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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북한에 두고온 동생도 같이 보고 있다니

  • 장혜원
  • 입력 : 2018.07.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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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북한-30] 얼마 전 북한에 있는 가족과 통화하던 탈북민 영미 씨(30대·가명)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인 동생이 보고 있다는 한국 드라마가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동생이 보고 있다고 열거하는 일부 드라마의 제목은 생소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하나같이 최근 종영됐거나 방영 중인 드라마였다. 한국에 사는 영미 씨보다 북한에 살고 있는 동생이 더 많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방송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는 경로다. 예전에는 중국을 통해 영상물이 담긴 CD를 밀수해 복사했는데, 지금은 중국 와이파이를 이용해 직접 다운로드할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힘들게 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혜산, 신의주와 같은 국경지역에는 중국 와이파이가 잡히는데, 중국에서 비밀번호를 받아 직접 이용 가능하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중국 영화 사이트를 통해 매일 업데이트되는 영상 콘텐츠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영상물을 저장하는 매체도 CD에서 USB로 바뀌었다. USB는 크기도 작고 용량에 따라 많은 영상물을 저장할 수 있으므로 여러모로 유리하다. 감추거나 보관하기 좋고, 유통에도 편리하다. 보통 한국의 영상 콘텐츠는 다른 나라의 것보다 인기가 높다. 한류의 영향도 있지만, 번역 없이 바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는 편당 8~10위안, 드라마는 편당 5위안 정도에 거래된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는 편당 10위안인데 인기도에 따라 종영된 드라마도 같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노래도 유통되는데 15곡씩 묶어 12위안이다. 잘 알아들을 수 있고 따라 부르기 쉬운 최신 가요에 대한 수요가 높지만, 10대나 20대 속에서는 가끔 랩이나 아이돌 음악들을 찾는 이도 있다. 가사를 다 이해하진 못해도 멜로디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영상 콘텐츠들을 이용하는 사용자도 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휴대폰의 메모리 용량이 스마트폰 가격에 큰 영향을 줬다. 16GB의 스마트폰은 보통 200~300달러 정도, 32GB의 스마트폰은 500~600달러에 거래된다.

와이파이를 이용하거나 USB, 혹은 스마트폰을 쓴다고 보위원이나 기타 감시기관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불시에 의심스러운 사람의 스마트폰을 검열하거나 유통 경로를 추적하는 방법으로 유포자를 색출해내기도 한다. 국가의 공식 매체와 유통 경로를 거치지 않은 외국 문화콘텐츠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퍼뜨리는 불순분자라고 엄중히 처벌한다. 특히 한국이나 자본주의 국가들의 문화콘텐츠에 대해서는 더욱 민감하다.

그러나 북한에 한류의 붐이 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통제와 감시가 강해질수록 이를 피하려는 사람들의 행동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다. 주요 소비층이 대학생과 같은 젊은 층이고, 유통 경로도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돼 있어 단속도 쉽지 않다고 한다. 설령 보안기관 일꾼에게 들키게 돼도 바로 뇌물을 찔러주면 대부분 무사히 넘어간다. 뇌물의 액수는 통상 300~500달러다.

기술의 발전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과학과 기술에 대한 북한 당국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2016년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주의 경제강국 건설에서 과학기술과 첨단기술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뒤처진 북한의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바로 과학기술의 발전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의 발전은 당국이 의도한 이점만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북한의 지식인들은 자체 안테나를 만들어 외부 소식을 접하고, 숨김폴더 등을 이용해 메모리의 내용물을 보호하기도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감시와 통제의 손길도 섬세해져야 했고, 그만큼 비용도 증가했다.

북한에서 TV와 라디오는 몇 개의 정해진 채널만 이용할 수 있고 나머지는 물리적으로 봉인돼 있다. 자연스럽게 잡힐 수 있는 외부 주파수를 차단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TV나 라디오의 채널은 통제할 수 있어도 외부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갈망은 억제하기 어렵다. 북한 역사 교과서에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룬다. 지금의 북한 정치와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외부 영화나 드라마 몇 편을 본다고 위태로워질 나라라면 과연 제대로 된 나라인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장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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