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비하인드스토리

드라마가 아니라 실화 … 삼양라면 사모님의 성공 스토리

  • 이덕주
  • 입력 : 2018.03.07 15: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우리가 상상하는 재벌가 며느리의 모습 /출처:=SBS
▲ 우리가 상상하는 재벌가 며느리의 모습 /출처:=SBS '결혼의 여신'


[식품야사-7] 여대 음대를 나온 여주(여자주인공)는 한 살 연상인 재벌그룹 후계자와 만나 결혼에 골인합니다. 남편은 보수적이고 유서 깊은 재벌가에서 위로 다섯 명의 누나를 둔 막내아들이면서 쌍둥이였습니다. 결혼과 함께 태어난 첫째 아이가 겨우 다섯살쯤 되었을까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깁니다. IMF 금융위기로 우리나라가 경제가 나빠지면서 남편의 회사가 부도가 난 것입니다. 재벌가 며느리 역할을 하던 여주도 회사에 나가서 무슨 일이든 하며 돕습니다. 그런 며느리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회장님(시아버지)이 어느날 여주에게 덜컥 회사 영업을 맡깁니다. 그런데 여주는 거기서 의외의 소질을 발견하고, 또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매운 볶음면'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회사도 되찾습니다. 여주는 남편과 함께 회사의 공동경영자가 됩니다.

드라마 같다고요? 사실관계에 조금 틀린 점이 있지만 99% 실화입니다. 바로 우리도 익숙한 '삼양라면'과 '불닭볶음면'을 만드는 '삼양식품' 얘기입니다. 꼭 남자 이름 같은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이 이 실화의 여자 주인공입니다. 다행히 이 실화에는 '못난이 남편'과 '출생의 비밀'은 나오지 않습니다. 2008년 먼저 회사를 되찾았고 히트상품인 불닭볶음면이 2012년에 나왔다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김정수 사장의 시아버지인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자는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히트는 보지 못하고 2014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1년 김정수 사장이 딸과 함께 먹어본 매운 찜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출시한 '불닭볶음면'은 2012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후 외국인들이 유튜브를 통해 체험영상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도 '영국남자'로 잘 알려진 유튜브 스타 조쉬가 지인들과 함께 불닭볶음면을 먹고 괴로워하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다른 유튜버들이 불닭볶음면 체험 영상을 올리는 것이 유행이 되면서 불닭볶음면이 전 세계에 알려졌고, 글로벌 히트상품이 되었습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끌면서 2015년 294억원이었던 삼양식품의 라면수출은 2017년에는 2000억원에 육박했습니다. 이에 따라 회사 매출도 3000억원대에서 4600억원으로 뛰었고 주가도 2016년 2만5000원에서 올해 1월에는 한때 10만원까지도 올랐습니다.

삼양식품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라면(정확하게는 인스턴트라면이지만 그냥 라면이라고 하겠습니다)을 만든 회사입니다. 1961년 만들어져 1963년부터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제일생명보험 사장을 지내던 전중윤 전 삼양식품 회장은 일본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접하고 이것이 우리 국민의 굶주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63년 일본 명성식품(묘조식품)의 라면기계 2대를 도입해 한국에서 생산을 시작합니다. 삼양식품에 무상으로 기술을 전수해준 명성식품은 여전히 일본에 있는 회사로 일본 최대 라면회사인 닛신그룹 소속입니다.

하지만 삼양라면은 곧 강력한 경쟁자를 만납니다. 재일동포로 일본에서 큰 돈을 번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인 신춘호 씨가 형의 지원을 받아 1965년 롯데라면을 출시하고 경쟁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격호 회장이 롯데제과로 한국에 진출하기 전 일입니다. '소고기라면' '농심라면' 등을 히트시켰던 롯데라면은 아예 1978년 회사 이름을 농심으로 바꾸고 1983년에는 마침내 삼양라면을 꺾고 시장 1위를 차지합니다. '농심'은 이 1위의 자리를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1965 롯데라면(농심) vs 2010 롯데라면(롯데마트)
▲ 1965 롯데라면(농심) vs 2010 롯데라면(롯데마트)

