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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가장 오래된 빵집 군산 이성당 김현주 대표

  • 배미정
  • 입력 : 2017.05.1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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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이] ■ '국내 최고령 빵집' 군산 이성당 김현주 대표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이성당(李盛堂) 빵 봉지에는 하나같이 '1945'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이성당은 국내 최고령 빵집이다. 지금은 김현주 대표(55)가 운영하고 있다. 이성당의 과거가 역사 속에서 나와 전국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김현주 대표의 공이다. 쌀로 반죽한 얇은 외피와 푸짐한 속을 자랑하는 독특한 '단팥빵'과 '야채빵'은 주말에는 500m 이상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는 이성당 인기 메뉴다.

김 대표는 한국인 입맛에는 밀가루보다는 쌀이 더 맛있다는 원칙으로 '쌀빵'을 개발했다. 다른 빵들도 밀가루에서 쌀로 바꿔나갔다. 이성당에서는 샌드위치와 핫도그도 쌀 반죽으로 만든다. 빵 안 앙금은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양을 줄인 적이 없다.

이성당의 명성은 단순히 빵 맛에서만 비롯한 것이 아니다. 이성당의 72년 역사가 지닌 무게를 누구보다 가슴 깊이 실감한 사람이 김 대표였다. 이성당이 서울 유명 제과점과 경쟁해서도 살아남으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른 뭔가가 있어야 했다. 김 대표는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역사, 이성당만의 이야기를 팔기 시작했다.

족보를 거슬러 따져보면 김 대표의 시아버지와 창업주 이석우 씨는 이종사촌 간이다. 1977년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가 경영을 했다. 2003년 시어머니로부터 이성당을 물려받은 김 대표는 준비된 후계자였다. 1984년 스물두 살의 앳된 나이에 시집와 20여 년간 시어머니를 모시며 이성당 살림을 챙겨왔다. 남편인 조성용 대두식품 회장도 어머니의 경영 철학을 가장 잘 이어갈 수 있는 최적임자는 아내밖에 없다고 믿었다.

남편의 전적인 신뢰를 발판으로 김 대표는 군산의 작은 지역 빵집을 전국에서 찾아오는 명소로 발전시켰다. 군산이란 지역의 역사도 새롭게 조명받게 됐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국내 쌀을 수탈한 항구 기지였던 군산에는 일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원래 이성당은 군산 중앙로 지금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했는데 1948년 적산가옥으로 등록된 일본 과자점 이즈모야를 불하받으면서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김 대표는 군산 제과업의 뿌리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일제시기 지금 이성당 자리에 있던 '이즈모야' 과자점의 후계자를 찾아 직접 일본에 가기도 했다. 김 대표의 이 같은 열정이 없었다면 이성당은 오래된 빵집으로만 군산 주민들에게 기억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군산을 전국에서 연간 200만 관광객이 찾는 관광도시로 거듭나게 만든 지역 효자이다. 작년 군산 이성당의 매출액은 150억원대로 5년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성장했다.

김 대표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본인이 개발한 빵을 소개할 때 목소리에 가장 힘이 넘쳤다. 작년 말에는 본관 옆에 카페와 베이커리로 이뤄진 신관을 새로 만들었다. 이곳 화이트톤의 벽면에 걸린 흑백 사진들이 이성당의 70년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2일 이성당 신관 2층 카페에서 김현주 대표를 만났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시집살이에 빵집 경영까지 많이 힘들었겠다.

▷1984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다. 만 스물두 살이었으니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지금 이성당이 있는 건물 2층 집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시아버지께서 1979년 돌아가시면서 어머님과 남편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머님 가게일을 돕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말 정신없이 지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머님 곁에서 가게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2003년 대표 자리를 물려받았다.

-아들이 아닌 며느리가 이성당의 후계자가 됐다. 시어머니에게서 무엇을 배웠나.

▷이성당은 어머님 삶 자체였다. 맛있는 간식을 이웃들과 나누자는 생각으로 평생을 사셨다. 옛날부터 이성당은 빵뿐 아니라 '아이스케키'나 사탕 같은 다양한 과자를 파는 곳이었다. 건너편에 있던 군산시청이 조촌동으로 이전하면서 인적이 드물어지고 주변 빵집들이 다 스러져갈 때도 어머님은 끝까지 가게를 지켜내셨다. 그런 어머님을 보필하면서 어머님의 공을 이어받아 내가 더 잘해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갖게 됐다.

-이성당이 국내 최고령 빵집의 명맥을 이어가는 비결이 있다면.

▷어머님은 늘 "먹는 장사는 맛이 최우선"이라고, 좋은 재료를 쓰자고 하셨다. 우리는 하루 지난 빵을 팔지 않는다. 진열대에 나와 있는 빵을 보면 개별 포장이 안돼 있다. 포장을 안 하면 빵이 금세 마른다. 빵이 마르기 전에, 그날 만든 신선한 빵을 바로바로 판다는 얘기다. 옛날부터 식빵이 아닌 1인용 개별 빵은 따로 포장해 내놓지 않았다. 매일 수시로 빵을 만들고, 오늘 팔리지 않은 빵은 절대 내일 팔지 않는다.

