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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에서 北 예술인들 대우가 나빠진 이유

  • 장혜원
  • 입력 : 2018.08.0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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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연합
▲ /사진=AP연합
[우리가 몰랐던 북한-34] 얼마 전 북한에서는 중앙당 선전선동부 산하 작가, 예술인, 창작가들의 공개 사상투쟁회가 열렸다.

사상투쟁회는 조직 혹은 특정 사람에게 발생한 사상·정신적인 병폐를 바로잡기 위해 해당 정치조직에서 주최하는 집중 비판의 무대다. 순서는 조직생활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 특정인을 먼저 지목한다. 그 뒤 지목된 사람이 처절한 자기비판을 하고, 모임에 참석한 거의 모든 사람이 비판 대상의 잘못을 조목조목 나열해 격렬하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사상투쟁회는 무대에 올라가는 사람, 즉 비판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눈물, 콧물을 쏙 빼게 하는 것을 물론 엄격한 처벌로 마무리돼 누구나 두려워한다.

이번에 북한에서 열린 사상투쟁회는 기존에 있었던 것보다 훨씬 범위가 넓고 강도가 높았다. 모든 작가, 예술인, 창작가들이 비판 대상이 됐다. 해임, 강등과 같은 엄한 처벌도 뒤따랐다. 발단은 몇 달 전 선전선동부의 지시사항이 하달되면서부터였다. 지시 내용은 '원수님을 최고 령도자로 모신 지난 6년 동안 창작된 예술 창작물들의 양과 질이 한심하다, 모든 창작가·예술인들은 혁명사상으로 더욱 무장하고 수령형상창조에 모든 것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백두산창작단을 비롯한 북한의 이름난 창작단, 예술단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수령형상창조다.

그런데 이미 김일성 주석에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비슷한 것을 해오다 보니 새롭게 창작할 만한 종자가 바닥났다며 일부 일꾼들이 내부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종자 문제는 1992년 출판된 김정일 국방위원장 저서 '주체문학론'에서 처음 등장했다. 여기서 '종자'란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 문제, 형상의 요소가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 알맹이다. 다시 말해 종자란 작품의 핵으로써 작품에 생명과 활력을 주며, 사상적 내용의 깊이를 보장하고 예술적 형상을 풍부하게 하는 요소다.

지시를 받은 창작가와 예술인들은 '선대 수령의 형상 창조에 있는 힘을 다 쏟아부어서 쓸 수 있는 종자를 이미 다 썼다' '더 이상 좋은 창작물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등의 푸념을 늘어 놨었는데 이것이 화근이 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72년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에서 첫 후계자 수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북한의 예술창작사업이다. 문학, 영화, 미술 등 모든 문화예술 분야에서 핵심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지상의 과업으로 수령형상창조를 제시하면서 김 위원장은 이 부문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가극 '꽃파는 처녀'와 연극 '성황당', 예술영화 '조선의 별', 소설 총서 '불멸의 력사' 시리즈 등 북한에서 혁명적 작품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모든 문학·예술작품들은 대부분 이때 만들어졌다. 북한 내부 예술인들은 물론 외부의 북한 전문가들도 이 시기를 '북한의 르네상스'라고 부를 만큼 많은 작품이 쏟아졌다. 예술인들과 창작가들에 대한 대우도 최고였다.

문학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체육 분야에 관심이 많다.

창작가, 예술인들 입장에서는 선대 수령 시기와 비교해 대우는 별로 없고 실적만 강조하는 현 상황이 불만스러웠다. 그들이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찬양과 충성의 소재가 바닥날 만큼 이미 소진됐다. 달라진 북한의 현실 또한 수령형상창작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다. 시장화와 개인주의가 진전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면 수정주의와 반동적 작품으로 처벌받기 쉽고, 대놓고 찬양 일색으로 만들면 현실과 동떨어져 진실성이 부족한 작품으로 폄하되기 일쑤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그나마 다양한 장르에서 모범적인 작품을 몇 개 만들어놓고, 이렇게 만들라는 가이드라인이라도 주어졌다. 지금은 막연하게 알아서 수령형상작품을 만들라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에서 수령형상작품을 잘못 만들면 처벌은 물론이고 오지로 추방된다. 심한 경우 정치범으로 몰릴 수도 있어 차라리 만들지 않는 것이 나은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시대 들어 수령형상작품의 양과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선전선동부에서 압박을 가해오니 창작가, 예술인들이 더욱 궁지에 몰렸다.

"죽자니 청춘이요, 살자니 눈물일세."

북한에서 유명한 영화 '민족과 운명'의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인데 지금 북한의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들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백성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백성의 편이 된다. 무리하게 수령형상작품을 만들라고 강요하지 말고, 인민 스스로가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리더십과 인품을 갖추는 것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장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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