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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기술에 '부고'를 띄운다

  • 원호섭
  • 입력 : 2017.08.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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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자료=연합뉴스
▲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자료=연합뉴스
[뉴스&와이]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7일 결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차관급 직책인 과학기술전략본부장에 선임됐다. 과학기술전략본부장은 20조원에 가까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심의 조정을 담당할 뿐 아니라 R&D 성과 평가까지 맡은 현 정부의 과학기술계 핵심 요직으로 꼽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차관급 본부가 설치된 뒤 누가 이 자리에 오르느냐를 두고 하마평이 많았다. 박기영 교수 역시 이름을 올렸지만 과학기술계에서는 '설마' 했다. 박 교수는 2005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는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는 박 교수를 임명하며 "식물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과학자로, 탄탄한 이론적 기반과 다양한 실무 경험을 겸비해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핵심 과학기술 연구개발 지원 및 과학기술 분야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나갈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 목소리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사립대의 한 교수는 "현 정부가 과학기술계를 이렇게 무시할 수 있냐"며 울분을 토했다.

박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학기술보좌관을 맡았다. 황우석 박사가 조작한 논문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으며 심지어 실험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박 교수는 당시 저자에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 "윤리적인 부분을 코멘트해줬고, 황 박사가 저자에 넣는다고 연락을 해왔다"고 해명했다. 논문의 윤리적인 문제(난자 사용)에 대해서는 일절 알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이 말 자체가 황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출연연구소의 한 책임급 연구원은 "과학자가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저자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며 "누가 봐도 당시 황 박사와 박 교수 사이에는 밀고 끌어주는 뭔가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병준 정책실장과 박 교수, 진대제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은 '황금박쥐'로 불리며 비공식적으로 황 박사를 지지했으며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황 박사의 논문 조작은 정부가 아닌 MBC PD수첩 조사로 밝혀졌고 논문은 철회됐다. 박 교수는 2006년 초 사의를 표명하며 과학기술보좌관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1년 만인 2007년 1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으로 위촉됐다. 당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박 교수는 "나름대로 해명했는데 잘 반영되지 않아서 가능하면 해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맞을 만큼 맞지 않았나"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전국공공연구노조는 8일 '한국 과학기술계에 부고를 띄운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공공연구노조는 성명서에서 "박기영 교수는 황우석 사태를 불러일으킨 핵심 인물로, 온 나라를 미망에 빠뜨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를 멀게 한 장본인이다. 연구 부정 행위를 저지르고 연구 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으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반성이나 사과도 없었다"며 "문재인정부는 정치권을 맴돌며 그럴듯한 '4차 산업혁명'의 미사여구와 얄팍한 '쇼'로 장밋빛 환상을 설파하던 자를 혁신본부장으로 임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공연구노조는 또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천명했던 과기정통부 장관의 취임사가 무색해지는 올드보이의 귀환일 뿐"이라며 "양식 있는 과학기술계의 어느 누가 박기영 혁신본부장을 따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서울 사립대의 또 다른 교수는 "박기영 교수는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고 대학으로 돌아간 뒤 4차 산업혁명 운운하고 민주당을 기웃거리며 정치권을 노린 폴리페서가 됐다"며 "어떻게 이런 사람을 본부장에 앉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를 두고 청와대 인사 시스템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과학자인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보좌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며 "과학기술계에서 박기영 교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의 과거가 어땠는지 등에 대해 조사라도 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를 이끌고 있는 유영민 장관 내정과 이번 박기영 교수의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을 엮어 과학기술계에서 코드인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 장관은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해운대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정부 R&D에 대한 경험이 없던 인물인 만큼 과기정통부 장관 내정 당시 깜짝 인사로 불렸다. 박 교수는 노무현정부 당시 과학기술보좌관을 맡은 이력 외에는 과학기술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출연연의 한 연구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영민 장관의 과거 책을 트위터에 소개했고, 박기영 교수의 책에 추천사를 쓴 것이 알려진 뒤에는 과학기술계 인사는 이미 다 정해졌었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오고 있다"며 "능력이나 평판 등은 무시한 보은인사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8일 정치권도 박 교수의 혁신본부장 임명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박기영 본부장은 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시절 전 국민을 경악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문제는 박 본부장이 해당 논문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조작된 논문의 공저자라는 것, 기여하지 않은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 둘 다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또 그는 박 교수를 향해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는 학자로서의 양심과 윤리를 지키고자 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문제 제기를 하고, 전말을 밝혀내면서 그 진상이 드러났다. 이제 그들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주역이 되었다"며 "박 본부장은 과연 그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바란다"고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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