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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자들의 비판이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들

  • 이문영
  • 입력 : 2017.02.2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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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를 팔아먹는 사람들

[물밑 한국사-36] 역사학계는 다양한 비난을 받는다. 정부여당으로부터는 90%가 좌파라는 비난을 받은 끝에 국정역사교과서의 출현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시민과 역사학계의 반발 끝에 국정교과서는 좌초 일보직전에 놓였다. 국정역사교과서에 참여한 역사학자는 극소수였고 이로써 역사학계는 사실상 매우 건전한 상식을 지닌 집단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할 것이다. 또한 이번 국정교과서 파동은 역사책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전문적인 작업이고 숱한 공이 들어가는 작업인지 시민들에게 각인시켰다는 점에서도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 사태 이전에 역사학계는 흔히 식민사학을 따르는 친일파 집단이고, 일제강점기를 찬양하는 뉴라이트 집단이고, 스승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무뇌아 집단이라고 비난받아왔다. 그리고 이런 비난은 전혀 줄어들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다.

 이런 비난의 중심에는 이병도라는 역사학자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학 태동기에 역사학 공부를 시작한 이병도는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로써 그는 갈 데 없는 친일파로 낙인 찍혔고 해방 후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았기 때문에 이후 역사학자들은 모두 이병도의 제자가 되고(비난하는 사람들은 다른 대학을 나온 역사학자는 고려하지 않는다) 제자는 스승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병도의 '식민사학'은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는 도시 전설이 성립되었다.

 여기에 웃지 못할 일이 있다. 이병도의 친구인 최태영은 이병도와 공저라고 해서 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이 책은 이병도의 그동안 학설을 모두 뒤집은 유사역사학의 설로 만들어진 황당무계한 책이다. 유사역사학계는 이병도가 개심했다고 선전을 해댔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역사학계는 스승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 집단이라고 누누이 이야기했는데, 이병도가 한 주장을 역사학계가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유사역사학계는 스승의 말도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자기들 주장을 따르지 않으면 식민사학자일 뿐이고 스승의 말을 따르거나 따르지 않거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단국대 심재훈 교수는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푸른역사)라는 책에서 스승인 윤내현의 견해를 반박했는데, 당장 스승의 등에 칼을 꽂은 제자라는 유사역사학계의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스승의 견해를 따르면 식민사학자로 욕을 먹고 스승의 견해를 따르지 않으면 배은망덕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이 무슨 꽃놀이패란 말인가.

 역사학자는 각자의 양심에 따라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스승들은 제자의 이런 공부가 빚어낸 결과물이 자신이 추구해온 것과 달라도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학문이 대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역사학계는 오랜 시간 진리가 스스로의 길을 찾아내리라 믿으며 학문에 정진해 왔으나 작금에 이르러 더 이상 유사역사학의 만행을 좌시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는 책으로 나타난다.

 2015년 여름 30여 명의 소장 연구자들이 '젊은역사학자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경희대의 인문학연구원 부설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에서 다섯 차례의 고대사 관련 콜로키움을 열었다. 경희대에서 열리는 콜로키움은 현재도 진행 중에 있으며 필자도 참여한 바 있다. 콜로키움에서 발표된 발제문들은 논문으로 정제되어 역사비평지에 실렸고, 그 논문들을 다시 정리하여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역사비평사)이라는 책으로 올해 1월에 나왔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역사비평사 간행. 젊은역사학자모임에서 내놓은 사이다 같은 책.
▲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역사비평사 간행. 젊은역사학자모임에서 내놓은 사이다 같은 책.
 작년에 한국고대사학회도 유사역사학 문제로 시민들을 어지럽히는 행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시민강좌를 열었다. 이 시민강좌에서 펼친 강의록도 정리되어 <우리 시대의 한국 고대사>(전2권, 주류성)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민강좌에서 필자는 <환단고기>를 비판하는 강의를 진행한 바 있다.

 필자는 <환단고기>를 신봉하고 이를 따르며 비역사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시민들을 현혹하는 학문을 유사역사학이라 부르는데, '젊은역사학자모임'에서는 사이비역사학이라고 부른다. 두 용어는 영어인 슈도히스토리(pseudohistory)를 번역한 것으로 사실상 차이는 없다. 과학 흉내를 내면서 무한동력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을 가리켜 유사과학이나 사이비과학이라 부른다. 이 용어 역시 슈도사이언스(pseudoscience)를 번역한 말일 뿐이다.

 원래 유사역사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재야사학자'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역사학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역사학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도 돈벌이와 인기에 현혹되어 국수주의적이고 파쇼적인 주장들을 내놓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저들 스스로 내세우는 '재야'라는 말로 이들 전체를 가리킬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장 자체를 설명해낼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런 용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이들 주장의 뿌리를 놓은 문정창은 일제강점기에 황해도 은율군수 등 고위직을 지낸 관리였고, 안호상은 초대 문교부 장관으로 이승만 독재를 적극 후원한 파시스트였다. 이들은 이런 자신의 뿌리를 감추기 위해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던 신채호의 후계자처럼 굴기 일쑤이다. 신채호는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민족주의 역사를 주장했다. 그러나 영영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 역사가로만 알려져 있는 신채호는 사실은 무정부주의자로 무력혁명을 꾀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그의 주장을 유사역사학 쪽은 일부만 과장하여 선전하고 있다./출처=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 민족주의 역사가로만 알려져 있는 신채호는 사실은 무정부주의자로 무력혁명을 꾀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그의 주장을 유사역사학 쪽은 일부만 과장하여 선전하고 있다./출처=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이에 대해서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에 실린 논문 '민족주의 역사학의 표상, 신채호 다시 생각하기'(권순홍)는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신채호는 당시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민족주의의 허구성을 깨닫고 무정부주의 운동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신채호는 민족이 아니라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 여기게 되었고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라는 선언(1923년 조선혁명선언)을 하기에 이르른다. 신채호는 1928년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1936년 여순감옥에서 옥사했다. 이 때문에 안타깝게도 신채호의 역사저작물은 그의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만들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신채호의 역사관은 유사역사가들에 의해서 왜곡되어버린 채 그들의 방패막이로 사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신채호가 이 사실을 안다면 무덤에서 일어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에는 이외에도 항상 시끄러운 단군, 낙랑군, 임나일본부, <환단고기>에 대한 정밀한 비판이 실려 있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 정말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전문 연구자들이 이 문제들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하는지는 한 번 읽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문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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