. 이 나이에 번듯한 직업까지 갖고 있다면 그야말로 '금값'이 된다.

하지만 이 얘기도 점점 현실과 달라지고 있다. 결혼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면서다. 신붓감을 고르는 기준도 나이보다는 경제적인 능력이나 재산의 유무에 더 가중치가 주어진다. 결혼 자체도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다. 혼전 동거도 공공연해졌는데, 특히 평양 등지에서 혼전 동거하는 커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평생 같이 살 사람인데 성격이 어떤지, 생활방식은 나와 맞는지 살아 봐야 알지 않겠나? 더욱이 평양에서 이혼하면 지방으로 쫓겨 가'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한다. 지난해 평양 인구 축소 방침이 떨어지면서 대상자 명단에 이혼자들도 포함됐다고 한다.

평양의 인구 축소는 몇 년에 한 번씩 이뤄지는 정기 행사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평양시민이 가진 특권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 평양시 인구는 자연적 증가보다 훨씬 많이 늘어난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평양시민권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평양의 인구 축소 대상에는 대체로 지방연고자(지방에서 태어난 사람), 정치범 가족, 전과자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 이혼자가 추가됐다. 워낙 이혼이 힘든 사회 시스템인데 이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독립해서 사는 세대(가구)도 늘고 있다고 한다. 남자들은 여전히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지만, 여성의 경우 출세에 관심 있고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면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면서 결혼 적령기를 넘긴 사람들이나 혼전 동거하는 커플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관대한 편이 됐다고 한다.

다만 공동체 의식의 약화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초당성'으로 폄하하는 수단이 되기에,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 당성은 당원들(조선노동당)이 지녀야 할 사상·정신적 풍모다. 여기에 '초'가 붙으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사람이나 현상을 과대평가하는 부정적인 단어가 된다.

늦어지는 결혼 적령기와 혼전 동거에 대해 관대해진 시선,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 등은 대한민국 사회의 이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북한의 변화는 2010년대에 들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고 개인의 삶이 강조되는 양상의 확산이 무척 빠르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슬로건은 북한이 시종일관 주장해 온 공동체 생활의 원칙이다. 우리 마을-우리 초소(군부대와 주둔지역 주민들의 군민관계 캠페인), 우리 학교, 우리 공장, 우리 인민반 등 모든 북한 주민들은 우리로 대변되는 공동체에 소속돼 집단에 대한 헌신과 애정을 쏟아붓도록 장려하는 삶을 살아왔다. 부모 없는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부부, 영예군인(상이군인)을 찾아가 스스로 아내 되기를 자처한 처녀, 훈련 중 잘못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전우들을 구하고 숨진 군인들을 모범으로 내세우면서 행복한 내 나라, 사회주의 대가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 주민들은 가족 해체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길들여져 수동적인 경제생활에 익숙해 있던 많은 사람이 급작스럽게 닥쳤던 일명 미공급시대(1990년대 초중반 식량공급체계가 마비되면서 수십만의 아사자가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에 부모와 자식을 잃었다. 당시에 북한이라는 국가는 무능했고, 가족 구성원들은 생존을 위해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 공동체'보다 '내 가족' '나'가 먼저였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사회로 변한 북한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

북한 당국은 여전히 집단주의와 헌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도 보장해주지 못하면서 일방적인 충성만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최근 북한은 '어머님'의 호칭을 '여사'로 바꿨고, 전용기를 이용하는 등 정상국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외적인 변화보다는 자국민들이 최소한 월급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시스템을 만들거나, 기존의 식량공급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장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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