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스페셜리포트

막대한 평양출토 낙랑유물 식민사관이 조작한 거짓?

  • 이문영
  • 입력 : 2017.07.10 15: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물밑 한국사-55] 평양 일대에는 낙랑 유적과 유물이 엄청나게 많다. 평양 일대가 한나라의 군현인 낙랑군이 아니었다고 말하려면 이 지역에 있는 유적·유물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것들이 조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무덤의 양식, 주거지의 변소 양식까지도 한나라 형식의 것들이다. 이런 것을 조작하려고 해야 조작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광복 후에 발굴된 것들도 부지기수이다.

말문이 막힌 유사역사가 중에는 평양 일대의 유적들은 후한 광무제가 침공하여 점령했을 때 만든 것이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당초 평양 지역에 낙랑군이 있을 수 없다고 그들이 주장한 근거 중 하나가 '너무 멀다'는 것이었다. 중국 본토로부터 그렇게 멀리 떨어진 군현을 유지할 이유도 없고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중국 본토와 평양 일대의 낙랑군 사이에 고조선이 있는 상황이 훨씬 이상하지 않은가? 억지로 꿰어 맞추려다보니 말이 되지 않는 결과를 낳고 만다.

또 어떤 사람은 그곳은 최리의 낙랑국이 있었던 곳이지 낙랑군이 아니라고 말한다. 최리의 낙랑국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설화에 나오는 곳이다. 그 설화의 앞 대목에 호동이 옥저 지방을 여행하다가 최리를 만났다고 나온다. 그러면 옥저 지방이 평양 일대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고대 지도가 엉망진창이 된다. 또한 그렇다 치더라도 한나라 유적·유물은 어차피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고구려가 잡아온 한나라 포로들의 집단 수용 시설이거나 무덤이라고 말한다. 한번 이렇게 말해보자. 장군총과 같은 요동 지방의 고구려 왕릉이 중국에서 잡아간 고구려 포로들의 무덤이라고 말한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거대한 규모의 무덤들을 포로를 위해 세우고 각종 부장품을 넣는단 말인가?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나온 낙랑유물로 국보 89호이다. 이런 화려한 유물이 포로를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나온 낙랑유물로 국보 89호이다. 이런 화려한 유물이 포로를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아예 평양 일대 유적·유물은 모르겠으니 입 딱 다물고, 그저 낙랑은 요서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서 영남대의 고고학자 정인성 교수는 직접 확인한 바 있다. 랴오시에 있는 영평부성을 낙랑군치라고 주장하는데, 그 유적은 명나라 때의 석성 기초 위에 청나라가 벽돌로 축성한 것에 불과했으며 대방군이 있다고 주장한 허베이성 천장고성 역시 요금대의 토성에 명청대의 개축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평양에 낙랑군이 없었다면 설명할 길이 없는 유적·유물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부인한다. 반면에 자신들이 지목하는 자리에는 유적·유물이 아예 없다. 갈석산과 같은 자연물을 유적이라고 하는 어이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왜 끝나지 않는가? 그것은 식민사관의 덫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1892년에 일본 역사가 하야시 다이스케는 <조선사>에서 조선은 영토가 중국에 가까워 중국인이 와서 왕이 되거나 군현을 설치해서 중국의 속국과 같았다고 했다. 이런 인식 체계 아래 이나바 이와키치는 위만이 오기 전에 이미 한반도에 중국인 콜로니가 존재했다고 보았다(이때만 해도 아직 '식민지'라는 번역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인식이 한국사를 타율적인 상태로 보는 식민사관인 '타율성론'의 기반이 된다.

일제는 1915년에 조선총독부박물관을 만들었고 제4실에 '낙랑대방시대'실을 만들었다. 당연히 이 전시실에 낙랑의 유물들이 전시되었는데 중국 쪽에서 유래한 유물 위주로 꾸몄다.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중국의 선진 문화가 낙랑을 통해서 한반도로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한국사는 이렇게 타율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식민사관을 주입시키기 위한 공작이었다.

