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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4대명절 단오날, 북한의 풍경은 어떨까?

  • 이우찬
  • 입력 : 2018.06.0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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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몰랐던 북한-14] 6월 18일은 음력으로는 5월 5일 춘향이가 그네를 타고 이도령이 오작교를 건너다 춘향을 보았다는 '단오'다.

단오는 일명 '수릿날' '중오절(重午節)' '천중절(天中節)' '단양(端陽)'이라고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처음 곧 첫 번째를 뜻하고, '오(五)'자는 곧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라는 뜻이 된다.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여겨왔고 전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懷王)' 때부터 '굴원'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에 투신자살하였는데 그날이 바로 5월 5일이었다고 한다. 그 뒤 해마다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서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열양세시기(烈陽歲時記)'에는 이날 밥을 수레에 던져 '굴원'을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단오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명절이 아니지만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단오를 4대 명절 중 하나로 여겨왔다. 단오는 음력으로 5월 5일로 태양의 기운이 두 배가 되는 좋은 날로 여겨져 우리 선조들은 단오날 5시를 가장 기운이 왕성하다고 하여 이때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국에서 단오는 많은 역사적 유래를 남긴 날이기도 하다. 춘향전을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단오날 그네를 뛰는 놀이를 한다고 나와 있다. 선조들의 묘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많은 지역에서 이날 그네를 타거나 널뛰기를 하는 등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다.

그럼 북한은 단오를 어떻게 보낼까?

북한에도 단오는 선조들을 찾아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며 가족과 친척들이 그동안 살아온 날의 회포를 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학교나 공장, 인민반 등에서 단오를 맞아 그네도 타고 널뛰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행사를 했었다고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단오를 맞아 조상들의 묘소를 '이장'하는 경우도 많았고 이에 북한은 단오를 공휴일로 지정하여 명절 분위기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명절 분위기로 지내오던 단오가 어느 날 배고픔 때문에 북한주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식량 공급난이 가장 심했던 1996~1998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이 조상들의 묘소를 찾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마 조금의 여유가 되는 북한주민의 경우 제사음식를 준비해 묘소로 올라가 제를 지내고 난 다음 그동안 배고픔을 잊기 위해 온 가족들이 모여 제사음식으로 배를 채운다고 한다.

한 북한이탈주민의 말에 따르면 "제사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날에는 조금이라도 기름진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고 잠시 나마 배고픔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북한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많은 북한주민들이 단오에 조상의 묘소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오랜 식량공급으로 많은 북한주민들이 어려움 속에서 살다 보니 조상들을 돌볼 시간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상들의 묘소를 '이장'하는 것을 북한말로는 '멸례'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직 '조선로동당'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북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전부터 조상들에게 '제'를 올리고 자녀들의 무병장수와 만사형통을 기원하기도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무속인들이 없을 것 같은 북한에도 비밀리에 무속인들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북한주민들은 비밀리에 그 무속인에게 찾아가 점을 보거나 아니면 자녀들의 출세를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은지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고 한다. 한 북한주민의 경우에는 자녀의 일이 풀리지 않는 것이 조상들의 묘소를 잘 못 썼기 때문이라고 하여 좋은 기일을 받아 묘를 이장하는데 그날도 바로 단오라고 한다.

이렇듯 북한의 단오는 한국과 달리 서서히 그 모양새가 많이 바뀌는 듯하다.

자신의 주린 배조차 채울 수 없는 북한주민들의 경우 단오는 과연 어떤 날일까? 그리고 한국에서 삶을 살아가는 북한이탈주민들의 경우 과연 그들 속에 단오는 어떤 날로 기억되고 있을까?

어려운 '고난의 행군시기'를 겪으며 살았고 그리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그들에게 단오는 북한에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아닐까? 북한에도 우리나라와 같이 단오가 즐거운 명절로 올 수 있는 날이 과연 언제일지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현실을 주목하고 있다.

미·북정상회담과 남북한의 평화가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평화가 되고 그네를 타고, 널뛰기를 하고 온 가족이 함께 조상들을 찾아 뵙고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는 그런 날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그리운 고향으로 손에 손잡고 함께 찾아가 서로 만나 우애를 나누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다리며 '평화'를 함께 외쳐본다.

[이우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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