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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재고 넘치는데 가격은 안떨어지는 '신비한 현상' 왜?

  • 이덕주
  • 입력 : 2018.05.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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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야사-13] 우리나라는 원유생산국입니다. 그런데 이 원유는 원유(原油)가 아니라 원유(原乳)입니다. 석유를 뜻하는 원유가 아니라 젖소에서 짜낸 우유를 뜻하는 원유입니다. 그런데 이 원유가 계속 남아돌고 있다고 합니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2017년 말기준 원유 재고가 약 10만t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국내 우유 월평균 생산량의 약 58% 정도에 달하는 많은 양입니다. 2015년 한때는 이 재고가 28만t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남아도는 우유가 많은데 우유가격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우유는 우리에게 오랜 사랑을 받아온 식품입니다. /출처=Blur Coffee & TV MV 캡처
▲ 우유는 우리에게 오랜 사랑을 받아온 식품입니다. /출처=Blur Coffee & TV MV 캡처

답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 우유가격은 시장의 수요 공급에 따라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유를 생산하는 농가와 이를 구입하는 유가공업체들의 시장거래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농가를 대변하는 한국낙농육우협회와 기업을 대변하는 유가공협회의 협상에 따라 그해의 우유가격이 정해집니다. 정확하게는 젖소에서 짜내서 가공되기 전인 원유가격입니다. 이 원유가격을 바탕으로 우리가 마시는 우유가격도 정해집니다. 낙농진흥회(사단법인)는 중간에서 원유가격 결정을 중재하는 공적인 역할을 하는 단체입니다. 2013년부터는 원유가격연동제라는 것이 도입돼 농가의 원가상승분을 바탕으로 가격이 정해집니다.

어째서일까요. 일단 생산 측면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유는 신선도 유지를 위해 생산되는 대로 바로 소비돼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격이 안정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한번 정한 우유가격이 1년 동안은 유지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유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된 것은 1960년대부터입니다. 그 전 일제시대에도 젖소농가와 우유생산기업은 있었지만 그 생산량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1929년 11월 15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조선 전체에 우유업자는 16개, 유우 두수(젖소 마릿수)는 650마리였습니다. 2018년 3월 기준 우리나라에서 젖소를 키우는 낙농가 수는 5238개, 총 젖소 숫자는 40만마리에 달합니다.

이같이 우유 생산량이 늘어나게 된 것은 1960년대 이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농가에 젖소를 보급하는 사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홀스타인종 젖소(얼룩소)를 도입해서 농민에게 제공하고 대신 비싼 젖소 가격은 생산한 우유로 지불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낙농진흥회가 출범한 1999년 이전까지만 해도 원유가격을 정부가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 이후 젖소는 왠지 에로틱한 가축이 되었습니다.
▲ 이 영화 이후 젖소는 왠지 에로틱한 가축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우유기업들도 그래서 대부분 1960년대에 탄생했습니다. 서울우유의 경우 원래는 일제시대 경성우유협동조합으로 시작했는데 1960년대 초반에 재창립하면서 서울우유협동조합이 됩니다. 서울우유는 지금도 농협 소속의 협동조합입니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과거 한국낙농가공)도 각각 1964년과 196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왜 적극적으로 농가에 젖소를 보급했을까요?

여기서 잠깐 우유라는 제품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유는 석유와 비슷한 한 가지가 있는데요. 바로 원유에서 다양한 제품이 파생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원유(原油)에서 가솔린, 디젤이 나오고 나프타 등 화학제품의 원료가 나오는 것처럼 원유(原乳)에서 소비자들이 접하는 다양한 식품이 나옵니다.

1) 흰 우유

2) 과즙우유(바나나우유 등)

3) 발효유(요구르트)

4) 치즈

5) 유아용 분유

6) 아이스크림

7) 커피에 넣는 우유(커피전문점, 컵커피, 믹스커피용)

8) 버터

9) 크림

젖소에서 막 나온 원유를 살균처리한 것을 시유라고 하는데 이 중 백색시유를 우리가 '흰 우유'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바나나우유 등은 가공시유라고 합니다.