-그럼 남은 빵은 어떻게 하나.

▷빵을 남게 만드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매일 장사하다보면 대충 몇 시에 빵이 얼마나 필요할지 알 수 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데 빵을 기부할 때도 미리 계획해서 그날 아침에 만든 빵을 바로 보낸다. 빵이 남아서 주진 않는다.

-남편(조성용 대두식품 회장)은 어떻게 만났나.

▷양가 어머님이 같이 절에 다니시면서 혼사를 결정하셨다.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결혼했다. 둘 다 군산 토박이인 데다 여섯 살 차이니까 누구네 아들딸이라는 정도로 아는 수준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장사하는 집에 시집가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색했다. 빵집 대표로 장사꾼이 다 된 나 자신이 지금 봐도 신기하다.

-남편인 조 회장이 이성당 경영에도 참여하는지.

▷남편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대두식품 회장으로 이성당에 쌀가루와 팥 앙금을 제공한다. 또 전국 빵집을 돌아다니면서 훌륭한 제빵사들을 스카우트해오기도 한다. 일본이나 유럽을 같이 여행하면서 제과점 탐방을 하고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조 회장은 이성당을 어머니와 아내 김 대표에게 맡기고, 본인은 1983년 빵의 핵심 재료인 앙금을 생산하는 대두식품을 창업했다. 전국 유명 제과점과 카페에서 사용되는 팥 앙금의 70% 이상이 대두식품 제품이다. 쌀가루 전문 브랜드인 '햇살마루'와 전통떡 브랜드인 '화과방'으로 한국 고유의 먹거리를 개발해 해외로도 수출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김 대표 옆자리를 지킨 조 회장은 오늘날의 이성당은 전적으로 '김 대표'가 만들었다며 아내의 공을 치켜세웠다.

-이성당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가게 맞은편 군산시청이 1996년 조촌동으로 이전하면서 중앙로 주변이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보시다시피 지금도 빈집이 많고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 도시의 중심이 나운동 수송로 쪽으로 이동하면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그때부터 한 10년간 장사가 안돼 고생했다. 1997년 IMF 위기까지 겹치면서 더 힘들어졌다. 그 와중에도 어머님은 직원을 자르지 않았다. 대신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 매출을 유지했다.

-지금은 군산 중앙로가 관광객들이 모이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2010년 복고 열풍이 불면서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 군산은 일본군이 호남평야에서 나온 쌀을 수탈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면서 일본인들이 다수 이주했다. 광복 후 일본인들은 떠났지만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일본식 도로 형태나 건축물이 그대로 남았다. 다른 도시에서 보기 힘든 일제 식민지 시절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으면서 군산이 근대역사문화의 도시로 새롭게 주목받았다. 지금 이성당 건물도 광복 후 정부가 적산가옥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창업자인 이석우 씨가 받은 것이다. 이성당도 군산의 역사를 간직한 국내 최고령 빵집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장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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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에 기부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일 뿐이다. 때가 되면 어려운 이웃에 빵을 보내는데 소문낼 일은 아니다.

-다른 빵집들이 질투하지 않나.

▷안 그렇다. 지역 내 빵집 모임도 있다. 이성당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지역 내 다른 빵집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이성당이 잘되면 다 잘될 수 있다. 또 이성당이 있는 중앙로는 구시가지로 관광객들이 주로 오고, 신시가지에는 지역주민이 주로 가는 식으로 손님도 분산된다. 전국적인 모임도 있다. '한울회'라고 서울의 리치몬드, 김영모과자점, 대전의 성심당, 광주의 궁전제과 등 전국의 대표 빵집 사장님들이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난다. 조 회장이 주로 나가고 1년에 한두 번씩 부부동반으로 만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예전에는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매일 와주시는 손님'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줄 서 있는 손님들'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매일 단팥빵과 야채빵을 먹기 위해 줄 서는 손님들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나 스스로 손님들이 저렇게 줄 설 만큼 맛있는 빵을 만들고 있나 반성하게 된다. 줄 선 손님들을 떠올리며 빵을 더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 손님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스스로 다짐한다. 매년 특정 빵만 대량 주문하는 연예인들도 많다. 빵값 대신 구하기 어려운 모 가수 콘서트 티켓을 받은 적도 있다.

