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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노와 질책' 채찍 꺼내든 김정은 시대 통치전략

  • 장혜원
  • 입력 : 2018.07.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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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강원도 송도원종합식료공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강원도 송도원종합식료공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우리가 몰랐던 북한-32] '죄는 천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방도시를 시찰하면서 일꾼들을 질타하는 모습은 선대 수령들과 사뭇 다르다. 17년이 되도록 완공되지 못한 댐 건설의 실태, 발전소 공사에 대한 일꾼들의 무책임성을 숫자까지 곁들어 신랄하게 비판하는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보며 북한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능하고 관료주의적인 일꾼들이 추궁을 듣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불만이 없다. 그렇다고 마냥 속 시원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왜냐면 그 불똥은 주민들에게 튀기 때문이다.

내각 일꾼들이 있는 설비와 자재를 일부러 보장해주지 않은 것도 아니고, 지방 책임일꾼들이 부족한 연유(건설장비에 쓰일 기름)를 마련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들이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권력을 무기로 개인 잇속을 챙기고는 있지만, 북한의 전반적인 경제 침체가 이것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북한 주민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최고지도자가 내놓은 해결 방도라는 것도 결국 당 조직과 당원들을 총동원하여 그들의 충정과 애국적 열의로 공사를 완성하라는 것이다.

북한의 수력발전소 건설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언급했듯이 17년 전, 아니 그 이전부터 신경 써온 사업이다.

북한의 관영매체에서 언급된 함경북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시·도·군 단위로 수력발전소와 염소목장을 만드는 것은 지방의 전력 문제와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과제였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발전소의 댐은 돈으로 쌓고 물은 술로 채운다는 속설이 있다. 질책받는 것은 일꾼들이지만, 방침 혹은 말씀 관철을 위해 돈을 내고, 노력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평범한 북한 주민들이다.

그나마 김정일 시대에는 실속 없는 발전소라도 완공을 해놓고, 주변 개인 농가에서 키우는 염소들을 모아 임시 목장을 만들어 놓고도 '장군님께 기쁨 드리는 사업'으로 대충 얼버무려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는 이런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가차 없이 일꾼들을 처벌하고 인민생활을 강조하며 거짓 보고를 용납하지 않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 시대에는 주로 '기쁨과 만족'이라는 당근으로 일꾼들을 다뤘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격노와 질책'이라는 채찍을 꺼내든 모습이다. 이 채찍은 내각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군부에서도 살벌한 분위기에 한껏 움츠러든 모양새다.

얼마 전 북한군 총정치국 회의실에서는 109연합검열총화(평가보고)가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109연합검열대는 2009년 10월 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침으로 만들어진 조직으로, 주요 임무는 한국영상물 소지자 색출이다.

이번 검열총화에서 '군복을 벗은 군관'(처벌로 제대되는 군관들을 이르는 말)만 수십 명이 된다고 한다. 검열은 북한군 안 전체 현역 군인들, 군부대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주간 및 야간 숙박 검열, 신고 및 자진 신고의 방법으로 진행됐다. 결과에 따르면 군단(軍團)별로 평균 100건 이상의 불법행위들이 적발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현역 군인 비율이 전체 건수의 50%, 군부대 노동자가 25%, 군인 가족 25% 수준이라고 한다.

이 중 죄질이 나쁘다고 평가된 수십 명의 군관이 처벌 대상이 됐다. 특히 총화에서 심각하게 대두된 문제는 한국영상물의 시청, 뇌물 행위, 남성 군관들의 여자문제(성폭력문제)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북한군 안에 만연해 있는 고질적인 문제로 매년 반복되고 있다. 전면에 드러내고 칼을 빼 들었다는 것은 더 이상 이와 같은 행위들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당국의 의지로 풀이된다.

당근 정책이 형식주의와 요령주의를 양산했다면, 채찍 정책은 초당성(당에 대한 과한 충성으로 주변 사람이나 현상들을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 부정적인 경향)과 불신을 낳는다. 형식주의와 요령주의가 일꾼들의 부정부패와 사리사욕에 머물렀다면, 초당성과 불신은 주민들에 대한 강도 높은 약탈과 동지들 사이의 모함을 낳는다. 부정부패와 사리사욕이 사회를 병들고 지치게 만든다면, 약탈과 모함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파멸시킬 수도 있다.

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인민들의 생활을 걱정하며 분노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통해 민심을 얻고 싶은 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이라면, 다소 우려스럽다. 언제 처벌받을까 두려운 일꾼들, 가중되는 주민들의 경제적 부담, 지금과 같은 국면이라면 사실상 경제 회복이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 뒤숭숭한 민심…. 근본적인 국가 전략을 재정립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채찍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장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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