원유나 시유는 금방 변질되기 때문에 이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분말화시키는 것이 '분유'입니다. 분유 중에서 지방을 제거한 것을 '탈지분유', 제거하지 않은 것을 '전지분유'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분유를 물에 타면 다시 우유와 유사하게 되는데 이것을 '환원유'라고 합니다. 분유는 다양한 형태로 식품을 만들 때 사용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아이들이 마시는 '분유'의 경우 분유라는 큰 범주에서 '조제분유'에 속합니다.

1) 2)가 시유이고 3) 4) 5)는 원유를 가공해서 만들어집니다. 6) 7)은 탈지분유 등을 이용해 만듭니다. 8) 9)는 탈지분유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지방으로 만듭니다. 이외에도 우유는 초콜릿 등 다양한 식품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우리나라에 젖소 보급이 본격화된 1960년대 당시 젖소 보급의 목적은 사실 '흰 우유'보다는 '분유' 쪽이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가난하던 시절인 1952년부터 우리나라는 유니세프로부터 20년간 아동 급식 목적으로 탈지분유를 지원받았습니다. 이를 우유로 만들어 모유를 먹을 수 없는 고아뿐 아니라 영양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유니세프는 어린이들의 생존을 위해 우유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연히 액체가 아닌 분유 형태입니다.
▲ 지금도 유니세프는 어린이들의 생존을 위해 우유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연히 액체가 아닌 분유 형태입니다.

정부에서는 이 분유를 자급화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국민 전반의 영양을 위해서 국내 우유 생산량이 늘어나야 했습니다. 당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분유 수요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1965년 한일협정에 따른 청구권 금액의 일부가 이 농가 젖소 보급 사업에 사용됩니다. 그리고 1972년 농림부가 우유 마시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우리 국민들은 본격적으로 학교와 가정에서 '흰 우유'를 마시게 됩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 우유 소비와 생산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우유기업들이 성장하고 농가 소득도 늘어납니다. 아이들도 우유를 마시면서 쑥쑥 자라고 우리 국민들의 평균 신장과 몸무게도 점점 올라갑니다.

우유 수입이 시작되기 전에는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출처=낙농진흥회
▲ 우유 수입이 시작되기 전에는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출처=낙농진흥회

위 그래프는 우유의 국내 생산(파란색), 국내 소비(초록색), 수입(빨간색)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수입이 늘어나게 되는데요. 위 그래프에서 빨간색으로 늘어나는 우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유가 아니라 치즈, 분유 등 각종 유제품이 늘어난 것입니다. 우유 관련 제품들이 원유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치즈와 분유도 원유 기준으로 환산한 것입니다.

흰 우유는 신선해야 하기 때문에 수입을 할 필요성도 낮았고 가격경쟁력도 있었지만 치즈, 분유 등은 1990년대에 이미 수입제품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유회사들은 경쟁력 낮은 국내산 우유를 가지고 유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해외제품을 수입하게 됩니다. 물론 국내산 우유를 가지고도 일부 제품을 만듭니다만 위에서 언급한 우유가격결정제도로 인해 유제품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되면 우리나라 분유(조제분유)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분통을 터뜨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조제분유를 비싼 국산 원유로 만들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 국내에서 경쟁력이 있는 시유(흰 우유) 소비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1981년 1인당 7.2㎏이었던 시유 소비량은 1988년 29㎏에 도달해 이미 포화상태에 이릅니다. 국민들에게 보급이 거의 완료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우유 소비량이 2017년 79.5㎏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동안 백색시유 소비량은 최근 들어 가장 낮은 26.6㎏을 기록합니다.

우리 농가들이 경쟁력이 있는 것은 '흰 우유'인데 이 소비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어째서일까요?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흰 우유를 먹는 아이의 절대적인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둘째, 성인의 흰 우유 소비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워낙 다른 마실 것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식품야사 8회에서 음료시장이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쟁력이 부족한 농가를 도태시키고 수매가격을 낮춰야 할까요. 이것도 복잡한 문제입니다. 경쟁력이 낮다는 것은 사실 해외수입품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국내 우유산업의 육성을 위해 분유 등의 수입을 금지시켰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이를 다시 개방해야만 했습니다.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단어를 혹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면서 자유무역의 시대가 열렸고 이는 우리나라 수출산업에는 큰 기회였지만 농업에는 큰 재앙이었습니다. 우리 축산농가가 아무리 생산성을 높인다고 해도 뉴질랜드 축산농가보다는 우유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젖소는 사료를 먹이지만 뉴질랜드 농가는 풀을 먹이기 때문에 키우는 비용이 훨씬 덜 들기 때문입니다.

