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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최고의 빵집에서 바게트를 팔지 않는 이유

  • 이덕주
  • 입력 : 2018.06.2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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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야사-15] 프랑스 최고의 빵집 중 하나로 인정받는 푸알란(Poilane)이라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a 위에 꺽쇠가 있습니다). 빵을 사랑하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파리에 있는 이 빵집의 매장을 자주 찾는다고 하는데요. 여기서는 바게트(baguette)를 팔지 않아서 놀란다고 합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빵인 바게트를 어째서 이곳에서는 팔지 않는 걸까요?

뿌알랑서 만든다는 월드컵 기념 축구빵/출처=뿌알랑
▲ 뿌알랑서 만든다는 월드컵 기념 축구빵/출처=뿌알랑

이번 식품야사에서는 3화에서 잠깐 언급했던 제빵산업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빵도 커피만큼이나 워낙 잘 아시는 분들이 많아서 조금 걱정이 되는데요. 틀린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댓글이나 메일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프랑스 정부는 법적으로 밀가루, 물, 이스트, 소금 만으로 만들어야만 바게트라고 부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게트 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빵이 아닙니다. 기존에 프랑스에 존재하던 긴 모양 빵에 1920년께 바게트라는 이름이 붙었고 20세기를 거쳐 사랑을 받다 보니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이 되었습니다. 바게트 자체는 20세기에 태어난 현대의 산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제빵산업에서 바게트의 탄생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또 다른 현대의 산물이 있습니다. 바로 바게트의 재료 중 하나인 이스트입니다. 이스트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효모'라는 뜻인데 제빵에서 이스트라고 하면 이는 보통 '빵효모(Baker's Yeast)'를 말합니다. 이는 빵 제조를 위해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효모를 말합니다. 이 같은 대량생산된 빵효모를 이 글에서는 '이스트'라고 통칭하겠습니다.

효모는 식품을 발효시키는 다양한 미생물을 말합니다. 빵·맥주·포도주뿐 아니라 김치·된장·요구르트 까지 인류의 다양한 먹거리는 이 미생물이 발효시킨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대량생산되는 '빵효모(이스트)'가 만들어지기 전 제빵사 들은 어떻게 빵을 만들었을까요? 빵이라는 것이 탄생하고 이스트가 발명되기 전까지 제빵사들은 직접 효모를 길러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빵을 발효시켰습니다. 그래야만 빵을 오븐에 구웠을 때 빵이 부풀어 오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트가 발명되면서 발효에 필요한 긴 시간이 크게 단축되었습니다. 빵 반죽에 이스트를 넣고 그냥 구우면 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이스트는 곧 모든 제빵사들에게 퍼졌고 빵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와 같이 직접 효모를 길러내 빵을 만드는 빵집들이 전 세계에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물론 프랑스에서도요.

그런데 여전히 과거와 같은 제빵 방식을 유지했던 가게가 프랑스에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처음에 제가 언급한 푸알란입니다. 1932년 만들어진 이 빵집은 이스트를 통한 제빵을 거부했고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바게트도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작은 소규모 빵집을 시작으로 이스트를 넣는 제빵에 반대하고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생겨납니다. 이스트를 사용하면서 몇 가지 부작용이 생겨났습니다. 먼저 발효 시간을 단축시키면서 빵의 맛이 과거와 달라지고 소화에 불편함을 겪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대량생산되는 빵에 밀려 소규모 빵집들이 하나둘 개성을 잃고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푸알란을 비롯한 소위 장인빵집(아티장베이커리)들은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효모를 사용해 빵을 만듭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천연발효빵을 르뱅(levain)이라고 하며 미국과 독일에서는 사워도(sourdough)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물론 바게트도 사워도 방식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이스트를 사용한 바게트와 같이 만들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량의 이스트를 넣는 경우도 많습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밀가루 대비 이스트를 0.2%까지 사용해도 천연발효빵으로 인정해준다고 합니다.