1위에서 밀린 삼양식품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989년 소위 우지(牛脂)파동이라는 것을 겪습니다. 검찰은 당시 삼양식품 삼립유지 오뚜기식품 등 5개 식품회사가 '공업용 우지'(소고기 기름)를 제품에 사용했다며 회사 대표와 실무자 등 10명을 구속했습니다. 당시 서정호 삼양식품 사장과 함태호 오뚜기식품 대표가 모두 구속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보석금을 내고 금방 풀려났지만 우지를 라면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삼양식품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1997년 8월 삼양식품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공업용 우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검찰에서 무리하게 식품회사들을 기소했기 때문입니다. 김정수 사장이 전중윤 회장의 아들인 전인장 현 삼양식품 회장과 결혼한 것은 우지사태로 회사가 흔들릴 때였습니다. 남편인 전인장 사장도 그때쯤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만 회사의 부도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지사태로 인해 삼양식품이 농심에 라면시장 1위를 빼앗겼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전에 이미 1위를 뺏겼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지사태가 2위인 삼양식품을 재기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1987년 청보식품을 인수해 라면시장에 뛰어든 오뚜기는 지금은 '갓뚜기'로 불리지만 식품업계에서는 예전부터 '파괴자' 혹은 '마당발'로 불립니다. 1969년 만들어져 토마토 케첩 , 카레 등의 히트상품을 가지고 있던 오뚜기는 다른 식품분야에 야금야금 진출했고, 항상 저가 제품을 내놔 기존 회사들을 괴롭혀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을테지만요. 이는 라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한때 1위였던 삼양식품은 1998년에는 오뚜기와 2위를 다투는 지경에까지 오게 됩니다.

우리나라 라면의 원조였던 삼양식품은 1998년 마침내 부도까지 맞게 됩니다. 창업주 일가가 경영은 계속했지만 회사 주인은 은행이었습니다. 은행이 전체 지분의 44%를, 대주주 가문이 7%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주식은 주식시장의 소액주주들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2005년 마침내 회사를 되찾을 기회가 찾아옵니다. 은행 지분 일부를 김정수 사장이 사들여 지분을 늘리고, 현대산업개발이 지분 25%를 매입해 백기사가 되어줍니다. 대주주의 편을 들어주는 우호세력이 됐다는 뜻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 라면회사 닛신에 회사가 팔릴 뻔하는 등 경영권을 위협당하는 일을 몇 차례 겪었고, 2008년이 돼서야 완전히 삼양식품의 경영권이 안정적으로 창업주 일가에게 넘어옵니다. 회사를 되찾아오는 데 10년이 걸린 셈입니다.

현대산업개발이 삼양식품의 백기사가 되어준 것은 두 회사의 창업주 모두 이북이 고향이라는 인연 때문에 서로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2세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전인장 회장도 친한 사이라고 합니다. 현대산업개발이 지킨 '의리'는 엄청난 투자수익률로 돌아왔습니다. 2005년 6000원대에 샀던 주가가 지금은 10만원대에 근접하기 때문입니다.
의리 + 장기투자 = 투자대박
▲ 의리 + 장기투자 = 투자대박


며느리인 김정수 사장은 2005년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기 시작하면서 단지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 이상의 존재가 됩니다. 많은 재벌기업이 회장님의 사모님을 임원으로 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월급만 타가거나, 아니면 마케팅이나 사회공헌 등 특정한 업무만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김정수 사장은 대표이사 바로 아래의 중책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회사 부활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보유한 지분도 결코 남편보다 적은 편이 아닙니다. 이 같은 김정수 사장의 위치는 아마도 시아버지인 전중윤 창업자가 결정한 것일텐데요. 우리나라 재벌가에서 며느리에게 지분을 주고 경영까지 맡기는 일은 아마 처음이고 최초이지 않을까요. 물론 아버지의 결정을 따른 남편 전인장 회장도 높게 평가해야할 것 같습니다.

