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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회계법인 임원이 '망할뻔한' P2P업체 만든 사연은?

  • 정지성
  • 입력 : 2018.08.0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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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테크(Fintech)'.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이 생소한 단어가 전 세계인의 금융 생활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핀테크는 정보기술(IT)을 적용해 간편하게 쓸 수 있는 금융 서비스를 의미한다.

지난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가상화폐를 필두로 인터넷뱅크, P2P대출까지 핀테크는 우리가 아는 모든 금융시장을 아예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핀테크를 이해하지 못하면 똑똑한 재테크가 불가능하다. 이에 매경미디어그룹에서 핀테크 분야에 가장 도통한 3인의 기자(정지성·오찬종·김진솔 기자), 일명 핀벤저스(핀테크+어벤저스)가 뭉쳐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혜안을 전달하기 위한 핀테크 파헤치기에 나섰다.

[핀벤저스의 핀테크뽀개기-4]
서준섭 비욘드펀드 대표.
▲ 서준섭 비욘드펀드 대표.


"고금리 카드 대출 때문에 생을 포기하는 서민들을 보고 P2P대출에 뛰어들 결심을 했습니다."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처음 만난 서준섭 비욘드펀드 대표의 첫 인상은 푸근한 '아재' 느낌이었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전무이사라는 높은 자리까지 올랐던 서 대표. 그는 P2P대출을 통해 빚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구제할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억대 연봉을 받으며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쳤다. 당연한 얘기지만 부인은 물론 당시 장모님까지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면서까지 퇴사를 말렸다고 한다.

"주변에선 다들 제 정신이 아니라고 했지요. 하지만 고금리 사채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제 꿈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회를 위해선 잘된 일이었지만 가족 입장에선 말 그대로 날벼락이었다. 서 대표는 주위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첫 창업 아이템으로 카드론 같은 고금리 신용카드대출을 저금리 P2P대출로 갈아타게 해주는 서비스 '써티컷(30CUT)'을 구상했다. 써티컷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30%가량 줄여준다는 의미다. 서 대표는 '고금리 빚의 악순환을 막겠다'라는 일념으로 야심차게 서비스를 준비했다.

▶회계법인 박차고 시작했지만…사업은 시작부터 '폭망' 위기

금융당국의 규제로 출시가 무산된 써티컷의 상품구조 /자료제공=비욘드펀드
▲ 금융당국의 규제로 출시가 무산된 써티컷의 상품구조 /자료제공=비욘드펀드

잘나가던 직장을 나와 인생을 걸고 시작했지만 사업은 첫걸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당국의 승인 반대로 1년이 넘도록 영업을 시작해보지도 못한 채 결국 서비스 개시를 포기해야만 했다. '한국에서는 기관투자가가 개인대출업체에 투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때문이었다.

당시 서 대표는 "국내 기관투자가가 해외 P2P대출업체에 투자하는 건 되고 국내 P2P대출업체에 투자하는 건 안 되는 게 역차별"이라고 호소했다. 당국의 지나친 보신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나는 데스크에 '써티컷에 숨겨놓은 지분이 있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여러 차례 기사를 통해 금융당국의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금융 서비스 발전보다는 일신의 안위가 첫 번째 목표인 공무원들은 반복된 지적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써티컷 개시가 최종 무산될 당시 나와 통화했던 한 금융감독원 국장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일이 제 인사가 나는 날인데 기자님 때문에 제 앞으로 출세길이 막히게 생겼습니다. 제발 더 이상 기사쓰지 마세요."

▶ 창업 2막, '비욘드펀드'를 만들다

써티컷을 포기하고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를 놓고 전전긍긍하던 서 대표는 절치부심 끝에 부동산 P2P대출 플랫폼인 '비욘드펀드(Beyond Fund)'를 내놓게 된다. 비욘드펀드는 기존 사모펀드, 캐피털, 저축은행 등 금융사에서 규모가 작아 취급하지 않았던 부동산 자산유동화대출(ABL)을 전문으로 다루는 업체다.

서 대표는 "비욘드펀드도 써티컷과 큰 맥락에서는 다르지 않다"며 "서민들도 P2P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1000만원 이하 소액으로도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비욘드펀드의 시작은 순조로운 편이다. 업계 최단기간 50억원, 100억원, 500억원을 계속 경신하면서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출범 1년 만에 누적 대출액 578억원, 누적 상환액 265억원을 달성하면서도 부실률 0%를 유지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연평균 수익률도 올해 2월 기준 17.7%로 업계에서 높은 편이다.

써티컷의 실패를 극복한 비욘드펀드의 빠른 성장. /자료제공=비욘드펀
▲ 써티컷의 실패를 극복한 비욘드펀드의 빠른 성장. /자료제공=비욘드펀

▶ 소비관리앱 뱅큐 출시…핀테크 분야 '네이버'를 꿈꾸다

비욘드펀드가 출시한 소비관리앱
▲ 비욘드펀드가 출시한 소비관리앱 '뱅큐'

서 대표는 비욘드펀드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를 입증하듯 최근 종합 자산관리 애플리케이션(앱) '뱅큐(bankQ)'를 출시했다. 은행, 카드와 같은 개인의 자산 현황을 한눈에 보여주고 소비내역을 분석하는 등 자산관리를 쉽게 도와주는 앱이다.

비욘드펀드를 포함해 8퍼센트, 렌딧, 루프펀딩, 빌리, 소딧, 어니스트펀드 등 10개 P2P대출업체의 투자 현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빗썸, 코인원 등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의 자산도 파악할 수 있다. 서 대표는 궁극적으로 P2P에서 다른 금융 서비스로 외연을 넓혀 '핀테크계의 네이버'로 불릴 만한 종합 금융 플랫폼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이다.

▶복장은 자유롭게…'패션왕 CEO'로 불리는 이유

비욘드펀드 직원들에게 사내 문화 중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없이 복장 자율화와 자유로운 소통 문화를 꼽는다. 재미있는 점은 회사에서 복장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바로 CEO인 서 대표라는 것이다. 50대 초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라이더 재킷, 체크무늬 슬랙스를 즐겨 입는 것은 물론 회사에 놓고 다니는 안경만 해도 무려 9개에 이른다. 사내에서 뽑는 '패션왕'에 뽑히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내릴 수 없는 배에 탔다."

서 대표가 직원들에게 평소 강조하는 말이다. 비욘드펀드 누적 대출잔액이 400억원을 넘기면서 이제 사업을 접고 싶어도 접을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의미다. 수천 명의 투자자와 대출자들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비욘드펀드는 서민 재테크의 질을 높이겠다는 일념으로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핀벤저스 2호기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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