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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의 전설 유래는 일제 조작일까 당나라일까

  • 이문영
  • 입력 : 2017.02.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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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국립박물관에 걸려 있는 성덕대왕신종. 이 종을 계속 에밀레 종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고민이 필요하다./사진=이문영
▲ 경주 국립박물관에 걸려 있는 성덕대왕신종. 이 종을 계속 에밀레 종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고민이 필요하다./사진=이문영
[물밑 한국사-35] 어려서 전래동화집에 실려 있던 '에밀레종 전설'은 정말 이상한 이야기였다. 아버지 성덕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어져서 성덕대왕 신종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종에 얽힌 전설은 다음과 같다.

 엄청나게 큰 종을 만들기 위해서 집집마다 쇠붙이를 시주 받았다. 그런데 한 집에서는 줄 쇠붙이가 없으니 이 아기라도 가져가라고 말했고 시주승은 당연히 그런 말은 무시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때문에 종을 만드는 데 계속 실패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집에 가 아기를 받아와 쇳물에 던져넣었고 그러자 종이 완성되었다. 종을 치자 종은 마치 아기가 엄마를 부르듯이 "에밀레"라고 울었다. 그리하여 이 종의 이름을 에밀레종이라고도 부른다는 것.

 자기 아버지 명복을 빌기 위해 남의 집 아기를 죽인 엽기 잔혹 동화이다. 이런 이야기를 전래동화라고 지금도 소개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렵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대체 어떤 연유로 전해지는지 설명하려는 여러 시도가 등장했다. 이러한 과정은 역사학이 역사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과 유사하다. 역사 속의 이야기는 현대의 해석에 의해서 본의를 드러내게 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목적이 앞서게 되면 자신의 해석에 맞는 증거만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논의를 종결시키고자 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1925년 매일신보에 실린 염근수의 <어밀네 종>
▲ 1925년 매일신보에 실린 염근수의 <어밀네 종>
 1925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어밀네 종'이라는 글이 실렸는데,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실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에밀레종 전설은 일제의 음모라는 주장이 튀어나왔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아동문학가 염근수(廉根守)인데 친일 혐의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글의 제목은 어밀네 종이지만 본문에서는 '에밀내'라고 적고 있다. 이 글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 이 글에 나오는 종은 성덕대왕 신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나라님이 좋은 소리가 나는 종을 만들라고 해서 종을 만들었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화가 난 나라님은 쇠를 거둔 사람과 종을 만든 사람을 다 죽이라고 했다. 이때 점쟁이가 나와서 쇠를 거둔 사람을 조사해보라고 했고, 그때 방울이라는 아기 이야기가 나왔다. 그 방울이를 종 속에 넣어야 한다고 점쟁이가 말했다. 아기를 쇳물에 넣어 녹이고 종을 만들었더니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에밀내하고 울렸다.

 앞부분에 도성을 만드는 이야기는 조선과 흡사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 안에 절이나 스님도 등장하지 않는다. 염근수는 서울에 살던 문인으로 이 종은 보신각 종을 가리킨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에밀레종의 전설은 1925년 한참 전으로 올라간다. 1895년에 주한미국공사 앨런, 1901년에 고종의 밀사였던 헐버트 등이 모두 에밀레종 전설을 전하고 있다. 따라서 인신공양 종 전설은 일제와 관계없이 우리나라에 전해오던 이야기였던 것은 분명하다. 일제의 음모론에 한몫을 한 것은 친일극작가 함세덕(1915~1950)이 '어밀레종'(1943)이라는 희곡을 썼던 탓이 크다. '어밀레종'은 1943년에 무대에 올라가기도 했다. 이 연극은 내선일체를 강조하기 위해 에밀레종을 만든 재료가 일본에서 건너오고 일본인 의사가 주종장을 치료하고 종을 만든 뒤에 차별 없는 나라 일본으로 출국하는 등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희곡을 쓰는 목적 자체가 내선일체의 선전에 있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기도 했다. 에밀레종을 만들기 위해 쇠붙이를 바치는 것 역시 당시 전시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던 공출을 장려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라를 위해 남자들은 화랑이 되어 목숨을 바치는데 여자 아이 목숨 하나 바치는 게 무슨 문제냐는 파시즘 역시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친일 희곡이 나왔다고 해서 에밀레종 전설이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과가 원인을 지배하는 이상한 논리 전개이다. 더구나 이미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에밀레종의 전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해오던 것이었다.

 동아일보 1927년 10월 10일자 기사에서는 평양의 종에도 이와 같은 인신공양 전설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보면 큰 종에는 이런 인신공양의 전설이 붙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체 왜 이런 전설이 생겨난 것일까?

  이 점에 대해서 주목할 만한 논문이 있다. 충남대 황인덕 교수가 쓴 '에밀레종 전설의 근원과 전래'(2008)라는 논문이다.

 황 교수는 이 논문에서 중국 간쑤성 우웨이시 대운사의 종에 에밀레종과 같은 전설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대운사는 5호 16국 시절인 전량(前凉) 때인 363년 창건되었다. 당나라 측천무후는 스스로를 '대운경'에 나오는 미륵불로 자처하면서 전국에 대운사를 짓게 했다. 이때 우웨이시에 있던 굉장사도 이름이 대운사로 바뀌었다. 대운사에는 당나라 때 만들어진 큰 종이 있는데 이 종에 에밀레종과 같은 인신공양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은 1925년 매일신보에 실린 이야기처럼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백성을 희생시키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특히 몇 가지 전설에는 권력자가 결국은 파멸에 이르는 데까지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불쌍한 아기가 죽고 정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이런 비극을 초래한 자들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데까지 이야기가 지속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황 교수는 측천무후 때의 종 이야기가 신라로 넘어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넘어오면서 권력에 대한 비판 부분이 거세되었을 수 있다.

 좋은 일이니까 억울하더라도 참고 넘어가야 한다는, 권력 앞에 저항해봐야 부질없다는 함의가 에밀레종 전설 안에 들어 있다. 이런 속성에 주목한 친일파 함세덕은 국민총화라는 일제의 가치를 이 전설 안에 녹여서 연극으로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전설이 영구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들도 시대에 맞춰 계속 변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에 이런 불행하고 잔혹하며 심지어 체제 순응만을 목표로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문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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