경영권을 찾아왔지만 삼양식품은 그사이 조그만 회사로 쪼그라듭니다. 2008년 삼양식품의 매출액은 2800억원, 영업이익은 253억원에 불과합니다. 사실 삼양식품은 예전에는 '재벌'이라고 부를 만한 회사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중견기업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라면시장 경쟁자인 농심의 매출액은 2008년 당시 1조6700억원, 영업이익 1011억원. 오뚜기 매출액은 1조2500억원, 영업이익 711억원. 심지어 라면시장 4등인 팔도의 모회사 한국야쿠르트도 매출 1조1523억원, 영업이익 60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모두 삼양식품보다 5배 정도 큰 대기업들입니다. 삼양식품은 투자를 할 여력도 없었지만 회사가 망한 경험으로 인해 무엇이든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김정수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불닭볶음면'의 성공에 대해서 '하늘의 도움'이라고 말했습니다. 치열한 국내 라면시장 경쟁에서는 밀리고 있지만 해외에서 새로운 시장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삼양식품의 부활 스토리에 아름다운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삼양식품은 회사를 되찾아오는 과정에서 '통행세' '페이퍼컴퍼니' '일감몰아주기' 등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삼양식품 3세인 전병우 씨(1994년생)에게 삼양식품의 지분을 물려주는 것이 목적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삼양식품은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26억원의 벌금을 받기도 했고 최근에는 검찰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최종 평가는 '우지파동'에서 보듯이 지금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삼양식품은 왜 이런 방법을 사용했을까요? 상속세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부모가 세상을 떠나서 자식이 기업의 주식을 물려받으면 대개 회사의 주식을 세금으로 냅니다(상속세). 회사 주식을 물려받을 때 높은 상속세를 낼 수 있는 방법은 그 주식을 파는 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 보유한 지분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예를 들자면 2003년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그 일가족은 주식 2900억원 등 총 3000억원을 물려받았고 이중 1338억원을 주식으로 냈습니다. 대주주 전체 지분은 줄어들었지만 이미 지분이 높았기 때문에 지배권은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속세를 내면 사실상 회사 지배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재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많은 재벌 기업은 미리미리 주식을 자녀에게 물려줍니다. 하지만 직접 주식을 물려주면 역시 절반 정도를 증여세로 내야하기 때문에 '일감몰아주기'라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먼저 자식이 100% 보유한 회사를 만들고 이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회사를 키웁니다. 키운 회사를 물려줄 회사랑 합쳐버리면 세금은 피하면서 자녀에게 물려줄 회사의 지분을 넘겨줄 수 있습니다. 2011년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입법 전까지만해도 거의 모든 재벌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세금을 피했습니다. 삼양식품도 어쩌면 이런 관행을 따른 셈입니다.

그런데 '관행이었다'라는 변명은 과거에도 정도를 지킨 기업이 있기 때문에 무색해집니다. 2007년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지분 전량을 두 자녀에게 넘깁니다. 회사 지분의 7.8%(약 6800억원)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두 자녀는 이 중 거의 절반인 3.5%(약 3500억원)를 세금으로 납부합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역대 증여세 중 최고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자녀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지분을 바탕으로 회사를 잘 키워서 증여세로 낸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합니다. 우리도 잘아는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입니다.

상속세 1500억원 내신 분(오뚜기) vs 증여세 1800억 내신 분(이마트)
▲ 상속세 1500억원 내신 분(오뚜기) vs 증여세 1800억 내신 분(이마트)

라면 얘기를 하면서 팔도를 빼먹으면 섭섭해할 것 같습니다. 팔도는 라면시장 부동의 4위(!)입니다. 팔도는 우리나라 발효유 시장 1위인 한국야쿠르트가 1983년 라면시장에 진출하면서 내놓은 브랜드입니다. 왕뚜껑, 도시락, 비빔면 등의 라면이 유명합니다.

만년 4위에 머무르던 팔도가 잠깐 경쟁자들을 제치고, 농심까지 위협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2011년 이경규 효과로 '꼬꼬면'을 히트시킨 때입니다.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예능인 이경규 씨가 만든 라면을 상품화시켰고, 이 하얀 국물 라면이 기존의 빨간 국물 라면들을 제치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합니다. 팔도의 시장 점유율은 13%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꼬꼬면의 성공은 채 1년을 가지 못했습니다. 하얀 국물 라면 시장은 다시 쪼그라들었고, 사람들은 다시 예전에 먹던대로 '신라면' '너구리' '삼양라면' '진라면'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생산능력을 늘렸던 팔도는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다행히 지금은 이때 지은 공장이 최대한 가동되고 있다고 합니다.

식품회사들은 언제나 이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유행이 끝나면 사람들의 입맛은 언제나 가장 익숙한 것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를 맞추기 위해 1000억원에 가까운 투자해 설비를 늘렸지만 언제 해외 소비자들 입맛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삼양식품은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재벌 기업의 일원으로 산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지만 그 또한 편해보이지만은 않습니다. 드라마를 벗어난 현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덕주 유통경제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