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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 모방, 인공지능 소자 개발에 돌파구 될까

  • 원호섭
  • 입력 : 2018.03.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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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과학-143]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순간 뇌에 있는 뉴런은 수천 개의 또 다른 뉴런에 빠른 속도로 전기 신호를 전달한다. 신호 전달은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를 통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100조개 이상의 시냅스가 활성화된다. 우리 뇌는 이 과정을 거쳐 기억하고 학습한다. 이때 뇌는 단 20W(와트)의 에너지만을 사용한다. 적은 에너지로 엄청난 양의 일을 해내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뇌를 모방한 '칩'을 만들고 싶어한다. 뇌처럼 적은 전력을 쓰고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면 인공지능 구현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뇌 성능을 모방한 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재미 한인 과학자가 이끄는 연구진이 뇌 시냅스를 모방한 동전 크기 처리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향후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기기를 손안에 들고 다닐 수 있을지 모른다.

사진 왼쪽부터 스캇 탄, 김지환 교수, 최신현 박사 /사진제공=MIT
▲ 사진 왼쪽부터 스캇 탄, 김지환 교수, 최신현 박사 /사진제공=MIT

김지환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교수와 최신현 MIT 기계공학과 연구원 등 공동 연구진은 뇌 신경망을 모방해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크기는 동전만 한 생체 모방 '소자'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테크놀로지' 1월 22일자에 게재됐다.

구글의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이기면서 인공지능 시대가 열렸지만 한계가 존재했다. 알파고가 무수한 계산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176개의 GPU를 장착한 슈퍼컴퓨터급 서버와 연결해야만 했다. 성인 크기 캐비닛 수십 개를 연결한 서버가 필요했다. 이후 커제 9단을 이긴 알파고 마스터는 성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전용 반도체 칩인 '텐서 프로세싱 유닛(TPU)'을 탑재했다. CPU 200개와 TPU 4개를 장착해 에너지 사용량을 기존 알파고와 비교했을 때 10분에 1로 줄였다. 하지만 서버 크기는 여전히 냉장고만 했다. 과학자들은 이를 줄이고 싶었다.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지능 소자를 전자현미경으로 본 모습. 이 소자에 구동회로를 붙이면 실제 컴퓨팅을 수행하는 칩이 된다. 크기는 가로 세로 12mm. /사진제공=MIT
▲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지능 소자를 전자현미경으로 본 모습. 이 소자에 구동회로를 붙이면 실제 컴퓨팅을 수행하는 칩이 된다. 크기는 가로 세로 12mm. /사진제공=MIT

김지환 교수 연구진은 뇌의 시냅스 연결을 모방했다. 뇌는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가 얼마나 많이 활성화되느냐에 따라 빠르게 작동한다. 최신현 연구원은 "A라는 뉴런에서 B라는 뉴런으로 신호를 전달할 때 시냅스에서 많은 화학물질을 내보내면 신호가 잘 전달된다"며 "마찬가지로 소자는 전극과 '필라멘트'라는 매개물을 갖고 있는데 필라멘트가 전기를 잘 통한다면 전기적 신호가 잘 오가면서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호 크기를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어 기존 소자보다 안정적이면서도 월등한 특성을 보이는 데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뇌와 비유하면 시냅스 간 연결성을 강화한 셈이다.

기존 CPU는 사칙연산에 특화된 처리 방식을 갖고 있다. 메모리에서 갖고 온 데이터를 CPU에서 순차적으로 처리한 뒤 다시 메모리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최신현 연구원은 "기존 CPU 방식으로 빅데이터를 처리하면 순차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만큼 엄청나게 많은 CPU가 필요하고 결국 엄청난 전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고안한 방식은 칩에 데이터를 동시다발적으로 넣고 처리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메모리 없이 칩 안에서 계산이 끝나는 만큼 슈퍼컴퓨터보다 적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쉽게 설명하면 컴퓨터를 사용할 때 키보드를 이용해 명령어를 입력한다. CPU는 이 명령에 맞게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가져와 처리하고, 그 결과를 모니터로 보내거나 다시 메모리로 돌려보낸다. CPU에서 처리한 데이터를 하드디스크에 넣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빠르게 접근 가능한 '캐시 메모리'를 이용해 연산 속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 같은 기존 방식으로는 데이터를 넣고 빼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빅데이터가 필수인 AI를 작동시키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존재한다.

연구진은 개발한 칩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의 필기를 인지하는 알고리즘을 넣어 처리하도록 했다. 김지환 교수는 "동전만 한 크기의 칩을 이용해 95% 정확도를 얻었다"며 "커다란 크기의 CPU 없이도 수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손톱 크기 칩 하나로 슈퍼컴퓨터를 대체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연구진은 새로 개발한 소자를 이용해 실제 컴퓨팅 칩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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