똑같은 사워도라도 이스트의 유무에 따라 결과물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출처=Alderman Farms
▲ 똑같은 사워도라도 이스트의 유무에 따라 결과물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출처=Alderman Farms

천연발효빵이 대규모 공장 빵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천연발효빵을 먹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작은 빵집들이 천연발효종을 사용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화그룹에서 운영하는 에릭 케제르, 커피뿐 아니라 맛있는 빵으로 유명해진 테라로사, 이태원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이 된 오월의 종 등이 모두 천연발효빵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프랑스에서는 푸알란이 천연발효빵을 만드는 대표적인 곳이라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부댕(Boudin) 베이커리가 유명합니다. 부댕 베이커리는 1849년 샌프란시스코로 이민 온 부댕이라는 프랑스인이 만든 빵집인데 그 당시의 제빵 방법을 바꾸지 않고 계속 유지하다 보니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워도 빵집이 되었다고 합니다.

올해 초 한국에 상륙한 채드 로버트슨 페이스트리 셰프의 '타르틴 베이커리'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명한 사워도 빵집입니다. 로버트슨은 1990년 천연발효빵을 만드는 한 빵집을 알게 되고는 그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사워도로 유명한 사람들의 밑에서 일하면서 빵을 공부한 후 2002년 샌프란시스코에 '타르틴 베이커리'를 만듭니다. 그는 2007년 제임스 비어드 상을 받으면서 미국에서 최고의 제빵사로 인정을 받았는데요. 2010년 자신의 레시피를 모두 공개한 책 '타르틴 브레드'를 내면서 더 유명해집니다. 그 책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사워도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버트슨은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이미 오래되고 수준 높은 빵 문화가 있다"고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 천연발효빵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이미 한국의 제빵사들은 최고의 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을 인정해준 것입니다.

채드 로버트슨 타르틴 베이커리 창업자는 전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베이커 중 한명입니다./출처=타르틴베이커리
▲ 채드 로버트슨 타르틴 베이커리 창업자는 전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베이커 중 한명입니다./출처=타르틴베이커리

우리나라에서 처음 천연발효빵을 도입하고 만든 사람은 김영모 과자점으로 유명한 김영모 제빵명인입니다. 1982년 서초동에 처음 '김영모 빵집'을 열었던 그는 유럽에서 천연발효빵이 만들어지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1995년 독일에서 천연발효빵을 만드는 법을 배워 오게 됩니다. 2000년에는 과일을 이용한 천연발효법을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로버트슨이 자신의 책을 내면서 레시피를 공개했던 것처럼 김영모 명인도 책을 통해 사워도 노하우를 사람들과 공유했습니다.

천연발효빵을 만드는 것은 집에서 우유로 천연요구르트를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유를 발효시키면 유산균이 생기면서 천연요구르트가 만들어집니다. 이후부터는 이 유산균을 우유에 넣으면 발효가 되면서 요구르트가 더 쉽게 만들어집니다. 천연발효빵도 이처럼 최초의 발효종(미생물)을 얻어낸 후 이것을 키워서 빵에 넣어 굽고 원래 발효종은 계속 키워내는 과정을 반복하게 됩니다.

어떤 식품에서 시작해 최초의 발효종을 얻어 내느냐에 따라 천연발효빵은 개성이 크게 달라집니다. 호밀, 맥주, 과일, 된장 등 다양한 재료에서 발효종을 키워내는 것이 가능하고 빵의 맛은 각각 다 다르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연발효빵은 더 맛있는 빵이고 이스트로 만들어진 빵은 맛없는 빵일까요? 혹은 천연발효빵은 건강에 좋은 빵이고 이스트로 만들어진 빵은 건강에 좋지 않은 빵일까요?

천연발효빵의 특징은 '사워'(영어로 시큼하다는 의미)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시큼한 맛에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들이 발효빵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는 빵을 부풀게 하는 효모도 있지만 아닌 것도 있다고 합니다. 반면 '이스트(베이커스 이스트)'는 20세기를 걸쳐 개발되고 품종이 개량된 미생물입니다. 유럽에서 만들어진 맥주효모균(Saccharomyces cerevisiae)이 많이 사용된다고 하는데요. 천연효모종처럼 다양한 미생물이 뒤섞인 것이 아니라 오직 빵을 부풀리는 것에만 특화된 미생물입니다.

