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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국가를 동일시했던 프랑스 유학파 홍종우 행적

  • 이문영
  • 입력 : 2017.03.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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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종우.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었으나 수구 반동의 길을 걸었다. /사진=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 홍종우.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었으나 수구 반동의 길을 걸었다. /사진=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물밑 한국사-37] 홍종우는 조선 왕실을 위해서 1894년에 김옥균을 암살했다. 김옥균은 암살당하기 10년 전인 1884년에 정권을 잡기 위해 정변을 일으켰다. 역사에서 갑신정변이라 말한다. 일본의 힘을 등에 업고 일으킨 정변이었지만 일본 측의 태도가 미적지근했고 즉각적인 청나라의 무력 개입으로 김옥균의 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청나라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당할 때까지 일본 안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해외 경험은 일본에 그쳐 있었지만 홍종우는 그와 달리 프랑스 유학생으로 서양의 문화를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서양, 그것도 문화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한 홍종우는 신문물의 진보 개혁가가 아니라 근왕을 위해서 암살을 하는 전근대적 인물로 남았다. 김옥균 암살의 대가로 귀국하자마자 전시에 응시할 자격을 얻어서 급제를 했다. 급제 후에 특지가 내려 홍문관 부수찬(종6품)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는 사간원 헌납(정5품)으로 승진했다. 고종은 그에게 집을 내려주기도 했다.

 홍종우 번역이라고 나와 있는 <다시 꽃이 핀 마른 나무>의 속표지. 향로에 스핑크스까지 나오는, 한국을 상징한다고 보기 정말 어려운 속표지이다.
▲ 홍종우 번역이라고 나와 있는 <다시 꽃이 핀 마른 나무>의 속표지. 향로에 스핑크스까지 나오는, 한국을 상징한다고 보기 정말 어려운 속표지이다.
 홍종우는 프랑스에서 파리 기메(Guimet) 박물관 촉탁으로 있었다. 그는 '춘향전' '심청전'을 번역하는 일을 돕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 책들은 단순히 번역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심청전이 바탕이 되기는 했지만 새로운 소설을 창작했다고 봐야 한다. '춘향전'의 번역 제목은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e)'으로 저자는 로니(Rosny)라고 되어 있다. 홍종우의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은 프랑스어 제목이 '다시 꽃이 핀 마른 나무(Le Bois sec refleuri)'라고 되어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마치 '심청전'에 '춘향전'을 섞어 넣은 듯한 모습이다.

 이 소설에는 심봉사가 아니라 순현이라는 정부 고관이 등장한다. 순현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상소했다가 강진으로 유배를 당하게 되고 유배지에서 청이가 태어난 뒤에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 순현은 눈이 먼다. 이 와중에 순현의 친구였던 상훈도 고금도로 유배되었는데, 유배 도중에 하인 수황에게 살해되고 임신 중이던 아내 정씨는 아들 상성을 낳고는 아들을 버리고 비구니를 따라 도망친다. 수황은 상성을 찾아내 키웠는데 상성은 16세가 되어 부모를 찾아 가출하고 전주에서 한 소녀를 만나 백년가약을 약속하게 된다. 이 무렵에 폭군이었던 왕은 죽고 어린 왕자가 왕위를 이었는데, 순현을 몰아낸 간신 자조미가 반란을 일으켜서 새 왕을 섬으로 유배시켰다.

 삼백 석에 팔린 청이는 거북이가 이 섬으로 데려다 주어 유배된 왕과 결혼하게 된다. 둘은 섬에서 탈출하는데 해안에서 상성을 만나 목숨을 건진다. 상성은 장군으로 임명되고 왕과 상성은 군사를 모아 서울로 진격한다. 왕위를 되찾은 왕은 상성을 암행어사로 삼아서 민심을 살펴보게 한다.

