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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쓰기는 안통해... 경쟁 나선 북한 기업들

  • 장혜원
  • 입력 : 2018.10.0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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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사진=평양 사진공동취재단
▲ 평양 /사진=평양 사진공동취재단
[우리가 몰랐던 북한-35] 최근 북한의 대외봉사총국 산하 호텔인 평양호텔, 보통강호텔, 서산호텔, 청년호텔, 해방산호텔 등이 독립채산제로 전환돼 독자경영에 나섰다. 자체 수입으로 경영활동을 보장하는 기관, 기업소(기업)로서 액상계획(금액상으로 제시되는 계획)의 집행은 물론 관리운영과 종업원(직원)들의 생활비(임금)도 자체로 지급해야 하는 기업으로 전환한 것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에서 기업은 성장의 동기가 별로 없기에 원자재를 과소비하거나 투자를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헝가리 경제학자 코르나이(J. Kornai)는 '연성예산제약'이라는 개념으로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는 초기 예산 조건들이 엄격(강성)하게 지켜지지 않고, 사후에 쉽게 조정(연성)되는 것을 말한다. 코르나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이를 설명했다.

아이들은 보통 부모로부터 일정 금액의 용돈을 받아서 쓴다. 용돈 규모에 맞는 적절한 소비를 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뜻하지 않게 과한 소비를 할 때도 있다. 이 경우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가 다음달 용돈을 절약해 갚는 방법도 있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부모에게 '떼'를 쓰는 것이다. 부자지간에도 돈 계산은 엄격해야 한다며 선을 긋는 부모라면 어쩔 수 없지만, 대개 많은 부모는 못 이기는 척하고 용돈을 더 준다. 이것이 반복되면 애초에 정해진 용돈의 규모는 흐지부지돼 버린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 기업들은 예산이라는 제약조건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는다. 예산을 초과해도 중앙정부에 이른바 떼를 잘 쓰면 추가 예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혁신이나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애쓰기보다는 상급기관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뇌물을 바치는 행위가 일상화된다. 이런 악순환으로 기업의 비효율적인 경영방식은 만연해지고, 만성적인 상품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북한의 대외봉사총국이 산하 호텔들에 독자적인 경영권을 부여한 데는 여러 의미가 있다. 우선 연성예산제약에서 강성예산제약으로 전환한 것이다. 독립채산제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북한의 기업경영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독립채산제는 기존의 그것과 다르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강화와 더불어 독립채산제 기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액상계획을 수행해야 한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북한의 기업소법(2015년 개정) 제29조에 명시돼 있는데, 핵심은 기업의 독자성과 자율성 확대다. 따라서 경영자의 책임도 막중해진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경영을 잘해 국가계획과 종업원들의 경제생활을 보장해줘야 한다. 2011년 개정된 북한의 재정법 제38조에는 기업이 기업관리를 잘해 경영손실을 내지 말아야 하며, 경영손실은 자체로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최근 북한에 나타난 변화는 코르나이가 지적했던 이른바 떼를 부리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또 독자적인 경영권을 부여하면 기업이 경쟁하게 된다. 연성예산제약에서는 경영자의 관심이 상급기관에 잘 보이는 데 맞춰지지만, 강성예산제약에서는 철저하게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경영활동에 집중되게 된다. 평양에 호텔이 한두 개가 아닌 만큼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확실한 차별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와 같은 독자경영권의 부여는 결과적으로 중앙기관이 아랫 단위에 책임을 전가하는 격이 됐다. 이는 1960년대 김일성에 의해 제시됐던 대안의 사업체계와 전면 배치되는 지점이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기업에 대한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와 함께 위가 아래를 책임지고 도와주는 경제관리체계다. 1990년대 수많은 아사자를 발생시킨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북한 계획경제의 외피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실패와 수정을 반복하며 오늘날까지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은 경제 재건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남북 경협과 외자 유치에 공을 들였고, 내부적으로는 경제활동 주체들의 동기를 자극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등 비효율적인 경제시스템 정비에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한적이지만 경쟁에 나선 북한 기업들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진다.

[장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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