이스트빵도 100년 이상의 역사를 거치면서 그 나름의 개성과 맛을 가지게 됩니다. 천연발효빵이 빵 자체의 질감과 맛을 강조한 식사용 빵이 많다면 이스트빵은 깨끗한 맛을 바탕으로 디저트용 빵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팥빵, 고로케빵, 소시지빵, 하얀 식빵 등은 이스트로 만들어야 그 맛이 극대화된다고 합니다.

천연발효빵맨은 어딘가 어색합니다. Waiting for you Anpanman~/출처 : NTV
▲ 천연발효빵맨은 어딘가 어색합니다. Waiting for you Anpanman~/출처 : NTV

정웅 오월의 종 셰프는 한 인터뷰에서 "천연발효종은 빵을 만드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특유의 풍미가 좋아 매력이 있지만 모든 빵에 다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가공 이스트를 사용할 때보다 빵이 부푸는 힘도 떨어진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결을 완벽히 내기는 힘들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천연발효로 만들어서 맛있는 빵이 있고 이스트로 만들어 맛있는 종류의 빵이 있습니다. 이스트로 만드는 빵에는 설탕이나 크림 같은 것이 많이 들어가지만 이것은 그런 종류의 빵이 가진 특성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천연발효빵과 마찬가지로 이스트로 만든 대량생산 빵에도 방부제나 보존제 같은 것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건강상 대량생산 빵이 유난히 더 나쁘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천연발효빵이 더 소화가 잘된다는 점은 대체로 맞는 것 같습니다.

이스트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 빵의 대량생산을 위해서입니다. 천연발효빵은 적어도 48시간 정도 발효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생산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스트와 달리 천연효모는 대량으로 만들 수 없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빵의 균일성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동네빵집이나 2~3개 정도의 매장을 가진 유명 베이커리라면 모든 빵을 천연발효빵으로 만들 수 있겠지만 파리바게뜨처럼 국내에 3400개 매장을 가진 기업이라면 천연발효빵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사실 파리바게뜨도 천연발효빵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파리바게뜨는 파바데이 프로모션용 광고를 뮤지컬 형식으로 만들었는데요. 여기 등장하는 '오구'의 정체가 바로 '토종효모빵'입니다. 과거 제빵업계에서 쓰이는 이스트가 대부분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파리바게뜨에서는 한국에서 이스트를 찾아내 대량생산용으로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도 결국 대량생산되는 빵이기 때문에 '천연발효빵'이 아니라 '토종효모빵'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천연발효빵 제품의 특징을 많이 따랐다는 점에서 천연발효빵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량생산과 관련해 제빵산업에 중요한 기술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휴면반죽(Dormant dough)이라는 것인데요.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 등에서 만들어지는 빵의 많은 수가 바로 이 휴면반죽을 오븐에서 구운 빵입니다. 프랜차이즈 빵이 '냉동빵(냉동생지)'이라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는 이유는 바로 이 휴면반죽 때문입니다.

프랜차이즈 빵집들은 센트럴 키친이라고 불리우는 일종의 공장 같은 곳에서 빵을 만듭니다. 밀가루와 물, 이스트를 넣어 빵 반죽을 만들고 이것을 영하 30~40도 이하에서 급속 동결시켜 효모의 활동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이 반죽을 영하 18도가 유지되는 차량에 실어서 프랜차이즈 빵집 각 매장으로 배달시킵니다. 매장에서는 이 휴면반죽을 오븐에서 구워서 판매하게 됩니다.