이런 일제의 농간을 간파한 사람이 위당 정인보(1893~1950)였다. 위험성을 인지한 정인보는 식민사관의 타율성론을 공격하기 위해 낙랑 유물에 대한 조작설을 주장했다. 그의 의문 제기는 크게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첫째, 봉니 위조 의혹이다. 봉니는 공문서를 넣은 봉투를 함부로 뜯지 못하게 점토로 봉하고 도장을 찍어놓은 것을 말한다. 봉니는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것이니 '낙랑태수장'과 같은 봉니가 나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또한 너무 많은 봉니가 발견된 점에도 의문을 표했다. 둘째, 효문묘 동종 위조 의혹이다. 평양에서 발견된 종인데, 이 종은 한나라 묘당이 평양에 있다는 증거가 된다. 정인보는 <한서>에 따라 묘당은 황제가 온 곳에만 설치되는데, 한나라 문제는 평양에 온 적이 없으므로 이 종은 위조품이라고 주장했다. 셋째, 점제현신사비에 대한 의혹이다. 정인보는 다른 곳에서 발견된 비석을 옮겨왔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나라 양식의 고분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나라 포로들의 무덤이라고 추정했다. 그의 주장은 좋은 의도였지만 시대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씩 살펴보자.

평남 대동군 대동강면 토성리 토성에서 나온 봉니로 낙랑대윤장이라고 쓰여있다. 왕망이 관직을 태수에서 대윤으로 바꾼 뒤에 만든 인장으로 찍은 것이다. 유사역사가는 이런 시차를 모른 척하면서 위조라고 선전선동 한다./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 평남 대동군 대동강면 토성리 토성에서 나온 봉니로 낙랑대윤장이라고 쓰여있다. 왕망이 관직을 태수에서 대윤으로 바꾼 뒤에 만든 인장으로 찍은 것이다. 유사역사가는 이런 시차를 모른 척하면서 위조라고 선전선동 한다./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봉니의 경우 문서의 발송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문서의 보관에도 이용된다는 사실이 고고학의 발전에 따라 드러났다. 또한 정인보가 지적한 봉니 문자의 오류와 같은 경우도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된다는 점 역시 밝혀졌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인 200여 점의 봉니에 대한 조사도 모두 끝나 진위가 가려진 상태다. 효문묘 동종의 경우도 황제가 방문하지 않은 곳에도 묘당이 설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서>의 기록보다 앞서는 1차 사료인 목간 자료에 의해서 확인된 것이다. 점제현신사비의 경우 그 내용이 당대의 내용임이 분명하고 비석의 규모로 보았을 때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역사학계는 판단하고 있다.

북한 역사학계는 원래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1963년에 리지린이 <고조선연구>를 내놓은 뒤에 입장이 바뀌었다. 리지린의 논문에 의하면 고조선은 중심지가 요동 지방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낙랑의 유적·유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리수를 둔다. 유적은 모두 고조선의 독특한 문화이며, 유물은 교역의 증거일 뿐이며 명문 자료도 모두 부정한다. 낙랑이라고 나온 것은 이곳에 낙랑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무제는 고조선 변방의 위만조선만 정복했을 뿐 고조선 본토는 무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조선이 그와 같이 크고 막강한 국가였는데, 그 후에는 중국 쪽이건 우리 쪽이건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 모순 같은 것이 그들에게는 보이지가 않고 있다. 오직 김씨 왕조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어용 사가들이라 그런 것이다.

유사역사가나 북한 역사학계나 평양에 낙랑군이 있다는 것을 거부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만 일제가 세운 타율성론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해서 극복할 수 있는 건 없다. 오히려 우리는 그 근본을 파괴해야 한다. 일제가 세운 타율성론의 핵심은 한민족이 독자적인 역사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문명은 상호 영향 아래 성장해왔다는 기초적인 발상조차 무시한 폭력적인 타율성론에 얽매인다는 점이 오히려 큰 문제이다. 또한 최근 낙랑고고학은 고조선의 전통 위에서 중국 문명이 어떻게 결합하고 그 결과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바로 이 전통 부분에 병적으로 매달려 독자성만을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컬럼은 '오영찬, 고고학으로 본 낙랑군, <우리 시대의 한국 고대사> 1권'에서 많은 부분을 참고했음을 밝혀둡니다.)

[이문영 역사작가]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