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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한꺼번에 내라니" 조선업 협력업체, 악덕 체납자로 전락하나

  • 서대현
  • 입력 : 2018.08.0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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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전경. /사진=현대중공업
▲ 현대중공업 전경. /사진=현대중공업
[전국구 와글와글-61] 정부의 조선업 위기 극복 대책 중 하나인 4대 보험 납부 유예 혜택을 받은 조선업 협력업체들이 악덕 체납자로 전락할 신세에 처했다. 울산시와 조선업계 등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은 4대 보험 납부 유예 기간이 올해 말까지 연장됐음에도 국민연금공단이 올해 초 납부 유예 금액을 일시 상환하라고 통보하면서 불거졌다.

업체들은 조선업 불황 장기화로 경영난이 심각한 가운데 수억~십수억 원을 한꺼번에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체납한 국민연금을 낼 돈이 없어 폐업했고, 업체 대표 중에는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못해 횡령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은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가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못하거나 폐업해 국민연금 수령에 불이익을 받게 되는 현장 근로자들도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 실시한 4대 보험 납부 유예 정책의 부작용이 심각한 실정이지만 정부가 대책 마련에 미적대고 있다는 지적이 정치권, 산업 현장, 노동계에서 잇따르고 있다.

◆4대 보험 납부 유예 정책 왜 시끄럽나

정부는 2016년 7월 조선업을 고용위기업종으로 지정하면서 위기를 겪는 조선 협력업체의 4대 보험료 납부를 유예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조선업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 협력업체의 경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2016년 11월부터 4대 보험 납부를 유예했다. 4대 보험 납부 유예 정책은 지난해 조선업의 고용위기업종 지정 기간이 1년 더 연장되면서 올해 말까지 예정됐다.

그런데 4대 보험 중 국민연금공단이 올해 초 그동안 내지 않은 국민연금을 한꺼번에 내라고 독촉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업체들이 납부 금액이 너무 부담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업체들이 부담해야 하는 체납액은 일반적으로 근로자 100명 기준 연간 3억~4억원이다. 많게는 14억~15억원에 달하는 업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도급의 일감 부족 여파로 겨우 회사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라는 게 업체들 주장이다.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는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절반 정도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4대 보험 납부를 기업들이 유예 해달라고 했나. 정부가 하라고 해서 했는데 이제 와서 아무런 대책 없이 한꺼번에 내라고 하면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국민연금공단을 비난할 수도 없다. 업체들이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할 국민연금을 내지 않은 채 폐업을 하거나 납부 유예 기간이 종료된 뒤 정상적으로 납부하지 못하면 퇴직자 등 연금 수급 대상자가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배포한 자료의 4대 보험 납부 유예 현황에 따르면 2017년 9월 기준 4대 보험 납부 유예 업체는 평균 2356개, 납부 유예액은 1104억원에 달했다. 문제는 이들 사업장 중 평균 891개 업체가 4대 보험을 체납한 후 폐업했고, 청산되지 않은 체납금은 평균 264억원이었다. 이 중 국민연금 수급과 직접 관련 있는 연금보험은 폐업 업체가 911개(체납금 91억원)로 가장 많았다. 건강보험은 903개, 고용보험 862개, 산재보험은 888개 업체가 폐업했다. 연금보험은 업체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근로자에게 직접적 피해가 갈 것으로 예상돼 노동계의 우려가 컸다.

◆은행 대출마저 막힌 조선업 협력업체

국민연금을 일시 상환하지 못해 범법자가 될 위기에 몰린 업체들은 은행 문을 두드렸으나 대출은 사실상 막혀 있는 실정이다. 일부 시중 은행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보증서만 있으면 언제든지 대출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국민연금 체납 업체는 보증서를 받기도 힘들다.

정부와 지자체는 조선업 살리기 대책으로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지역 신용보증재단 등을 통해 조선 관련 업체의 은행 대출을 보증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들은 기관이 손실을 보지 않는 선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보증서를 발급해주고 있다고 조선업계는 주장한다. 기술보증기금에서 준조세 성격인 국민연금을 체납한 업체가 보증서를 받으려면 '신용도 유예 기업'으로 분류돼 심사받아야 하는데 보증 지원이 매우 까다롭다.

현재 조선업계는 정부에 4대 보험, 특히 국민연금 체납액에 대한 분할 납부를 추진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무덕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장은 "체납액을 안 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매달 수천만 원씩 갚을 테니 정부가 분할 납부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부 대응은 미온적이라는 지적이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울산 동구)은 지난 2월 4대 보험료 납부 유예 정책의 부작용에 대한 대책 마련을 정부에 요구했으나 조선업계는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울산 지역 산업계 관계자는 "여러 라인을 통해 정부 담당 부서에 고용위기업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달했지만 법과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말만 들었다. 정책을 만들어 놓고 아무도 책임지겠다는 말을 안 한다"고 지적했다.

[울산/서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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