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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대통령 날려버린 한국민중의 경험

  • 김세형
  • 입력 : 2017.03.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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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세계인이 기억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작년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그리고 2017년 한국의 박근혜 두 사람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둘다 여성대통령이다. 미국의 대통령사 229년에서 세 사람(닉슨, 클린턴, 그이전의 앤드루 존슨)이 탄핵절차를 밟았지만 끝내 탄핵되는 불운은 피해갔다.

 역사를 놓고 보면 대통령의 탄핵은 '백년만의 고독'보다 더 고독한 사건이다. 그런데 한국은 노무현에 이어 박근혜 두 대통령이 10년 만에 탄핵절차란 불행을 겪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세계 신기록이다. 브라질은 탄핵을 1년 정도 절차를 잘 밟아서 했고, 닉슨의 경우 2년 가까운 철저한 조사를 거쳐 진행했다. 그에 비해 한국은 광장의 촛불의 힘을 빌려 시작해 단 4개월여 만에 해치웠으니 이 또한 세계 토픽감이다.

 이정미 헌재소장대행은 국회 탄핵 의결과정, 소추절차 등에 이의가 제기됐지만 헌재는 흠결이 없었다는 부분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번 헌재 판결은 전 세계 법원에 회람될 것이고 전자두뇌를 지닌 천재 법률가들이 더 잘 평가하리라.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사유는 국가회계 부정을 저지른 브라질의 호세프보다 훨씬 죄가 무겁다. 최순실 등을 봐주느라 헌법, 법률을 위반하고 은폐하고 검찰수사도 거부해 헌법수호자로서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성대통령을 여성 헌재재판관이 파면하는 것도 아이러니려니와 국민을 배반했다는 매서운 표현을 썼다. 헌재 판결 전날 청와대에선 각하나 기각론이 높았다는데 인간은 얼마나 이론의 유희에 의해 유리될 수 있는지 깨닫게 한다.

 대통령 탄핵, 이는 의원내각제 국가에는 없고 대통령제에만 있는 정치현상이다.

 유독 한국의 대통령만 세기적 헌법 위반 빈도를 자랑하는가. 그리하여 그 불행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뒤집어 씌우는가.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인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번에 기각에의 기대감이 높았으나 탄핵사태에 빠진 이유에는 적절한 설명을 했다. "한국의 대통령은 임금님이다. 대통령선거는 임금님을 뽑는 행위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국민들도 대통령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만병의 원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최순실에게 장관 추천을 하라 하고 미르재단 등을 만들어 돈을 챙겨준 게 뭐 이상하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순진함(?)이 자신을 파멸시키는 줄도 모르고.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을 일으키고 이내 왕(루이16세)을 단두대에 매달아 처형해 시민혁명의 불길을 유럽과 러시아에 피워 올렸다. 이것은 거추장스러운 것은 뭐든 치워버리자는 난폭함이다. 보수의 가치는 쓸모 없다고 짓밟아 버린 인류정신에의 배반이라고 에드먼드 버크는 지적했다. 프랑스는 혁명 후 처리를 잘못해 오늘날까지 한 번도 독일을 이겨보지 못했다. 한국도 이제 탄핵으로 대통령을 날린 경험을 가지게 됐다.

 한국은 2000년까지는 세계 최우등생이었으나 지금은 열등생 조짐이 보이는 나라다. 외교관들도 요즘 한국 관리를 대하는 상대 국가의 태도에서 역력하게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한국이 탄핵의 원인이었던 나쁜 병들을 치유하고 업그레이드하는지 세계는 주목할 것이다. 사드 보복을 가하는 중국, 위안부 문제로 한국을 뭉개려는 일본은 특히 예의주시할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면 한국은 낙오한다.

 최우선 과제는 촛불, 태극기를 놓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박근혜에 대한 구속수사니 뭐니 하는 문제로 광장을 계속 채우면 한국의 장래는 망조다. 이제 2개월 내로 새 대통령을 뽑는다. 주자(走者)들은 더이상 광장을 정치의 탐욕 장소로 악용하지 말라. 탄핵 원죄의 싹을 제도적으로 뽑아내는 것은 더욱 중요한 과제다. 개헌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전히 수술하는 것이다. 한 대선후보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적 능력 부족이다.

필자는 한국의 저명한 법조인, 헌재재판관 출신에게 모두 확인해 봤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버릴 때가 됐다는 일치적 견해다. 다만 국민이 대통령제의 미련을 벗지 못하니 힘을 뺀 대통령+실세총리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극구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헌재재판관 출신은 독일, 오스트리아 대통령 모형이 가장 좋다고 추천한다. 대통령의 왕관은 내려놓되 법률안거부권, 헌법기관장 임명권에다 국방, 외교 정도의 권한만 주고 나머지는 실세 총리에게 주는 방식이다. 이른바 이원집정부제다. 이 개헌을 차기 3년 내 못해내면 한국은 선진국으로 못 가고, 또 10년 내 두 번의 탄핵사태가 나오리라. 이번에 개헌에 반대하는 후보는 제쳐야 한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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