우루과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은 차두리만이 아닙니다. /출처=연합뉴스
▲ 우루과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은 차두리만이 아닙니다. /출처=연합뉴스

'농민'은 약자이며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고향'이라든지 '낭만적'인 대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무역제도 아래에서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자국 농업을 보호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어렵게 만들어진 축산 인프라와 우유산업인 만큼 시장경쟁만이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내 우유회사들의 상황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농민들을 위해 치즈나 분유를 수입하지 말고 국산으로만 제조해야 할까요?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누군가는 치즈나 분유를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치즈의 경우 수입산 가격이 4000원이라면 국산은 1만4000원 정도라고 합니다. 치즈의 경우 오히려 수입산이 더 프리미엄 이미지가 있는데 가격 차이가 이 정도 난다면 국산 치즈를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국내에 유통되는 치즈의 95%가 수입산이라고 합니다.

결국 우유회사들은 비싼 가격으로 원유를 사서 이를 분유 형태로 만들어 재고로 쌓아두게 됩니다. 2015년 한때 28만t까지 쌓였다는 재고는 원유가 28만t이 쌓여 있다는 것이 아니라 분유 재고가 원유로 환산하면 28만t이라는 의미입니다.

우유회사들은 그렇다면 어떻게 이 원유 재고를 처리하고 어떻게 생존방법을 찾아가고 있을까요.

먼저 1위인 서울우유는 원유 생산자이면서 가공업체라는 이중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우유라는 본업을 유지하면서 반려동물용 우유를 만드는 등 우유를 다양하게 활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2위인 남양과 매일유업은 공통적으로 커피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아니 사실 모든 우유회사들이 전부 커피시장에 진출했습니다. '프렌치카페' '바리스타'와 같은 컵커피(RTD커피)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컵커피에 커피보다 우유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남양의 경우 2010년 김태희를 앞세워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만들고 인스턴트커피 시장에 진출해 동서식품 '맥심'에 도전했지만 2013년 대리점에 대한 '갑질'이 널리 알려진 이후에는 이 시장에서 힘을 거의 못 쓰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직접 매장을 내고 우유를 소비하는 채널을 만드는 것입니다. 매일유업의 경우 커피전문점인 '폴 바셋'을 2009년 열고 벌써 매장 100호점을 돌파했습니다. 남양은 '백미당'을 통해 아이스크림도 팔고 커피도 직접 파는 사업을 시작해 매장 수가 70개가 넘습니다.

매일유업은 이제는 '우유회사'라기보다는 '종합식품회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다양한 사업을 하고있습니다. '데르뜨'라는 과일젤리도 팔고 '고베식당'이라는 브랜드의 카레도 팔고 '페레로로쉐' '킨더' 등의 초콜릿도 수입 및 판매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전북 고창에 상하목장이라는 목장을 직접 경영하면서 여기서 나온 유기농 우유를 팔고 심지어 이 상하목장에 호텔을 지어 운영까지 할 계획입니다. 매일유업의 자회사인 엠즈베버리지는 '삿포로' '에비스' 등 일본 맥주를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초콜릿 + 뽀로로 + 장난감 = 안 사주기 정말 어렵습니다!
▲ 초콜릿 + 뽀로로 + 장난감 = 안 사주기 정말 어렵습니다!

매년 6월 말 낙농진흥회는 그해 8월부터 적용되는 원유가격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2016년에는 원유가격을 낮췄고 2017년에는 이를 동결했습니다. 이는 우유가 남아도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000년대부터 우유가 남아돌기 시작하면서 그 가격 결정을 두고 농가와 기업들 간 기싸움이 심해졌고 2011년에는 농민들이 길거리에 우유를 쏟아부으면서 '납유 거부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2013년 원유가격연동제가 도입됐고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우유 재고가 급증해 기업들이 읍소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올해도 원유가격 결정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양측의 기싸움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식품야사 9화에서 치킨산업이 성장하면서 농민(육계농장)과 기업(육계회사)이 모두 행복한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던 적이있습니다. 우유는 반대로 시장이 축소되면서 모두가 불행해지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소비자들이 흰 우유를 더 마시고 국산 치즈를 먹지 않는 한 우유가격에 관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덕주 유통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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