이성당의 트레이드 마크는 쌀가루로 반죽한 단팥빵과 야채빵이다. 주말에 이 빵을 먹으려면 가게 앞에서 500m 이상 줄을 설 각오를 해야 한다. 쌀가루로 반죽해 식감이 일반 빵보다 훨씬 찰지다. 얇은 피 안을 가득 채운 팥 앙금과 각종 야채가 입안뿐 아니라 마음까지 넉넉해지게 만든다. 1300원짜리 앙금빵은 평일에는 하루에 1만5000개, 주말에는 2만5000개 이상 팔린다고 한다. 이성당에서 파는 제품은 일반 빵뿐 아니라 과자, 케이크를 포함해 200가지가 넘는데 전체 제품의 80%가 국산 쌀로 만들어진다.

-왜 쌀로 만든 빵을 고집하는지.

▷이성당의 단팥빵이 유명한 이유는 단팥 앙금이 많이 들어가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쌀 반죽의 중독성 때문이다. 쌀은 집에 가면 생각나는 맛이다.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빵은 시간이 지나면 식감이 뻣뻣해지는데 쌀은 얼렸다가 녹여도 맛이 똑같다. 한꺼번에 많이 사가서 두고두고 먹어도 처음 샀을 때와 가까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솔직히 우리집 빵이 줄 서서 먹을 정도로 특별한 맛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근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생각나는데 그 비결은 쌀 반죽에 있다.

-직원은 총 몇 명인지.

▷빵 만드는 기술자부터 매장 관리하는 직원들까지 80명 정도 된다. 계절적으로 필요할 때 아르바이트 학생을 쓰기도 한다. 신관에 새로 카페를 만들면서 아르바이트 학생이 많이 필요해졌는데 구하기가 어렵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 공부하랴 취업 준비하랴 많이 바쁜 것 같다.

-요즘 가장 공들이고 있는 빵은.

▷작년에 새로 개발한 차가운 찐빵, 아이스쌀찐빵이다. 상표 등록도 했다. 쌀은 밀가루와 달리 차갑게 먹기가 좋다. 밀가루는 차면 퍼석퍼석해지는데 쌀은 냉동으로 보관했다가 차갑게 먹어도 쫀득거리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냉동 보관해 바로 수출도 할 수 있다. 미국 한인마트에 600박스를 납품했는데 일주일 만에 200박스가 팔렸다고 한다. 추가 주문이 또 들어왔다. 베트남 같은 동남아시아에도 수출하는 게 목표다. 이성당 미래를 짊어질 빵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스쌀찐빵은 셰프가 술 먹고 반죽을 개발했는데 나중에 레시피가 생각나지 않아서 한 달 정도 레시피를 찾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빵값이 대부분 1000원대로 저렴하다.

▷재료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는 한 웬만하면 빵값은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이성당은 서민적인 친근한 빵집이다. 이런 이미지는 우리가 아니라 손님들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손해 보고 팔 수는 없겠지만 가격을 올려 손님들의 신뢰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롯데백화점에 입점할 때 조건도 빵값을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프랜차이즈 점포를 낼 생각은 없는지.

▷우리 자식대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프랜차이즈를 낼 생각이 없다. 남편이 하는 대두식품이 이미 전국 빵집에 앙금을 대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서울에 직영점을 추가로 낼 수 있지만 임대료 등을 고려했을 때 지금 빵값을 유지하면서 운영하기 어려울 것 같다.

-동네 빵집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음식 장사는 '맛'이 제일 중요하다. 원재료의 중요성을 알았으면 좋겠다. 원재료의 맛이 변함없이 잘 살아나려면 공정 과정을 잘 지켜야 한다. 공정 하나하나가 맛에 영향을 미친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다양한 종류의 빵들이 출시되고 있다. 공정도 점점 복잡해진다.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젊은 제빵사들의 아이디어에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신제품을 꾸준히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늘 기본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이성당을 물려받게 될까.

▷아들은 아버지 회사인 대두식품에서 일하고 있다. 큰딸은 서울에서 햇살마루 빵집을 운영한다. 막내 딸은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곧 귀국한다.

우리 가족은 이성당과 한 몸이나 다름없다. 가정과 가게가 분리돼 있지 않다. 가게가 있는 건물 2층에서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기업도 아니고, 대단한 집안도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 밀착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나한테도 고비가 많았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이성당의 주인이 돼야 하지 않을까.

■ 김현주 대표는

1962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군산 토박이다. 군산중앙초등학교와 군산여중, 군산여고를 졸업했다. 원광대학교 가정과를 졸업한 22세 요조숙녀의 인생은 1984년 결혼하면서 180도 바뀌게 된다. 이성당 대표였던 시어머니의 일을 도우며 1남2녀를 키웠고 시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2003년 이성당 대표로 취임하게 된다. 창업주와 시아버지, 시어머니에 이은 4대 사업가이다. 2006년 밀가루 대신 쌀로 만든 이성당 최초의 쌀빵 '블루빵'이 히트를 치면서 이성당의 명성을 전국에 알렸다. 쌀빵을 해외에 수출해 한국적인 빵 맛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게 목표다.

[배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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