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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조상의 식인 풍습은 영양 보충을 위한 것?

  • 원호섭
  • 입력 : 2017.05.0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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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과학-134]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먹는다.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유능한 정신과 의사인 한니발 렉터.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인육을 먹은 혐의로 교도소에 갇힌다. 탈출에 성공하고 그를 놓친 FBI 형사에게 안부 전화를 건다. 사이코패스를 그린 영화 '양들의 침묵'의 줄거리다. 렉터는 평범한 천재 소년이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탈주한 독일군이 자신의 동생을 잡아먹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광기를 나타내고야 만다. 독일군은 먹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을 먹었다.

고대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이 같은 '카니발리즘(인간이 인육을 먹는 풍습)'의 흔적이 종종 나타난다.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인육에 손을 댔을까. 렉터가 목도한 것처럼 살기 위한 방편이었을까, 아니면 종교적인 의식 때문이었을까.

과학자들은 고대 인류의 화석을 조사하면서 식인의 흔적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대표적인 것이 두개골이나 뼈의 훼손이다. 뇌를 꺼내먹거나 뼈에 붙은 살점을 발라먹기 위해 뾰족한 도구를 사용하면 화석에 생채기가 남는다. 척추의 일부가 손실된 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골수'나 '기름'을 얻기 위해 척추를 뜨거운 물에 넣고 끓이거나 부술 때 생기는 흔적이다. 뼈에 남아 있는 인류의 이빨 자국, 불에 덴 흔적 등도 포함된다. 제임스 콜 영국 브라이턴대 환경기술과학과 교수는 "구석기 시대 화석 수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이런 흔적이 자주 보인다는 것은 당시 식인 풍습이 흔한 일이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약 100만년 전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나 인간의 직접적인 조상인 고대 '호모 사피엔스'에게서도 이 같은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고대 인류의 식인 풍습을 두고 과학자들은 두 가지로 설명한다. 영양학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설명과 단순히 종교적 의식이라는 것. 전자의 경우 채집생활을 했던 고대 인류가 먹을 것이 부족하던 때 사람을 먹는 것이 생존에 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인류는 정말 이토록 잔인했을까.

과학자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소 무서운 연구를 진행했다. 인육을 섭취할 경우 '칼로리'가 얼마나 될지를 조사한 것이다. 만약 인육이 갖고 있는 칼로리가 짐승이 갖고 있는 칼로리보다 충분히 높다면, 인류의 식인 풍습은 영양학적인 이유로 해석될 수 있다.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육의 칼로리가 낮다면, 진화적으로 영양학적인 이유로 식인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양 섭취를 위해 서로를 잡아먹었다면, 결국 인류는 '멸망'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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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육의 칼로리를 계산한 첫 번째 연구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 '미국 인류학저널'에 실린 미시간대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50㎏ 성인 남성의 몸에서 섭취할 수 있는 근육의 양은 30㎏이다. 30㎏의 근육에는 소화가 가능한 단백질이 4.5㎏ 포함되어 있으며 칼로리로 따지면 1만8000㎉를 제공한다. 하지만 당시 논문을 살펴보면 어떤 근거로 이 같은 분석을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빠져 있다. 저자들은 "성인 남성 한 명이 제공하는 단백질의 양은 몸무게가 평균 60㎏인 사람 60명이 하루 동안 섭취할 수 있는 양"이라며 "그룹으로 생활했던 고대 인류의 생활 방식으로 볼 때 인육으로 영양을 섭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고대 인류의 식인 풍습을 영양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콜 교수는 최근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1945~1956년 성인 남성 시체 4구의 화학적 구성을 조사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물론 과학을 위해 기부된 사체다. 콜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성인 남성에게서 얻을 수 있는 지방과 단백질이 갖고 있는 칼로리는 12만5822㎉였다. 근육 24.897㎏당 1만9951㎉로 계산되면서 1970년대에 발표된 미시간대 논문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먼저 콜 교수는 매일경제신문과 이메일 인터뷰를 하면서 "㎈ 단위가 혼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이 논문에서는 ㎈를 쓰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콜 교수는 "성인 남성 기준으로 1일 필요한 열량은 2400㎈"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1000㎈=1㎉=1Cal이다(이 기사에서는 혼동을 줄이기 위해 단위를 ㎉로 통일했다).

콜 교수는 상세한 자료를 얻기 위해 인체의 조직별, 장기별 칼로리도 분석했다. 어깨에서 팔꿈치를 이르는 '상박'은 7451㎉, 골반은 4486㎉, 심장 650㎉, 신장 376㎉ 등으로 나타났다. 모두 고대 인류 화석에서 식인 흔적이 나타난 곳이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기준인 만큼 골격이 크고 근육량이 많았던 네안데르탈인의 경우 이보다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요리를 할 경우에는 칼로리가 변하는데 이에 대한 데이터를 구할 수 없었다. 이번 논문에서 계산된 칼로리 양은 순전히 날것으로 섭취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양이다. 논문에는 이를 기반으로 고대 인류의 식인 흔적이 발견된 9곳을 분석한 데이터도 게재됐다. 스페인의 그란 돌리나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의 경우 대략 33만8237~46만5549㎉, 프랑스의 물라 게르시 유적에서 발견된 고대 인류의 칼로리는 44만8620~53만2382㎉로 분석됐다.

현재 성인 남성의 1일 권장량이 2400㎉임을 감안하면 많은 양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고대 인류가 25명 정도 그룹을 지어 생활한다고 했을 때 인육이 제공할 수 있는 칼로리 양으로 목숨을 유지하기에는 힘들다. 이는 동시대를 살았던 매머드, 곰, 말 등의 들짐승이 갖고 있는 칼로리 양과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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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근육(고기)이 제공하는 칼로리 양이 3만2376㎉라면 매머드는 360만㎉였다. 털꼬뿔소는 126만㎉, 큰뿔사슴은 16만3680㎉가 나왔다. 인체가 갖고 있는 칼로리 양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짐승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부족했다. 콜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의 경우 골격이나 근육량이 현재 호모 사피엔스보다 조금 컸을 것"이라며 "이를 감안하더라도 25명 이상의 그룹이 식인을 했을 경우 영양학적으로 볼 때 건강한 생활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동물을 사냥하는 것보다 같은 인류를 사냥하는 것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힘들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콜 교수는 "인간을 사냥하는 것보다 새나 물고기, 코뿔소 등의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 전반적으로 더 많은 열량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고대 인류가 보였던 식인 풍습은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 이겼거나 죽은 사람을 기리는, 즉 종교적이나 상징적인 이유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 사냥이 어렵던 시기에 그룹 구성원이 사망한 경우,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식인을 할 수는 있겠지만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졌을 수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25명 이상의 그룹이 생존을 위해 주기적으로 식인을 택했다면 그 그룹은 진화적으로 도태돼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콜 교수는 "고대 인류의 식인 풍습은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인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대 인류는 생각보다 미개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원호섭 과학기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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