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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농촌마을서 180명 박사 배출 '춘천 서면의 비밀'

  • 이상헌
  • 입력 : 2018.07.0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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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10월 마을 입구에 세워진 '박사마을 선양탑'. <사진 제공=춘천 박사마을>
[전국구 와글와글-56]강원 춘천시 서면은 '박사마을'로 통한다. 작고 평범한 농촌마을이지만 현재까지 무려 180명의 박사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전북 임실군 삼계면 박사골,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과 함께 3대 박사마을로 꼽힌다. 1968년 미국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딴 송병덕 씨가 서면 출신 박사 1호다. 유엔총희 의장을 역임한 한승수 전 국무총리도 서면 3호 박사로 유명하다. 홍소자 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도 서면 31호 박사로 잘 알려져 있다.

서면이 박사마을로 전국에 알려지면서 주민 등은 1999년 10월 마을 입구에 '박사마을 선양탑'을 세웠다. 높이 4m의 선양탑 상단은 박사의 상징인 박사모로 조각했다. 선양탑엔 박사학위를 취득한 순서대로 성명과 연도, 학위 수여 대학, 전공, 출신지 등의 정보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마을 출신 박사들은 '백운회'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한다. 백운회는 매년 총회를 통해 고향인 서면에 모여 포럼 등을 열고 있다. 또 후배 양성을 위한 장학사업과 멘토링, 특강, 진로지도, 현장 견학, 글짓기 대회 등 다각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곳 서면에서 유독 박사가 많이 배출된 이유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 우선 부모들의 교육열이 꼽힌다. 이곳 주민들은 1970년대만 해도 다리가 놓이지 않아 배를 타고 북한강을 건너야 시내로 나갈 수 있었다. 부모들은 배를 타고 강 건너 시장에 농산물을 내다 팔며 교육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당시 상황은 선양탑에 그대로 담겨 있다. 선양탑엔 '학자금 마련을 위해 어머니들은 산나물과 채소를 광주리에 이고 내다 파느라 하루해가 짧았고, 아버지들은 원예작물 재배에 힘써 뒷바라지하기를 낙으로 삼으니 앞집, 뒷집, 이 동네 저 마을에서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가 많이 배출됐으며 그 전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용하 박사정보화마을 관리자는 "과거 서면은 굉장히 못사는 동네였지만 학구열만큼은 뒤처지지 않았다"며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정이 지금의 박사마을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이 '명당'이라는 분석도 있다. 마을 뒤편에 가덕산과, 북배산, 계관산 등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솟아 있고 정면에는 시원하게 펼쳐진 의암호가 자리했다. 이 같은 산세는 귀인과 문장가를 상징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곳은 고려시대 충신 신숭겸 장군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스키장 슬로프처럼 길게 정돈된 신숭겸 장군 묘다. 우리나라 8대 명당 중 하나로 불리는 신숭겸 장군 묘는 고려 태조 왕건이 자신의 묘를 쓰기 위해 점지해 놓은 최고의 명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목숨이 위태롭게 된 자신을 대신해 전사한 신숭겸 장군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이곳을 내주었다고 전해진다.

서면 박사마을은 '교육 성지'로 불리며 마을 정기를 받기 위한 학부모들과 수많은 풍수지리 연구자들이 다녀갔다. 지금도 박사마을은 관광객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마을에선 매년 2월 부녀회 주관으로 장 담그기 체험행사를 연다. 마을에서 생산된 콩과 고추를 구입해 직접 장을 담그고 1년간 보관도 해준다. 매년 행사엔 300~400명의 체험객이 찾는다. 마을에선 수요를 고려해 2회로 체험 행사를 확대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신숭겸 장군 묘를 비롯해 애니메이션박물관, 삼악산 등 주변 볼거리도 많아 숨은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한 해 동안 2000여 명의 관광객이 마을을 찾았다.

춘천/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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