만약 휴면반죽이 없었다면 파리바게뜨 점주와 제빵기사들은 새벽같이 매장에 나와 동네빵집에서 하는 것처럼 빵을 반죽해야 합니다. 만약 천연효모빵을 만든다고 하면 반죽한 빵을 48시간 이상 발효까지 시켜야 합니다. 파리바게뜨 점주나 제빵기사가 동네빵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빵을 만들 수 있고 노동강도도 덜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또한 전국 파리바게뜨 매장의 맛이 어딜 가든 비슷하게 유지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냉동기술은 제빵뿐 아니라 식품 분야 전반에서 논란이 되는 기술입니다. 우리는 '냉동식품'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만 소위 가정간편식(HMR)부터 많은 제품들이 냉동을 통해 보존기간을 늘리고 맛을 유지합니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휴면반죽은 일반적인 빵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좋은 품질의 빵을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첨단기술입니다. 그래서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 같은 프랜차이즈 빵이 유난히 맛이 없다는 것은 '편견'이라는 게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다양성과 개성, 그리고 인스타그램이 중요한 시대에 대량생산되는 빵은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해도 장인빵집의 아우라를 따라갈 수 는 없을 것 같습니다. 프랜차이즈 빵은 아무리 사진을 멋지게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고 해도 '좋아요'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빵산업을 취재하면서 천연발효빵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여되는지, 빵 하나하나에 제빵사의 개성과 취향이 담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봐도 천연발효빵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예전에 먹던 빵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맛에 점점 더 민감해지고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대량생산되는 빵을 거부하고 동네빵집에 줄을 서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인 것 같습니다.

* 서울 3대 빵집은 어디?

서초동에 처음 문을 연 김영모 빵집 1호점.
▲ 서초동에 처음 문을 연 김영모 빵집 1호점.

맛있는 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울 3대 빵집'에 대한 얘기도 나옵니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폴레옹과자점' '김영모과자점' '리치몬드과자점'을 꼽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빵집을 동네빵집 혹은 장인빵집이라고 부르지만 대량생산되는 빵집과 비교해 윈도베이커리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3대 제과점은 모두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1968년, 리치몬드는 1979년, 김영모는 1982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리치몬드과자점을 만든 권상범 명인과 김영모과자점을 만든 김영모 명인 모두 나폴레옹에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나폴레옹과자점은 우리나라 제빵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과자점은 그런데 창업주 사후 2003년부터 삼남매가 나눠서 각자 경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길거리나 백화점 등에서 접하게 되는 나폴레옹빵집은 같은 회사가 아니고 3개의 다른 회사 중 하나라는 뜻입니다. 같은 나폴레옹빵집인데 맛이 다르다고 느껴졌다면 서로 다른 회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에는 도제식으로 스승 밑에서 빵을 배웠기 때문에 빵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게서 빵을 배웠던 한국 제빵사들이 나옵니다.

나폴레옹과자점 전에도 유명한 빵집들은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고려당, 태극당, 뉴욕제과 같은 빵집들이 1945년 해방과 함께 생겨났습니다. 이런 빵집들은 당대의 유명한 빵집이었지만 대량생산빵의 등장과 프랜차이즈 빵집의 부상으로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유명하지 않은 동네빵집들은 문을 닫은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미당(1945년), 영일당(1947년)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빵집인데 각각 SPC그룹(파리바게뜨)과 크라운해태제과가 되어서 동네빵집들이 사라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긴 침체기를 지나 생존한 윈도베이커리들은 2010년대에 새로운 기회를 맞았습니다.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이제는 대량생산되는 빵이 아니라 개성이 있는 장인들의 빵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3대 빵집이 다시 부각되고 동네 곳곳마다 '천연발효빵' '건강빵'을 앞세운 윈도베이커리들이 생겨났습니다.

2009년 40억원이었던 군산 이성당의 연매출은 2017년 210억원으로 커졌습니다./출처=이성당
▲ 2009년 40억원이었던 군산 이성당의 연매출은 2017년 210억원으로 커졌습니다./출처=이성당

지방에서 오래 생존한 윈도베이커리들도 전국구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백화점 마트 등 유통회사들이 맛집으로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취하면서 지역 빵집들은 사실상 기업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는 윈도베이커리들이 공장을 짓고 여기서 빵을 대량생산한다는 의미입니다. 국내 최고(最古)의 제과점으로 알려진 전북 군산의 이성당(1920년대 이즈모야 화과자점에서 출발), 대전 성심당(1956년), 대구 삼송빵집(1957년) 같은 곳이 대표적입니다.

 윈도베이커리도 명성과 인기를 얻으면 수요에 맞추기 위해 대량생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최초의 작은 가게가 가지고 있던 차별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유명 인디밴드가 방송을 타고 유명해지면 마니악한 초기 팬들이 떠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업화와 지속성장이라는 것은 그래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매일경제 유통부 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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