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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가전의 중심, 냉장고·세탁기·TV가 아닌 변압기인 이유

  • 장혜원
  • 입력 : 2018.07.0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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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로그 사진 캡처 (CD플레이어와 변압기)
▲ 출처=블로그 사진 캡처 (CD플레이어와 변압기)
[우리가 몰랐던 북한-27] 삶에서 식생활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현대인 식생활에서 냉장고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유명인의 냉장고를 공개하는 프로그램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데, 24시간 켜놓고 쓰는 냉장고는 가전제품 중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따지면 단연 으뜸이다. 가끔 자녀 교육을 위해 일부러 TV를 보지 않는 가정은 있어도, 냉장고가 없는 가정은 보기 힘들다. 더욱이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날에 냉장고가 주는 혜택은 너무 많아 헤아리기가 힘들다. 음식을 상하지 않도록 보관하는 것은 기본이고, 살얼음이 살포시 껴 있는 육수를 꺼내 냉면이나 오이냉국을 만들어 먹을 때의 기분은 그야말로 소확행이다.

이즈음 북한의 날씨는 24~27도 정도다. 한국보다는 다소 선선하지만 체감온도는 에어컨이 설치돼 있는 가정이나 회사가 별로 없기 때문에 훨씬 높다. 선풍기로 더위를 달래 보지만 27도만 넘어가면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 이마저도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전기 못지않게 중요한 가전제품이 있는데 바로 변압기다. 한국에서도 간혹 변압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일본 등 외국 제품을 국내에서 사용하거나 반대로 한국 제품을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경우 변압기를 사용한다. 북한 주민이 변압기를 사용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까?

평양의 한 가정집을 들여다보자. TV는 '삼일포'라는 브랜드를 달고 있는 액정TV로 북한 제품이라고는 하지만 속을 채우고 있는 부속은 거의 중국산이다. 그래도 삼일포는 액정화면 사이즈가 17인치부터 52인치까지 크기와 가격이 다양한 브랜드에 속한다. TV 아래쪽에는 녹화기로 불리는 CD플레이어가 있는데 이 역시 북한의 '하나'라는 브랜드를 달고 겉보기에만 북한 제품인 중국산이다. 냉동기(냉장고의 북한어), 세탁기, 극동기(냉동만 가능한 제품) 등 집 안의 모든 가전제품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북한과 똑같은 전압을 쓰는 이웃 나라 중국 제품이니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것을 사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가전제품이 변압기다. 전기가 들어와도 전압이 보장되지 않으니 각 가정에 가정용 변압기가 필수로 있어야 한다. 보통 150~170V의 전압이 들어오는데, 심한 경우엔 100V 이하로 떨어질 때도 있다고 한다. 지방에서는 워낙 전기 사정이 더 어렵다 보니 어쩌다 전기가 들어오면 저마다 전압을 올린다. 이로 인해 과부하가 발생해 변전소에 불꽃이 튀면 주변은 다시 암흑세계에 잠긴다. 전력설비가 견디지 못해 손상되고, 수리와 보수에 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 씁쓸한 현실이다.

변변찮은 변압기를 사용하다 가전제품을 망가뜨리는 것은 부지기수다. 비싸더라도 좋은 변압기를 쓸 수밖에 없다. 일정 기준에 못 미치는 전류가 들어오면 아예 차단하거나 220V를 110V로 변환해주는 등 변압기의 기능도 다양하다. 북한의 강원도는 일본과 중고무역이 활발했던 지역이기에 일본산 중고 가전제품을 쓰는 가정이 많다. 그런데 전압의 변동이 심해 변압기가 없으면 TV 한 대를 태워 먹는 건 일도 아니다.

기능과 사양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좋은 변압기는 웬만한 세탁기보다 더 비싸다. 중국산 세탁기는 보통 30~50달러에 살 수 있는데, 조립 변압기는 최소 80달러는 줘야 살 수 있다고 한다. 조립 변압기는 개인이 직접 만든 변압기다. 시중에 판매되는 중국산 자동변압기는 최소전압이 120V는 돼야 필요한 전압만큼 끌어올릴 수 있는데 5㎾짜리 조립변압기는 100V 이하의 전압도 무리 없이 끌어올려준다. 좋은 변압기를 쓸수록 전기를 안정적으로 끌어 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가정에서는 냉장고가 아닌 변압기가 가전제품의 중심이 된다.

연구에 의하면 북한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한국의 6.7% 수준(2016년 기준)이다. 24시간 전기가 필요한 냉장고를 부탁하기엔 무리가 있다. 자력갱생이 몸에 밴 주민들은 태양광패널을 설치하거나 대용량 배터리(축전지) 등으로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충당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언제쯤이면 북한 주민들이 전기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될까.

[장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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