 이때 상성과 결혼을 약속했던 장소저는 집안이 몰락하여 남장을 하고 상성을 찾아나섰다. 이 여행에서 장소저는 상성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묵었던 숙소 주인의 흉계로 투옥되고 만다. 관원은 장소저에게 청혼을 하는데 거절당하자 사형을 언도한다. 다행히 집행 전에 도착한 암행어사 상성에 의해 장소저와 어머니는 모두 구해진다. 상성은 수황을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상성이 서울로 돌아온 뒤에 청이는 아버지를 찾기 위한 장님 초청 잔치를 연다. 순현은 딸과 재회하고 재상에 임명되어 이상 정치를 구현한다. (이상의 줄거리는 '외국문학텍스트로서 고소설 번역본 연구(Ⅱ) :홍종우의 불역본 『심청전』 Le Bois sec refleuri와 볼테르 그리고 19세기 말 프랑스문단의 문화생태' <한국프랑스학논집> 제85집을 참조하였다.)

 이쯤 되면 이것은 그냥 새로운 창작 소설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홍종우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왕을 중심으로 이상 정치를 구현하는 순현을 그리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홍종우가 달성하고 싶었던 것이라 하겠다. 이 때문에 홍종우는 왕의 뜻에 대항한 김옥균을 암살하고 권력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그의 행위도 왕의 뜻을 실현하는 데만 이바지했다.

 1898년 3월 10일 서울 종로 네거리에서는 독립협회가 주관한 새로운 정치 실험이 시작되었다. 만민공동회라는 집회가 열려 1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시국에 대한 일대 연설이 행해졌다. 제정 러시아의 간섭을 규탄하였다. 이틀 후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다시 벌어졌고 첫 모임보다 더 많이 모여들었다. 이로써 제정 러시아의 간섭도 중지되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후 만민공동회는 4월에 다시 열리고 6개월 간 쉼 없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야말로 새로운 민주주의의 실험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10월 29일에는 조정의 관리들도 참여하는 관민공동회가 열렸고 여기서 시민과 독립협회는 헌의6조를 올려 개혁을 요구했다. 고종은 압력에 눌려 헌의6조를 받아들이는 척 했으나 보수파 세력은 독립협회가 군주제를 무너뜨리려 하는 거라고 모함을 했고 고종은 즉각 보수파 손을 들어서 독립협회 지도자 17명을 체포하였다. 하지만 만민공동회는 이런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집회를 이어갔다. 이에 대해서도 고종에게는 준비된 수가 있었다. 그는 이미 비밀리에 지시를 내려 황국협회라는 단체를 7월 7일에 이미 만들어두었다. 여기 회원들은 보부상들이었다. 이 조직의 핵심 간부 중 하나가 바로 홍종우였다.

 이들은 독립협회에 편지를 보내 집회를 해산하고 황제의 조치를 기다리라고 말하는 등 일일이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이 배후에 황제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종은 만민공동회가 어리석은 백성들을 부추겨 현혹시키고 헛된 거짓말로 속이고 있다고 역정을 낸다. 만민공동회는 연설자가 욕설을 내뱉으면 "규칙"이라고 외치며 중지시킬 정도로 평화 집회를 만들고 있었으나 권력은 이들에게 폭력으로 응대하기에 이른다.

 11월 21일 황국협회가 만민공동회를 습격한다. 길영수라는 자가 우두머리였고 홍종우가 부두목이었다. 이들은 각각 1000여 명을 이끌고 양방향으로 쳐들어갔다. 이때 사망자가 한 명, 부상자는 셀 수 없이 나올 만큼 격렬한 충돌이 빚어졌다. 이 일을 계기로 시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뚫을 것처럼 치솟았다. 고종은 오히려 열세에 몰려 만민공동회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시민에게 몰리던 고종은 일본 공사 가토 마스오의 "우리도 메이지 유신 초기에 군대로 민회를 억눌러 제압했다"는 말을 듣고 군을 동원하기로 결심하여 12월 22일 군대를 배치하고 12월 23일 드디어 군으로 하여금 만민공동회를 해산하게 했다. 황국협회의 보부상들은 "민회를 짓밟아라!"라고 외치며 군을 독려했다.

 이런 것이 홍종우가 바라던 이상 정치였을까? 왕의 뜻만을 좇았던 그는 결국 건강한 시민사회를 파괴하는 데 일조함으로써 자신이 충성한 대한제국 멸망에 기여했을 뿐이라 하겠다. 오늘날 집회를 집회로 맞서게 하는 것으로 역사를 되풀이하는 행태를 보면 우리가 역사로부터 과연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고 만다.

[이문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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