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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의 위험한 훈수 美中빅딜론에 韓 긴장

  • 안정훈 박태인
  • 입력 : 2017.10.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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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 전 美국무장관 /사진=EPA
▲ 키신저 전 美국무장관 /사진=EPA
[뉴스&와이] 다음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중·일 순방을 앞두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미·중 빅딜' 훈수가 예사롭지 않아 외교가에서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키신저를 만나 조언을 구한 것을 놓고 "북한 정권 붕괴 이후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중국에 약속해 주라"는 키신저 구상이 은밀히 무르익는 '전조'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키신저는 살아 있는 국제외교의 전설로 통하지만 미국의 국익을 위해선 약소국을 짓밟은 냉혹한 현실주의자이자 비밀외교의 신봉자라는 평가도 많다. 역사를 바꾼 키신저 외교의 밑바탕에는 미군 철수, 당사국 배제, 중국 편향이라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대만과 남베트남은 키신저식 '빅딜'의 대표적 희생양으로 꼽힌다. 대만은 키신저가 유도한 미·중 관계 개선으로 인해 국제적 입지가 급격히 좁아진 나라다. 키신저는 1972년 리처드 닉슨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도록 해 미·중 공동성명(상하이코뮈니케)을 이끌어냈다. 이 성명에는 중국 대륙·홍콩·마카오·대만을 통치하는 중국 정부는 오직 하나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한다는 내용과 미군이 대만으로부터 단계적으로 철수한다는 약속을 처음으로 명문화했다. 이 합의는 7년 후인 1979년 미·중 수교의 시금석이 됐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 속에 당사자인 대만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았다.

남베트남의 사례는 더 극적이다. 키신저는 끝나지 않는 베트남전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미국을 끄집어 내기 위해 1973년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북베트남 정부와 회동한 뒤 평화협정(파리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남베트남은 이에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으나, 키신저에게 남베트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키신저는 이 공로로 197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지만, 그의 영광 뒤에 홀로 남겨진 남베트남의 말로는 비극적이었다. 키신저는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기 위해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확대했으며 핵무기 옵션까지 거론하는 무리수를 뒀다. 키신저가 노벨상을 수상한 지 2년 만에 북베트남은 협정을 파기하고 총공세를 감행했으며, 고립된 남베트남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패망하고 말았다.

파리평화협정 체결 당시 키신저는 북베트남과 미군 철수에 합의한 뒤 남베트남에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침공할 시 미 해·공군 및 지상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막상 북베트남이 실제로 침공을 감행하자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키신저는 나중에 "남베트남의 공산화를 막지 못한 것은 미국 내의 평화운동 때문이었다"라고 남 탓을 했다.

키신저는 중국 인민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로 불리며 중국이 국빈으로 대접하는 VIP다. 1970년대 초 미·중 데탕트를 주도했던 그는 지금도 미·중 담판을 주장하면서 중국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 중국 입장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로 폄하되기도 한다.

키신저는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와 면담을 할 때마다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4월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키신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의 입구로 생각하고 있는 '북핵 동결'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식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키신저가 당시 "핵동결과 핵폐기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은 비슷하나 그 결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며 "핵동결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키신저는 '핵동결'로 끝이 나 트럼프 대통령이 거듭 파기를 주장하고 있는 '이란 핵협상'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보여 왔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키신저에게 우리 정부 측에서 한반도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중국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면서 "중국의 협조 없는 한반도 통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견해를 드러냈다"고 전했다. 중국에 '북한'이라는 전략적 완충지대가 필요한데 한반도 통일은 이런 중국의 이익에 어긋나며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옵션이라는 것이다. 이는 키신저가 한국은 물론 남북 모두를 동북아 역학구도의 핵심 당사자가 아니라 미·중의 '종속 변수'로 보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키신저 구상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수용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주한미군을 근간으로 하는 한미동맹의 약화를 초래해 우리 안보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9월 한 세미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중 간의 대타협 가능성을 우려하며 "미국이 한국의 이익을 미·중 거래로 희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경제적 이득을 최대 목표로 삼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상수가 아니라 변수로 볼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코리아패싱 여부는 결국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라며 "대북 독자제재를 포함해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국의 역할과 기여를 늘려야 한국이 미국과 함께 한반도 문제에서 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재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키신저가 주장하는 미·중 간 빅딜의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대북 제재 압박 국면에서 한국의 엇박자 행보는 한미 간의 '감정적 이탈'을 초래해 미국의 독자행동을 부추길 수 있는 만큼 국제사회 대 북한이라는 대북 압박 국면에서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안정훈·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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